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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가 시작됐습니다

[질매섬 농사 1]

등록|2013.04.28 09:49 수정|2013.04.28 09:49

▲ 모판 상자에 볍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기계로 했는 데 요즘은 뿌립니다 ⓒ 김동수


한반도 허리에 자리한 '개성공단'이 언제 문을 닫을지 몰라 마음은 아프고 불안하지만, 먹어야 삽니다. 먹어야 대화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 사람이 먹는 쌀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합니다. 지난 1월 31일 통계청은 '2012 양곡연도 양곡소비량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2012 양곡연도에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9.8㎏으로 전년보다 2.0% 줄었습니다. 30년 전인 1982년(156.2㎏) 절반도 안 됩니다. 그래도 아직 쌀은 우리 주식입니다.

밥 한 톨이 숟가락에 올라올 때까지 88번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미'(米)입니다. 옛날과 달리 트랙터로 논갈이하고, 이앙기로 모 심고, 콤바인으로 타작하지만 볍씨 담그기와 모판에 흙을 넣고, 볍씨를 뿌리는 일은 사람 손길이 가야 합니다. 토요일 모판 상자에 볍씨와 흙을 넣었습니다. 올해 벼농사가 시작됐다는 말입니다.

▲ 볍씨를 뿌린 위에 흙을 덮습니다. ⓒ 김동수


"기계로 볍씨와 흙을 넣는 것이 아니라 올해는 뿌리네요."
"이게 편하지. 일일이 손으로 돌리는 것보다 이게 낫지."
"볍씨 낭비가 심하잖아요."
"요즘 그런 것 신경 쓰나. 볍씨 조금 버린다고. 편안하고, 빨리 끝낼 수 있어."
"그런데 흙이 조금 질고 무르다."
"요즘 비가 워낙 많이 왔잖아요. 바닥이 비닐을 먼저 깔고 천막을 깔고 덮어야 했는데."
"오늘 밤과 월요일에도 비 온 데요. 비가 정말 많이 와요. 오늘은 손이 많아 쉽고 편안하네요."
"이런 일에는 손이 많으면 금방 끝나지."

농사를 지어보면 알겠지만, 정말 손 하나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농기계가 있지만, 사람 손길만큼 서로 평안하게 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이 품앗이로 시골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때가 더 사람냄새 났습니다.

▲ 볍씨 위에 흙을 뿌리고 있습니다. ⓒ 김동수


지난해는 농약을 단 한 번도 치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는 1번 정도는 쳤지만, 이번에는 아예 작정한 듯합니다. 올해도 농약을 치지 않기로 다짐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마음은 농약을 안 치겠다고 하지만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잎마름병, 도열병, 멸구 때문에 자식 같은 벼가 죽어가는 데 농약을 안 치고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올해도 농약 안 쳐야 할 건데."
"지난해는 안 쳤잖아. 눈 딱 감고 안 쳤지."
"농약을 안 치고 어떻게 농사를 짓노?"
"농약 안 치며 남아나는 것이 없는데."
"참 마음먹으면 괜찮아요."

어른들은 농약을 치지 않으면 먹을 게 없다고 하고, 동생은 안 쳐도 된다고 말입니다. 모두 '경험'입니다. 어른들은 농약을 안 치면 먹을 게 없다는 경험이고, 동생은 농약을 안 쳐도 먹을 게 많다는 '경험'입니다. 사실 지난해 농약을 안 쳤는데 농사를 지은 후 가장 많은 수확했습니다. 아내와 제수씨가 새참을 가져왔는데 막둥이도 따라왔습니다. 모판 상자를 옮기겠다고 나섰습니다.

▲ 우리집 막둥이도 모판상자를 옮깁니다. 이제 밥값합니다. ⓒ 김동수


"아빠 나도 옮길래요?"
"막둥이가 옮긴다고? 그래 한번 해 봐야지."
"아빠 흙을 덮었는데 싹이 나와요?"
"응. 일주일 후에 보면 초록 빛깔 새싹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어."

"어떻게 흙을 뚫고 올라 올가요."
"놀랍지. 다음 주 토요일 막둥이가 볼 수 있을 거야. 생각보다 잘하네."
"아빠! 볍씨도 뿌리고 싶어요."
"볍씨? 응, 볍씨는 소독했기 때문에 나중에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예."


▲ 막둥이와 아내 그리고 조카가 볍씨를 뿌립니다. ⓒ 김동수


아빠가 하면 다 하고 싶은 막둥이, 올해는 드디어 모판 상자를 나르고, 볍씨를 뿌렸습니다. 자신이 먹을 밥값은 했습니다. 옛날에는 이맘때가 되면 '부지깽이'도 일어나서 일손을 도왔습니다. 막둥이가 부지깽이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흙을 고르기까지 했으니, 막둥이 올 가을 햅쌀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빠 나도 흙을 평평하게 고르고 싶어요."
"흙도 고른다?"
"응."
"와, 막둥이 올가을 햅쌀 먹을 자격 있네."
"오늘 재미있었어요."
"할머니, 큰 아빠, 삼촌이 정말 힘들게 농사짓는 것 알겠지."
"예."
"밥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손길이 가야 해. 그러니 밥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형아와 누나는 오늘 공부때문에 안 와서. 일 안 했어요."
"형아와 누나는 모레부터 시험이잖아. 어쩔 수 없지. 다음 주 토요일 모판상자를 모판에 넣을 때 오면 되겠네."


▲ 막둥이가 흙을 고르고 있습니다. ⓒ 김동수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험인 큰 아이와 둘째 아이는 공부한다며 집에 있었습니다. 저는 같이 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다음 주 시험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됐습니다. 중간고사도 중요하지만, 이런 게 진짜 공부인데. 엄마와 아빠 생각이 이렇게 다른가 봅니다.

볍씨가 잘 자라 올벼농사도 풍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반도도 평화 풍년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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