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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 5.18 공식노래로 지정해야하는 이유

[주장] 보훈처의 5.18 새노래 '공모'... 빛고을 시민은 원하지 않는다

등록|2013.05.03 14:47 수정|2013.05.03 14:47
작년 5.18기념 행사장에서 사귀게 된 대만청년이 있다. 그는 당시 국제 평화인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광주 5.18기념식에 참여했고, 나는 지인의 도움으로 일반인 신분으로는 드물게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왔다. 소지품을 일일이 꺼내 보여주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번거로움 끝에 입장했더니 행사장 한켠 뒷자리에서 잘생긴 청년이 정중하게 자리를 권했다.

작년에 만난 대만청년... 올해도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길 기대

그는 대만 청년이었다. 나는 이국의 청년과 나란히 앉아 국가기념일 행사를 참관하는 경험을 하게 됐는데 그는 한국 정치상황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또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기념식 내내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식이 끝나고, 그는 일행들과 단체행동을 해야 했고 나도 약속한 친구들이 있어서 헤어져야 했다. 그에게 다음에 광주에 오거든 꼭 우리 집에서 묵어야 한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간간이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리고 올해 5월을 맞아 그에게서 다시 메일이 왔다. 반갑게도 이번 33주년 5.18행사에 또 참석하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면서 일정은 바쁘지만, 꼭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 서글서글한 대만 청년과의 재회가 기다려지면서도 난 마음 한켠이 착잡했다. 그가 편지 말미에서, 올해도 같이 망월동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 노래를 5.18기념식 식순에서 영구 퇴출 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다름 아닌 행사주체인 국가보훈처의 주도하에 야심 차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체인 보훈처가 국가기관이라는 점과 공공기관 특유의 저돌적인 추진력을 고려해 볼 때 이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무척 크다.

이런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시도는 사실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5.18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기 위한 음모는 MB정부 전 기간에 걸쳐 집요하게 시도되었고, 그때마다 시민의 강렬한 항의에 부딪혀 무산되었던 전례가 있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를 공식 식순이 아닌 식전행사에 끼워 넣는 등 교묘한 수법으로 자행되었던 퇴출시도들을 무산시킨 것은 유족과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 한 곡을 부르기 위해 구 묘역에서 따로 반쪽짜리 행사를 치르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MB정부가 님을 위한 행진곡 퇴출 사유로 내세운 이유는 노랫말이 지나치게 대정부 투쟁의지를 고취시킨다는 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시민은 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

MB정부, '님을 위한 행진곡' 대체 곡으로 '방아타령'

'님을 위한 행진곡'을 식순에서 지우고 MB정부가 대체 곡으로 내민 악보에는 '방아타령'이었다. 그해 5.18기념식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 대신 흥겨운 '방아타령'이 연주되고 있었다. MB정부의 집요한 퇴출 음모는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야 다소 소강상태를 보였고, 그 틈을 이용해서 작년에 실로 몇 년 만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합법적으로 제창할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던 순간, 기념식장 분위기는 술렁거렸고 시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금기시 했던 노래를 되찾은 감회를 강하게 표출했다. 

"정부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방해했었거든. 몇 년 만에 다시 부르니까. 시민이 저렇게 흥분하는 거야."

노래에 얽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대만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때 그는 노래 한 곡을 놓고 벌이는 국가와 시민들 간의 살벌한 대치 상황을 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불과 1년 만이다. 새 정부 들어 처음 맞는 5월에 즈음하여 다시금 '님을 위한 행진곡' 퇴출 음모가 구체화되고 있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3.1절이나 8.15행사에는 공식 가요가 있는데 같은 국가기념일인 5.18행사는 지정곡이 없으니, 격을 갖추기 위해 기념노래를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이야 말로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망월동에서 불리던 5.18의 공식 노래라는 데 시민은 이견이 없다. 그러니 보훈처의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

이 황당한 비극은 행사 주관처가 시민 주도에서 보훈처로 이관되면서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보훈처가 주관하는 5.18 행사는 서서히 형식적이고 건조한 묘지행사로 박제화 되어갔다. 추모 분위기는 점점 쇠퇴해지고 행사는 언제부터인가 당대 주요 정치인들이 정중앙의 내빈석을 차지하고 앉아 거행되는 조금은 무거운 정치 행사로 변질되었다.

