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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없는 '텍스트의 독재' 속에서 뭘 쓰겠어?

[서평] 이계삼 선생의 <삶을 위한 국어교육>

등록|2013.04.29 09:42 수정|2013.04.29 09:42

책겉그림〈삶을 위한 국어교육〉 ⓒ 교육공동체 벗

오늘 어떤 고등학교 1학년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집이 학교에서 몇 걸음도 안 되는데도 가끔씩 늦고, 수업 시간에는 졸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귀에다 이어폰을 끼고 듣는다는 녀석이다.

녀석은 '사는 게 재밌냐?'고 물으면 '그냥 살아요'하고 답한다.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부분 아주 짧게 답한다. '예' 아니면 '아니오'로. 사는 게 재미가 없고, 무의미해 보이는 그런 녀석, 연애에도 전혀 관심이 없단다.

그래도 단 한 가지 바람은 있단다. 소설가가 되는 게 그것. 그것도 연애소설을 쓰겠단다. 그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살아갈 이유도, 재미도 없다는데, 그것 하나는 붙잡고 있으니 말이다.

"야, 소설가가 그냥 되냐? 소설 책 많이 봤냐?"
"네."
"누가 쓴 건데? 책 제목은 뭔대?"
"그게,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는데요."
"언제 읽은 것인데?"
"2009년도 같아요."
"평소에는 뭐하고 지내는데?"
"그냥 학교 갔다, 야자하고, 집에 와서 컴퓨터 게임하다 자죠."

완전히 절벽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느낌, 꼭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녀석만 그럴까? 어쩌면 지금의 고등학생들 모두가 녀석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학습지에 길들어 있는 녀석들이라 자기 삶도, 자기 생각도, 자기 글도 도무지 없을 것 같은 것 말이다. 그토록 가련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무슨 창의성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계삼 선생이 쓴 <삶을 위한 국어교육>은 오늘을 사는 초·중·고등학교 선생들을 위한 지침서라 해도 좋을 것 같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얘들에게 문자로 된 책을 읽어주기 전에 '삶을 살아내는 교육'을 앞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때에만 아이들이 쓴 글이 생기발랄한 '생동감'을 주고, 오래 읽어도 질리지 않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는 '텍스트의 독재'가 관철되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동화책이나 학습지로 시작해서,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정말 수도 없는 시험문제와 필독서, 참고도서를 '강제' 또는 '반강제'로 섭렵해야 한다. 컴퓨터 게임이나 텔레비전에는 가혹하지만 문자 텍스트들에는 너무나 너그럽다. 뭔가를 읽고 쓰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니까.(86쪽)

생각할수록 옳은 이야기다. 오늘날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수많은 시험문제와 필독서와 참고도서를 끼고 산다. 아니 달달 외우고 산다. 그걸 선생님들에 의해 반강제로 익혀야 하는 처지다. 너무나도 불쌍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비참한 모습이란다.

그래서 그 선생은 '삶을 위한 국어교육'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것일까? 삶이 묻어나지 않는 책읽기와 글쓰기는 그저 무늬일 뿐이라고 하니 말이다. '실체'가 없는 말과 글은 그것이 생명력이 없어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곱씹어 볼수록 깊은 울림과 떨림을 전해주는 것 같다.

"일기라도 써서 붙잡아 놓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은 아무 것도 길어 올리지 못합니다."(381쪽)

짧은 이 한마디 말이 내 뇌리를 길게 관통했다. 그것은 현재 놓치고 있는 내 삶을 반추하도록 뭔가 촉진제 역할을 한 까닭도 있고, 오늘 아침에 이야기를 나눴던 그 고등학생에게도 내가 똑같이 해 주고픈 말을 대신 해주고 있었던 까닭이다. 위대한 소설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매일매일 조금씩 써 놓은 일기가 모여서 그렇게 된 것이니 말이다.

그것은 이 책을 쓴 이계삼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이분은 대학에 입학하여 긴 글을 쓰기 전까지 어떤 글도 쓰지 않았고, 대신에 매일매일 짧은 시나 멋진 경구 같은 글을 일기장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이 책과 같은 멋진 비평서를 쓰게 된 자양분이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김포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여 고향 밀양으로 옮겨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11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일했다던 이계삼 선생. 지금은 인문학과 농업을 큰 줄기로 하는 교육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삶이 없는 국어교육', 다시 말해 '무늬만 난무한 국어교육' 때문에 결정한 일이라 한다.

그만큼 이 책이 좋은 건 그것이다. 상상 속에서 머리로 짜낸 글이 아니라, 직접 그가 부딪히고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겪은 삶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말이다. 그만큼 생명력도 있고, 살갑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얘들이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할지, 그 삶에 비춘 글은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실로 실감케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자기 사명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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