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은 악녀로 변신할 준비가 됐는가
[드라마리뷰]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문제는 김태희의 연기보다 이야기의 오류
▲ 김태희역대 최악의 장희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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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와 유아인이라는 흥행코드를 제외하고서도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의 초반 시청률이 11%대로 나쁘지 않았던 것은 시청자들이 장희빈에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는 유효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김태희라는 대한민국 최고 미녀의 선택을 받은 드라마라는 사실은 둘째치고라도, 역사상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던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코드가 아닐 수 없었다.
동시간대 방송되는 드라마인 MBC <구가의 서>는 판타지 사극으로 중장년층의 호기심을 얻는 데는 불리했고, KBS 2TV <직장의 신> 역시 일본 원작으로 다소 과장된 만화 같은 캐릭터가 한국인의 정서에 정확히 들어맞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장옥정>이 타깃 시청자들만이라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면 동시간대 1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등한 경쟁을 해볼 만한 여지가 충분했다.
장희빈 캐릭터의 매력 반감된 '장옥정'
▲ 장옥정현대판 캔디에 가까운 작옥정 ⓒ sbs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장옥정>은 <구가의 서>에게 시청률 1위를 내줬음은 물론, 직장인의 애환과 코믹요소를 적절히 버무려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직장의 신>을 단 한차례도 앞서지 못하며 시청률의 하락을 맛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장옥정>이 보여주고 있는 식상함에 있다.
<장옥정> 제작진은 그동안 드라마가 보여준 장희빈 캐릭터에 문제를 제기하며 "진정성 있는 장희빈을 만들겠다"며 호언장담 했다. 새로운 장희빈으로 신선함을 주는 것은 물론, 공감을 이끌어 내겠다는 포부였다. 그러나 막상 <장옥정>에서의 장희빈은 기존의 장희빈보다도 매력이 부족한, 그저 그런 캐릭터로 보였다.
김태희의 연기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더욱 큰 문제는 <장옥정>이 보여주는 서사구조에 있다. 하이힐이 등장하거나 장희빈이 패션 디자이너라는 설정, 죽은 후에 붙여진 시호를 사용하는 등의 역사 왜곡처럼 보이는 설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드라마가 가져야 할 기승전결에서 <장옥정>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 회부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서사구조는 김태희를 활용한 시청률을 의식한 것이겠지만 이미 김태희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등장한 아역은 극의 흐름을 오히려 방해했다. 운명적인 사랑을 강조하며 기존 '악녀'로 여겨지던 장희빈의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렸는지는 몰라도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는 데는 부족했다.
이는 신선함을 노린 설정이겠지만 오히려 진부함을 피하려다 오히려 진부해지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존의 장옥정이 매력적일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자에게 저주를 퍼붓고 죽음마저 자신이 끌어들이는 주체적인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희빈의 악행이 극악무도해 질수록 극의 흥행성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건 착하고 멋진 주인공이라는 공식을 배반하는 일종의 신선함이었다. 그러나 <장옥정>의 김태희는 현재 수십 번도 더 되풀이 된 착한 캔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할 말도 제대로 못하며 남자 주인공의 사랑에만 유일한 희망이 있는 캐릭터는 이미 질리도록 봐왔다. 전혀 새롭지 못할 뿐더러 식상하기까지 하다. 대체 어디에 진정성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운명적인 사랑'과 '삼각관계'를 강조한 모양새가 차라리 판타지 사극에 가까운 모양새로, <해를 품은 달>이나 <성균관 스캔들> 등 히트작을 의식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다른 히트작들이 보여준 신선함은 <장옥정>에 이르러 진부함으로 변모했다.
유일하게 주목할 부분이라면 유아인의 연기 정도다. 유아인은 정통 사극 톤 역시 꽤 그럴듯하게 수행해 내며 가능성 있는 연기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해냈다. 그러나 그 외에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에 비해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숙종과 장옥정의 멜로, 감정이입 어려워
▲ 숙종(유아인 분)과 장옥정(김태희 분)의 키스신 ⓒ SBS
이 드라마는 가장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멜로에도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실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현실성이나 개연성보다 감정이입에 있다. <장옥정>이 그 공감지점을 잘 이끌어 냈다면 판타지 같은 설정들을 용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장옥정>은 멜로에 있어서도 전혀 그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숙종과 장옥정의 운명 같은 사랑의 지점은 단순한 어린 시절 추억으로 마무리 됐다. 서로의 감정이 무르익을 시간을 <장옥정>은 주지 않았다. 한 때는 서로를 밀어내던 두 사람은 갑자기 빗속에서 키스를 하는 극한의 감정으로 치달았다. 그들이 그 정도의 행동을 할 만큼 감정의 공감대가 형성될 정도의 '썸씽'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들은 키스신을 강행했다.
궁에 들어오고도 임금에게 '밀당'을 할 수 있는 장옥정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은 그래서 튄다. 둘의 감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임금에게조차 직언을 서슴지 않는 나인의 존재는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닌, '어떻게 저럴 수가'라는 감정만을 남긴다.
<장옥정>은 이제야 '이유 있는 악녀'를 만들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장옥정이 악녀가 된다고 해도 그만큼의 이유를 충분히 만들어 놨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착하디착한 장옥정이 악녀가 될 만큼의 엄청난 사건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기 위해 충격의 감정선을 제대로 이끌어 낼 만큼 제작진은 노련하지 않아 보인다.
<장옥정>은 장희빈이라는 흥행코드를 가지고도 최초로 성공하지 못한 드라마로 낙인찍히고 있다. 시청자들의 관심마저 다른 드라마보다 뛰어나지 않은 지금, 김태희의 <장옥정>은 역대 최악의 장희빈으로 기록될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이는 아마도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쉽사리 뒤집히지 않을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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