항쟁의 주최였던 시민은 초대받지 못했고, 해가 갈수록 연로해져 가는 유족들은 하얀 상복을 입고 불청객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지정석을 지키고 있었다. 행사 주체가 보훈처로 넘어간 후의 한결같은 망월동 풍경이었다.

그런 건조한 5.18 국가기념일 행사를 본연의 추모 행사로 일깨워 주는 유일한 요소는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마저 빼앗아 5.18을 추모내용이 전무한 공허한 행사로 변질시키려는 음모가 보훈처의 4800만 원짜리 깜짝 이벤트로 전개되고 있다. 그것이 5.18, 33주년을 맞이하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의 현실이다. 

해마다 5월의 관심사 중 하나였던 현직 대통령의 망월동 5.18묘역 행사 참석여부는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당장 국가기관의 약탈로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지켜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현 정부 최고 수장인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이미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노래를 되찾고 겨우 일 년, 새 정부 들어 처음 맞는 5.18에 보훈처가 보여주는 강경책은 곧 현직대통령의, 5.18을 대하는 입지를 설명하고도 남는다. 또다시 지난한 싸움에 직면하여 시민, 유족들은 심한 5월 '피로증후군'을 느낀다.

이번 기회에 아예,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 공식 노래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것만이 끊임없이 표출되는 퇴출 시도를 근절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이 시민들 사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이토록 집요하게 퇴출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행사 전용 애창곡일 뿐 지정곡이 아니기 때문에 야기된 현상이라는 뒤늦은 자각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 대체할 그 어떤 곡도 시민들은 원하지 않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그 어떤 곡도 시민들은 원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상상 가능한 유일한 해결책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광주민중항쟁 공식 노래로 승격시키는 것 뿐이다. 그렇지만 보훈처는 시민들의 이런 의사를 수렴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과거 MB정부가 집요하게 시도했다 무산된 실패작에, 새 정부가 '공모'라는 민주적인 형식을 살짝 업그레이드하여 출품한 현 정부의 파생상품에 불과하다.  

이번 5.18기념노래의 선정 과정의 '공모'라는, 언뜻 민주적이고 시민 참여적인 듯 한 방식이 기만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공모' 과정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 투입될 '소수 전문가 집단'의 견해와 의견을 나는 또 신뢰하지 못 하겠다. 구 도청 터의 보존여부와 5.18공법단체 등록 문제에서 애정 없는 전문가 집단들이 보여줬던 미온적인 태도는 전혀 사태해결에 바람직한 중재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보훈처의 5.18기념식 노래 공모가 설령 현실화 된다 해도 공모과정의 신뢰도와 정확성이 얼마나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도 심히 의심스런 부분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해서 '산자여 따르라'로 마무리 되는 님을 위한 행진곡 이외의 어떤 노래도 망월동의 주제가가 될 수 없다. 가사의 출처를 제공한 백기완 선생은 한 명의 훌륭한 시인으로 익히 알려졌다. 거기에 곡을 붙인 김종률씨는 남도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향토음악가다.

