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공작, 97년 북풍보다 무거운 사건 박근혜 대통령 '결자해지'... 대선 무효? 역풍불 것"
[인터뷰] '원세훈 게이트 진상조사위' 간사 김현 민주통합당 의원
▲ 김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실현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점에서 이익을 본 박근혜 대통령이 결자해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과 직접 관련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수사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라"는 것이다. ⓒ 남소연
지난 2012년 12월 11일, 김현 당시 민주통합당 선대위 대변인이 안산에서 서둘러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선대위 대변인이 문재인 대선후보의 연설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달려간 곳은 서울 강남 도곡동 소재 S오피스텔이었다. S오피스텔의 607호는 민주통합당에 의해 "국정원 소속 여직원이 '인터넷 댓글 달기' 등을 통해 불법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지목받은 장소였다.
국회 정보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현 의원은 "당에서 몇 달 전부터 국정원 심리정보국 3개팀 70여명이 인터넷에 댓글을 단다는 제보를 받고 국회 정보위에서도 질의한 적이 있었다"며 "그런 상태에서 그날 현장에 갔으니까 느낌이 팍 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의 오피스텔 습격사건'이라고 낮췄지만 사건은 이후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혹은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의혹'으로 커졌다. 당시 오피스텔을 가장 먼저 찾았던 김 의원은 민주통합당의 '원세훈 게이트 진상조사위' 간사로 활동하며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사건의 중심에 섰다.
"'댓글 공작 안했다'는 국정원장의 말, 믿고 싶었다"
김현 의원은 3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미 2012년 10월 유인태 의원이 제보를 바탕으로 국회 정보위에서 심리정보국 활동과 관련해 질의한 적이 있다"며 "이를 별도로 브리핑했지만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주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에서 처음으로 문제제기할 당시 원세훈 원장 등 국정원 고위간부들은 "국내 정치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렇게 국정원에서 워낙 세게 부인하자 민주통합당도 한 발 물러섰다.
김현 의원은 "당시 새누리당이 NLL 회담록과 관련해 원세훈 원장을 고발한 상태여서 민주당과 원 원장이 묘하게 '(비우호적) 협력관계'에 놓여 있었고, '심리정보국에서 댓글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 원장의 답변을 믿고 싶었다"며 "이것을 순진하다고 비판하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히 민주통합당이 대선 투표일을 앞두고 이 사건을 터뜨려 결과적으로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선거 네거티브 전술'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댓글의 흔적을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또 국정원 여직원이 장시간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아서 (국정원 여직원의 감금상태만) 크게 부각되면 공방만 벌어졌다. 게다가 12월 16일 서울경찰청이 '댓글 흔적이 없다'고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 기름에 불을 부은 격이다. 이렇다 보니 오히려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잘못된 수사를 지적하는 경찰 내부 목소리 없어"
▲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과 관련한 경찰 수뇌부의 축소·은폐 수사 지시 의혹에 대해 김현 의원은 "김용판 서울청장과 서울청 수사국장이라는 두 개의 경로를 통해 수서경찰서장과 권은희 수사과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외압이 가해졌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과는 다르게 경찰 안에서 잘못된 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다"고 꼬집었다. ⓒ 남소연
불신받던 경찰수사에서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 등이 지난해 8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올린 400여건의 글 가운데 100여 건이 '정치관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최소한 국내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제9조를 정면으로 위반했음을 경찰에서 밝혀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개월여 동안 진행된 경찰수사는 '축소·은폐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국내정치에는 개입했으나 대선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라는 묘한 판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김현 의원은 "김용판 서울청장과 서울청 수사국장이라는 두 개의 경로를 통해 수서경찰서장과 권은희 수사과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외압이 가해졌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과는 다르게 경찰 안에서 잘못된 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김현 의원은 윗선의 외압을 '실행'시킨 이광석 수서경찰서장(현 서울지하철경찰대장)이 '경찰대 출신'이라는 점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지금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의 중간 책임 라인에 많이 포진해 있다. 국가가 세금으로 육성한 이들의 역할에 기대하는 바가 많다. 그런데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사건의 핵심적 지휘선상에 있는 사람이 경찰대 출신이었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 중에) 잘못된 수사를 반성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을 이끌어갈 주요 세력군인데 크게 우려스럽다."
김현 의원은 "경찰에서는 민병주 심리정보국장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참고인이라며 소환조사하지도 않고 수사를 종결했다"며 "특히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 의혹 사건을 제보받으면 증거확보를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데 부인하는 국정원 쪽 말만 믿고 조사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시작은 창대, 끝은 미미'했던 MB 검찰로 돌아가나?"
