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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수첩'까지 얻어놓고... 사라진 '휴게소 비리 사건'

[추적] 검찰, 내사-체포-압수수색 했지만, 도로공사 직원 소환조사도 안해

등록|2013.05.01 19:51 수정|2013.05.01 21:43
지난 2008년 12월 4일 춘천지검 원주지청 형사부 소속 김아무개 수사관은 허아무개(현재 대검 근무중) 검사에게 다음과 같은 '수사보고'('범죄 첩보보고')를 올렸다.

"항고사건 조사 중 피의자 안아무개로부터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평창휴게소 내 M 한식당 신축 및 운영과 관련하여 휴게소 매장 임대사업체인 T사의 실제 경영자 구아무개가 3000만 원 이상을 도로공사 강원지사 및 한국고속도로휴게시설협회의 휴게소 사업 관련 직원들에게 로비자금으로 사용하였다는 진술을 청취하였다."

항고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이 연루된 비리 혐의를 포착했다는 보고다. 원주지청은 이 수사보고를 시작으로 내사에 착수했고, 체포와 압수수색 등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로비 다이어리'까지 입수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건이 갑자기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2008년 12월 4일 최초의 '범죄 첩보 보고' ⓒ 오마이뉴스


2008년 12월 4일 첫 첩보보고... "휴게소 소장은 도공 직원들을 상전 모시듯"

원주지검은 지난 2008년 3월부터 평창휴게소 내 한식당 신축공사와 관련한 사기사건, 업무상 횡령·배임사건 등을 수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식당 운영업체 T사의 이사인 안아무개(여)씨로부터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에게 로비하는 과정에서 수천만 원을 썼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안씨는 당시 평창휴게소장의 친누나였다.

김아무개 검찰수사관은 안씨의 진술을 '범죄첩보'로 보고했고(2008년 12월 4일), 다음날부터 바로 내사에 착수했다. 지난 2008년 12월 5일 김 수사관의 '수사보고서' 중 일부다.

"휴게소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도로공사는 휴게소 운영업체 선정에서부터 휴게소 내 사업의 각종 승인, 휴게소 운영 서비스 평가 등을 통해 휴게소 운영업체에 대한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업체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 휴게소 소장들은 도로공사직원들을 상전 모시듯 하고 그 앞에서는 죽는 시늉까지 한다고 함. 위와 같은 정황으로 볼 때 안아무개의 진술처럼 도로공사 직원들에 대한 로비가 있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고 (후략)."

김 수사관은 한국도로공사와 계약한 휴게소 운영업체 D사나 평창휴게소장인 안아무개씨가 공사 직원들을 상대로 직접 로비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한국도로공사와 휴게소 운영업체가 얽힌 '구조적 비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수사는 더욱 진전됐다. 휴게소장의 친누나인 안씨(휴게소내 한식당 운영업체 T사의 이사)로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박아무개씨가 사기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도 한국도로공사 로비 부분이 포함돼 있었다. 박씨는 이 진술서에서 "안씨가 '도로공사 직원들에게 로비자금이 3000만 원 이상 들어갔다'며 1500만 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김 수사관이 '수사보고서'에 첨부한 박씨의 진술서에는 이렇게 기술돼 있다.

"(신설매장 투자 후 진척이 없어 이유를 묻자) 안아무개가 답하기를 도로공사(강원지역본부) 직원들이 트집을 잡아서 어쩔 수 없이 기다린다며 아무래도 먹을 생각에 그런 거 같다며 또 접대를 해야 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얼마 지난 후 만나서 하는 말이 룸살롱에서 수백만 원치를 접대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며 그 전에도 사업을 추진하면서 접대비 및 로비비로 3000만 원 이상 들었다며 고소인(박씨)에게 반이라도 부담을 요구한 적이 있어서 (하략)."

▲ 평창휴게소장의 다이어리에는 도로공사, 관할구청, 경찰 지구대 등에 금품을 제공한 내역이 적혀 있다. ⓒ 오마이뉴스


휴게소장의 다이어리 "도공, 군청, 지구대 등에 접대와 금품 제공"

검찰은 치밀한 내사를 거쳐 평창휴게소와 소장이었던 안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안씨를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안씨의 다이어리를 입수했다. 이 다이어리에는 한국도로공사 강원지역본부와 관할 군청, 경찰지구대, 소방서 출장소 등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름, 술집 이름, 금품 액수 등이 적혀 있었다. 검찰로서는 한국도로공사 직원 등을 상대로 한 휴게소 운영업체의 로비 혐의를 입증할 중요한 증거를 손에 넣은 셈이다. 그래서 지난 2008년 12월 16일과 18일 안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이어리'에 적힌 내용을 집중 캐물었다.