그의 대표곡 '소나기', '영랑과 강진'등의 목가적이고 서정성 짙은 노래들은 소녀들에게는 엄청난 인기였다. 나도 한때는 순전히 김종률이란 가수가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시내의 모 교회를 일 년이 넘도록 다녔던 기억이 있다. 가수 김종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친구 꾐에 빠져 지루하기 짝이 없던 교회 학생부 교리를 일 년 넘게 들었다. 그만큼 그는 지역의 소녀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히트작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이 노래는 처음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영혼결혼식장의 웨딩마치로 연주된 후로 치열했던 시대상황 만큼이나 다양한 용도로 쓰여졌다. 수많은 투쟁현장의 출정가였고, 분신정국의 장송곡이었고, 다시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희망가로 울려 퍼지기도 했다. 이제 진혼곡 '님을 위한 행진곡'의 진정한 저작권자는 오랜 세월 그것을 향유하고 지켜 온 민주시민들이다. 그리고 그 노래의 주인인 시민들은 지금 5.18민주화운동의 공식 노래로 이 노래가 채택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2013년의 5.18의 슬로건은 '다시 평화와 통일로'이다. 보훈처의 5.18 새노래 공모라는 충격 이벤트로 문을 연 5월 주간이 얼마나 평화와 통일에 부합하는 컨텐츠로 진행될 지는 의문이다. 정권초기부터 보훈처가 보여주는 과잉 행보는 현직 대통령의 수첩리스트를 지나치게 의식한 셔틀정신에서 기인한다. 이 완력을 상대로 노래를 지켜내기에 시민들의 힘은 너무 미약하고, 이미 상대 후보에게 92%라는 몰표를 행사했던 전과를 범한 전력까지 있다. 이 시점에 지역 정치인들이 취하는 포즈란 고작 반대 성명서 따위나 발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시민들 눈을 의식한 제스추어에 불과하다.    

망월동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자던 대만청년과의 약속 지켜질지

5.18은 점점 다가오는데 5.18공식 노래를 기어이 공모에 붙이겠다는 보훈처장의 확고한 의지는 거듭 확인되었고 올 행사 때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은 식전행사로 돌리겠다고 한다. 망월동에서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던 대만 청년과의 약속은 그러므로 지켜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작년 그는 대한민국은 반드시 정권교체 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나는 그 부분에 비관적이었다.  

"설마! 당신 나라 사람들이 바보인가? 이렇게 당하고도 여당을 지지할 것 같다니."
"너네 대만도 만만치 않던데? 예전에, 천수이벤 그 사람 자기 몸에 스스로 총 쏘고 나서  정권연장에 성공했잖아."
"그 자신 정권연장은 성공했지만, 결국 정권승계는 실패했잖아. 대한민국도 이대로 가면 정권교체 되고 말거다." 
"너네 총통처럼 자작극 벌이는 인간을 우리나라에서는 '자해공갈단'이라고 부르지. 그리고 우린 프린세스 다이어리 수첩공주가 차기 정권을 노리고 있고."
"프린세스 다이어리? 이쁜 별명이다."
"이뻐서 붙은 별명은 아니고 하튼, 그녀가 대통령이 되고 말거야."

당시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나는 그에게 우린 다시 망월동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없다는 비보를 겹쳐 전해야 한다. 그가 절대 아닐 거라고 확신했던 후보를 여왕으로 옹립하는 데는 '그렇게 당하고도 찍어주'길 주저 않는 메저키즘적 성향의 오차범위내 유권자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가 선망하는 5월의 고장은 가망 없는 후보에게 92% 몰표를 몰아준, 선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지역감정의 광신 집단으로 희화화되어 선거후의 흥미로운 뒷담화로 회자되었다. 그리고 수순처럼 정권창출에 비우호적이었던 도시에 가장 먼저 취해진 조치는 노래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이 복창되는 한 이 도시는 영원히 불령선인들의 조계지로 끊임없이 통치의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대만 청년을 맞아 망월동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퇴출대상 우선순위 노래가 아닌 당당한 5.18기념식의 지정곡으로서 그러고 싶다. 그렇잖아도 "당신 나라 이상합니다. 설마 그런 정권을 다시 연장시켜 준단 말이에요?" 거듭 묻던 이국의 청년에게 올해부터 우리는 더 이상 이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진정 괴로운 일이다.

행사 주관처인 국가기관이 자행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들을 최대한 국격이 손상당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설명하기에는 나의 영어구사 능력이 그다지 출중하지 못하다. 그 해맑은 대만 청년을 상대로 시시콜콜 국가 체면 떨어뜨리는 소리를 까발려봤자, 결국은 그것이 누워서 침뱉기더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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