또한 김현 의원은 당시 경찰 최고 수뇌부였던 김기영 경찰청장 책임론도 제기했다. 그는 "김기용 청장과 김용판 서울청장은 중간수사 결과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데 동의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사건 축소·은폐 의혹의) 공모자다"라며 "두 사람이 그렇게 가이드 라인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현 의원은 "김기용 청장은 내년 4월까지 임기를 채우고 싶어한 걸로 안다"라며 "그렇게 자신의 보신을 위해 여당에서 볼 때 무리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기용 청장의 태도가 2012년 12월 19일 이전과 이후 달라졌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기습적으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인 2012년 12월 17일 (민주당 소속) 국회 행안위 위원들이 김기용 청장 등을 찾아갔더니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했다. 자신을 믿어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 김기용 청장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 또한 김현 의원은 "국정원 개혁은 외부가 아니라 자정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며 남재준 현 국정원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남재준 원장은 원세훈 전 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를 파헤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 남소연
하지만 검찰수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검찰(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직후 원세훈 전 원장과 민병주 전 국장을 소환조사한 데 이어 국정원까지 압수수색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수사 속도였다. 그런데 2일 '인터넷 댓글 작업'을 외부에 알렸다고 지목된 전직 국정원 직원 2명의 집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김현 의원은 이를 두고 "기계적 형평성 꿰맞추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정원 댓글 공작을) 제보했다고 의심받거나 파면된 사람들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라며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보다 선행해서 압수수색을 벌여야 할 사람이 있다. 오피스텔에서 인터넷 댓글을 단 국정원 여직원 김아무개씨다. 경찰이나 검찰에서는 김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민병주 전 국장은 딱 한 번 불러 조사했다. 그런데 제보자들로 알려진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남재준 현 원장이 MB 관련성 여부 파헤쳐야"
김현 의원은 "검찰은 원세훈 원장이 어느 정도까지 관여했는지, 김용판 서울청장 등 경찰 수뇌부가 어떻게 외압을 행사하고 수사를 방했는지, 윤종훈 목사가 이끄는 십알단과 국정원의 연계성은 있는지 등을 밝혀내야 한다"며 "국정원장을 소환조사하고, 국정원을 12시간 동안 압수수색했는데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내면 경찰보다 더 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현 의원은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한) 새누리당-국정원-청와대 등 3각 편대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내지 않으면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를 실시해 국민적 의혹을 밝혀낼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을 그것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정원과 민간인 알바를 이어준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현 의원은 "국정원 개혁은 외부가 아니라 자정노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며 남재준 현 국정원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총선과 대선에 대응하기 위해 국정원 조직 개편을 토대로 댓글작업이 진행됐다"며 "국정원법에 따라 조직개편은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남재준 원장은 원세훈 전임 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를 파헤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자신과 관련한 기록물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놔 지금은 볼 수 없다"며 "국회에서도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원세훈 원장의 대통령 독대보고 내용은 남재준 원장밖에 모른다"고 말했다.
김현 의원은 "원세훈 원장의 4년간 재임, 이명박 대통령 통치와 관련한 4대강과 해군기지, 해외순방 등에 집중된 댓글작업 등은 이 대통령과 원 원장의 특수관계를 보여준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관련성 여부를 밝히는 것은 남재준 원장의 몫으로 남아 있다"고 거듭 남재준 원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댓글작업으로 이익을 본 박근혜 대통령이 결자해지하라"
▲ 김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실현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점에서 이익을 본 박근혜 대통령이 결자해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과 직접 관련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수사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라"는 것이다. ⓒ 남소연
또한 김현 의원은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 사건은) 국가정보기관이 '국가안보 수호'라는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무너뜨렸다"라며 "지난 97년 안기부의 북풍사건보다 무거운 사건이다"라고 지적했다. '실패한 공작'과 '성공한 공작'의 차이가 그 이유였다.
"국정원 심리정보국 3개팀 직원 70여명과 규모가 파악되지 않는 알바들이 댓글을 다는데 그것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2010년까지만 해도 SNS 등에서 새누리당이 밀렸는데 어느 날부터 역전된 것을 보면 '작전'이 들어온 게 분명하다. 국정원도 '젊은 층 우군화 전략'에 따라 인터넷 댓글 달기 등 심리전을 벌였고, <뉴스타파>에서도 특정 시기에 어마어마하게 움직인 계정들이 있었다고 보도하지 않았나? 이에 따라 20-30대의 부동층이 심리를 바꾸었고, 이는 문재인 후보가 밀린 투표 결과로 이어졌다."
김현 의원은 "북풍사건은 실패했고, DJ가 당선되면서 국정원으로 개칭했다"며 "반면 이번 사건(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으로 이익을 실현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점에서 이익을 본 박근혜 대통령이 결자해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과 직접 관련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수사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라"는 것이다.
다만 김현 의원은 "이 사건이 대선결과 무효운동으로 이어지면 역풍이 풀 것이다"라며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극단적인 주의 주장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있어서 우리는 본류를 찾아가겠다"며 "진상조사위 간사로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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