검찰조사에서 안씨는 "다이어리에 기재해놓은 것은 모두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고교선배가 포함된 한국도로공사 강원지역본부 직원들을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접대했고, 명절 때마다 관할 군청과 면사무소, 경찰지구대, 소방서 출장소 등에 현금과 상품권(10만 원짜리), 양주 등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지난 2008년 12월 16일자 피의자 신문조서 중 일부다.

피의자는 도로공사 직원이나 휴게 시설 협회 직원들을 상대로 금전 또는 향응을 제공하는 등 뇌물을 공여한 사실이 있는가요.
직원들에게 밥 사주고 술 사준 적은 있는데 돈을 준 적은 없습니다.

피의자가 밥 사주고 술을 사주었다는 직원들은 누구인가요.
휴게소와 관련된 도로공사 직원들입니다.

그게 누구인가요.
(도로공사 강원본부) 한아무개 차장, 건축차장 김아무개, 박아무개 D사 부장에게 식사대접이나 술을 사준 적이 있고, 평창군청 장아무개 계장에게는 해외여행 경비로 30만 원을 준 적이 있습니다.

피의자의 다이어리를 보면 위 도로공사 직원들의 이름과 '샤로트'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 있는데 '샤로트'는 무엇인가요.
원주 단계동에 있는 룸살롱 이름인데 직원들과 갔다 온 것을 그렇게 기재해 놓은 것입니다.

피의자의 다이어리 내용 중 유독 (도로공사 강원본부) 한아무개에게 접대한 내역이 많은데 그 이유는 뭔가요.
한아무개는 W고 선배로 저에게 여러 모로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자주 만나서 접대를 한 것이고 저에게도 밥도 사주고 소주도 사주고 했습니다.

안씨는 이러한 '로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본사(휴게소 운영업체 D사)에 청구해 보전받았다. 그는 지난 2008년 12월 16일 피의자 신문에서 "(도로공사 직원들 접대할 때에는) 제 카드로 결제하고 그 경비는 본사로 청구하여 돌려받는다"라며 "보통 30~40만 원까지는 (본사에서) 지급해주는데 금액이 클 경우에는 몇 차례에 걸쳐서 나누어서 청구한다"고 진술했다. 이는 한국도로공사와 휴게소 운영업체의 '구조적 로비 관행'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 2011년 대검 감찰에 응한 안아무개씨가 로비내역이 적힌 다이어리를 폐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사건은 사라지고, '재수사' 진정에는 "더 이상 수사 필요성 없어" 조치

검찰은 광범위한 계좌추적을 통해 지난 2006년 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이루어진 안씨의 금융거래들을 추적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3월 안씨의 친누나를 소환해 조사한 직후 '사건'이 수사선상에서 사라졌다.

첩보보고와 내사, 체포와 압수수색 등 검찰수사의 정석에 따라 진행되고 있던 한국도로공사 로비 의혹 사건이 제대로 종결되지도 않은 채 어느 날 사라진 것이다.

이에 문제의 평창휴게소 한식당 신축에 2억6000만 원을 투자했다가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조인환(부동산업자)씨는 지난 2010년 10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진정서를 냈다. '재수사'를 촉구한 이 진정서의 요지는 이렇다.

"원주지청이 평창휴게소 안에 식당을 불법적으로 신축하면서 3000만 원 이상을 도로공사 강원지사 등 휴게소 사업 관련 직원들에게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내사했다. 그러던 중 휴게소 소장이 이 로비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해 체포하는 등 수사를 진행했는데도 아무런 근거없이 사건이 종결됐으니 다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이 진정사건은 대검 감찰과를 거쳐 원주지청으로 내려갔다. 사건이 사라진 곳에 진정사건의 처리를 맡긴 것이다. 결과도 조씨의 기대를 저버렸다. 원주지청은 "내사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도로공사 강원지역본부 직원 및 평창 공무원 등 관련자들 조사하고, 식당 신축과 관련한 도로공사의 감사자료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평창휴게소장의 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워 재수사할 필요성이 없다"며 사건을 '공람종결'했다.

일반적인 내사, 진정사건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공람종결'은 "더 이상 조사할 필요성도 없고, 또한 마땅한 법적 조치를 내릴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더 이상 조사를 진행시키지 않고 현 상황에서 사건을 종결시키는 처분"을 가리킨다.

