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에 오셔서 그림쟁이 노래 들어보실래요?
'시민과 함께하는 연대와 후원의 밤 행사'에 '가수'로 나선 나의 변명
그림쟁이가 노래를 합니다. 3일 오후 7시 30분,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 농성장 문화제에서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잘 못하고 아는 노래도 몇 곡 없어서, 사람살이를 위해 좋아하는 노래 몇 개만을 달달 외워 불렀던 제가 말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대표적 민중노래패인 '꽃다지'가 서는 무대입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이나 제 노래를 들어 본 사람들은 기겁을 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변명을 하고자 합니다.
맘속으로 그리기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캐리커처와 크로키 그리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쯤 지난 것 같군요. 그동안 제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무엇보다 그동안 책상에 앉아서 다른 이들이 취재해온 기사들을 살피거나 인터넷을 뒤지며 시사만화를 그려왔던 것과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말로 바뀌고, 그 백 배의 차이가 수사적인 백 배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백 배, 아니 그 이상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더욱이 일부 언론들은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거친 현장의 목소리를 멀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수첩에서 지웠습니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 거칠고 삭막한 길바닥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피를 토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측이 불법을 저질러도 경찰은 노동자들에게만 참으라고 합니다.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참으라고만 합니다. 또 노동자들에게는 불법을 유도하거나, 작은 불법을 빙자해서 과도한 법적용을 합니다. 연행을 하겠다고 공갈협박을 합니다. 그런 일들이 길거리로 내쫓긴 노동자들에게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지요.
그런 가운데 현장에서 그림그리기로 자족하고 있던 내게 내 몸과 맘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뭐라도 해야한다고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처음 노래를 부른 곳은 지금 20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학습지노동자들 시청 옆 환구단 농성장인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10여 명의 사람들이 바삐 갈 길을 가는 사들을 배경으로 예의 집회를 하고 있던 곳. 그날은 문화제를 열었지만 노래를 부를 사람마저 없었지요. 한 발 물러서서 현장스케치를 하던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가사도 틀려가면서 부른 '나는 레알로망 만화가'('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개사한 것). 그렇게 해서 길거리에서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게 됐습니다.
무엇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길거리로 내쫓긴 노동자들은 절박함 속에서 피눈물로 범벅이 되어도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데, 내가 할 일이 내 전공인지 아닌지, 얼마나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인지 하는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급박함이 저를 몰아세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현장의 문화는 좀 더 준비하고,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전문적인 솜씨를 가져야 하겠지만, 조금은 덜 준비되고, 조금은 덜 세련되고 조금은 덜 전문적일지라도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2200일이 훌쩍 넘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농성장에서,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희망버스를 타고 간 한진중공업에서, 희망 뚜벅이 행진을 하면서, 희망식당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5월 3일,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에서 열리는 ''시민과 함께하는 연대와 후원의 밤 행사 '대한문에서 만나!'' 문화제에 제가 노래를 부릅니다. 길거리의 노동자들이 용기를 얻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무엇이든 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측의 부당함에 맞서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널리 알려주시고 많이 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맘속으로 그리기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캐리커처와 크로키 그리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쯤 지난 것 같군요. 그동안 제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무엇보다 그동안 책상에 앉아서 다른 이들이 취재해온 기사들을 살피거나 인터넷을 뒤지며 시사만화를 그려왔던 것과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말로 바뀌고, 그 백 배의 차이가 수사적인 백 배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백 배, 아니 그 이상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더욱이 일부 언론들은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거친 현장의 목소리를 멀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수첩에서 지웠습니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 거칠고 삭막한 길바닥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피를 토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측이 불법을 저질러도 경찰은 노동자들에게만 참으라고 합니다.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참으라고만 합니다. 또 노동자들에게는 불법을 유도하거나, 작은 불법을 빙자해서 과도한 법적용을 합니다. 연행을 하겠다고 공갈협박을 합니다. 그런 일들이 길거리로 내쫓긴 노동자들에게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지요.
▲ 콜트콜텍기타노동자 문화제2200일이 훌쩍 넘은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의 농성장 문화제에서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 일부를 전시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 이동수
그런 가운데 현장에서 그림그리기로 자족하고 있던 내게 내 몸과 맘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뭐라도 해야한다고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처음 노래를 부른 곳은 지금 20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학습지노동자들 시청 옆 환구단 농성장인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10여 명의 사람들이 바삐 갈 길을 가는 사들을 배경으로 예의 집회를 하고 있던 곳. 그날은 문화제를 열었지만 노래를 부를 사람마저 없었지요. 한 발 물러서서 현장스케치를 하던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가사도 틀려가면서 부른 '나는 레알로망 만화가'('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개사한 것). 그렇게 해서 길거리에서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게 됐습니다.
무엇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길거리로 내쫓긴 노동자들은 절박함 속에서 피눈물로 범벅이 되어도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데, 내가 할 일이 내 전공인지 아닌지, 얼마나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인지 하는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급박함이 저를 몰아세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현장의 문화는 좀 더 준비하고,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전문적인 솜씨를 가져야 하겠지만, 조금은 덜 준비되고, 조금은 덜 세련되고 조금은 덜 전문적일지라도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2200일이 훌쩍 넘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농성장에서,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희망버스를 타고 간 한진중공업에서, 희망 뚜벅이 행진을 하면서, 희망식당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5월 3일,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에서 열리는 ''시민과 함께하는 연대와 후원의 밤 행사 '대한문에서 만나!'' 문화제에 제가 노래를 부릅니다. 길거리의 노동자들이 용기를 얻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무엇이든 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측의 부당함에 맞서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널리 알려주시고 많이 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대한문에서 만나!]-시민과 함께하는 연대와 후원의 밤 5월 3일부터 시작되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대한문 분향소 농성장에서 열리는 문화제입니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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