결정적 증거 '로비 다이어리' 돌려주고, 휴게소장은 이를 없애 버려

그런데 지난 2011년 1월 진행된 검찰의 감찰 과정에서 원주지검이 결정적 증거인 휴게소장의 '로비 다이어리'를 안씨에게 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는 검찰의 감찰조사에서 "(도로공사 직원 등) 다른 사람들과 같이 술, 음식 등을 먹은 것은 인정하나 로비한 것이 아니다"라고 로비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 감찰을 맡은 검사가 안씨에게 "예전 검찰청에 압수됐던 다이어리를 제출할 수 있나?"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지금 그 다이어리를 다 보여주면서 강원지역본부 직원들에게 로비를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싶으나 몇년 전 그 다이어리를 돌려받은 직후 기분이 나빠서 전부 폐기해서 제출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검찰은 앞서 압수수색 등의 과정에서 휴게소 운영업체가 한국도로공사 강원지역본부와 관할군청, 경찰지구대, 소방서 출장소 등에 상품권과 현금, 양주 등을 건넸다는 내용이 기록된 '다이어리'를 입수한 바 있다. 이어 피의자 신문에서도 다이어리 내용이 사실이라는 안씨의 진술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결정적 증거를 피의자에게 돌려주었고, 안씨는 그것을 폐기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결정적 증거가 사라졌다. 

또한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휴게소 운영업체 D사가 지난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휴게소장인 안씨에게 총 현금 3000여만 원을 송금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와 관련, 안씨는 검찰조사에서 "제가 우선 제 카드로 지출하고 회사에 승인을 얻으면 다시 제 통장으로 넣어주는 돈이다"라고 해명했다. 한국도로공사 직원 등을 접대한 돈을 본사로부터 송금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이 안씨의 사용카드 사용내역을 추적한 결과에서도 그가 지난 2006년 9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수십 차례 원주시 소재 룸살롱과 단란주점, 노래클럽 등을 드나든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6년 12월 10일 '엔룸싸롱'이라는 술집에서 총 87만 원, 지난 2007년 8월 24일 '시드니'라는 술집에서 90만 원, 지난 2008년 4월 28일 98만 원을 썼다. 특히 카드 사용에서는 특별한 결제형태가 반복해서 발견됐다. 50만 원 이상 나오는 술값은 50만 원 이하로 쪼개서 나누어 결제하거나, 카드로 결제했다가 다시 승인을 취소하는 형태를 반복했다.

▲ KBS 원주방송은 지난 2008년 12월 19일 한국도로공사와 평창휴게소 비리 혐의의 검찰수사를 보도했다. ⓒ KBS 원주방송


검찰출신 변호사 "사건을 덮었을 수도"... 수사검사 "실패한 수사였다"

그런데 내사와 체포, 압수수색 등을 통해 이렇게 한국도로공사와 휴게소 운영업체 사이의 '로비 관행'의혹을 포착하고도 검찰은 공사쪽 직원들을 한 명도 소환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2008년 12월 19일 KBS 원주방송은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도내 모 고속도로 휴게소장 A씨를 배임수죄 혐의로 체포해 조사중이다"라며 이렇게 보도한 바 있다.

"A소장은 지난해 5월쯤 휴게소내 부속건물에 대한 공사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을 받고 도급계약을 체결한 뒤 공사주주업체로부터 수천만 원 가량의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A소장이 휴게소 공사 승인을 원활하게 해 달라며 도로공사 관계자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검사출신 한 변호사는 "내사하고, 체포와 압수수색까지 진행한 사건을 유야무야시킨 경우는 검찰 안에서도 징계사안이다"라고 말했고, 또다른 검찰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내사하고 수사한 정도를 감안할 때 어떤 이유로 사건을 덮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맡았던 허 검사는 "별도의 사건이 아니라 어떤 고소사건들을 처리하면서 나온 것이다"라며 "휴게소 운영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인지했는데 형사적 죄로 볼 수 있는 혐의를 잡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실패한 수사였다"고도 했다.

그는 "휴게소장의 다이어리에 도로공사 직원들에게 담배나 밥을 사준 등의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을 뇌물이라고 보기에 1인당 금액이 아주 약했다"며 "상시적으로 휴게소를 운영하는 쪽은 갑인 도로공사에 잘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또한 허 검사는 "조금 큰 뇌물이라면 (휴게소 운영업체인) D사에서 줬을 가능성이 높다"며 "하지만 휴게소장인 안씨는 그런 큰 돈을 움직일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검찰에서 압수수색을 할 때 휴게소뿐만 아니라 D사까지 했어야 하는데 못해서 아쉬움이 있다"며 "나는 휴게소장을 중심으로 그런 로비가 이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점에서 헛다리를 짚은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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