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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 철탑농성 200일 현장에서

등록|2013.05.05 15:41 수정|2013.05.05 15:41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창립2003년 7월 8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듭니다. ⓒ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사진 편집


지난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3년이 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만 궁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오래전부터 그래 왔을지도 모릅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요?

현대기아차 그룹에서 조직적으로 암암리에 저질러 왔던 불법파견 이야기입니다. 저는 지난 2000년 7월 3일 현대차 울산공장 수동변속기 엑슬기어 생산부서에 들어가 일 했었습니다. 빙빙 돌아가는 라인에서 중간축은 옥수수 튀겨내는 기계같이 생겼고 양 옆으로 연결된 쇠 뭉치엔 타이어 바퀴가 달리는 기계장치였습니다. 무거워 손으론 들지 못하고 기계로 들어올려 적재 시킨 후(보통 14대 기준으로) 보내는 일을 했었지요.

라인을 타는 일이다 보니 쉬는 시간외엔 화장실도 가지 못했었습니다. 처음 자재로 하나씩 조립해 오는 과정에서 일하는 십수 명의 조립공들은 모두 정규직이었고, 제 앞에서 일한 페인트공과 적재해 보내는 저하고 둘만 하청업체 직원이었습니다. 한달 후 월급 받아보고는 기가 막혔습니다. 시급이 2100원이었는데 시간으로 계산된 금액 만큼만 달랑 들어왔습니다.

'정규직은 가족수당 외 추가 수당만 십수 종류나 되는데 우린 이게 뭐냐?'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실망스러웠었습니다. 저임금이다보니 노동 시간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금 장시간 노동'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었는데 딱 그짝이었습니다.

'뭐 이런 일자리가 다 있냐?'

다니는 내내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몇개월 지나다보니 소위 3디 업종(힘들고,더럽고,어렵고) 일자린 모두 하청노동자들이 도맡아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탐문해보니 정규직이 외면하는 일자리엔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노동강도 차이보다 월급차이가 심한 것에 더 화가 났습니다.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문 철탑 연리문화제 현장 ⓒ 변창기


가족과 함께 생계 유지를 해야 할 가장이었던 저는 노동착취와 인간차별이 작용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다닐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도 그렇게 다닌지 10여년만에 억울하게도 정리해고 당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듈화 사업. 생전 보도듣도 못한 생산 방식의 탈바꿈으로 제가 일하던 곳 비정규직은 모두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말았던 것 입니다. 그것이 2010년 3월 중순경. 누구에게 하소연 한 번 못해본게 억울했습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하소연 할 곳이 없었습니다. 대법원에서 현대차를 불법파견 기업으로 판결 내려진 후 제가 다시 하소연 할 수 있었던 곳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03년 5월 2일 모였습니다. 5공장에 다니던 안기호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앞장섰습니다. 그는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그 해 임단투 출정식을 할 때 였습니다. 뭐라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작은 체구를 한 한 노동자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할사람은 자신을 따라 오라 했습니다. 약 100명의 노동자가 그를 따라 정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그들을 따라 모임 장소로 갔었습니다. 저는 이미 90년 초부터 현대목재 다닐때 노조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수 있는 길은 노조를 만들고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 울산환경운동연합에서도 철탑 200일 문화제에 참석 ⓒ 변창기


모인 사람들은 앞장섰던 안기호 씨를 임시 의장으로 세웠습니다. 각 공장별 대표를 뽑고 우선 이름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위원회'(비투위)라고 하였습니다. 안기호 씨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사내하청이라 하지 않고 비정규직이라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안기호 씨는 현대차가 도급을 가장한 불법파견으로 하청업체를 만들어 노동자를 간접고용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듯 했습니다. 어느날 안기호 의장에게 하청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몰라 물어 본적이 있었습니다. 안기호 의장은 대답했습니다.

"하청은 도급을 말하는 것이고 비정규직은 현대차에 소속된 것이라 이해하면 됩니다. 현대차는 합법을 가장한 불법도급업체 입니다. 현대차 사내업체는 현대차의 부서로 보면 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도급업체지만 현대차는 생산기업이므로 회사내에 도급업체를 둘수있는 조건이 못됩니다. 외주업체라면 도급업체지요. 업체 사장이 그 공장 주인이니까요. 하지만 현대차 안에 있는 업체는 자신의 공장이 아니잖아요. 사람 장사하는 업체죠. 변창기 동지가 일하는 곳이 그 업체 사장 것 입니까? 아니잖아요. 정몽구 거잖아요. 사람만 투입시키고 있잖아요."

안기호 의장 이야기 듣고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비정규직,불법파견,위장도급 이란 말들을 그에게 처음 들었습니다. 90년대 초 현대목재에서 알게 되었던 이영도 형 다음으로 참 멋진 사람 같았습니다. 저보다 조금 작은 몸집인데도 그는 선동을 잘했습니다. 사람이 진실하고 정직했습니다.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했습니다. 노동자로 살면서 이영도 형 다음으로 마음에 와 닿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믿고 따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자는 대로 집회도 참석하고 선전물도 만들어 배포하고 이공장 저공장 다니며 점심시간 집회도 열심히 따라 다녔습니다.

▲ 손재주 있는 노동자가 만든 작품도 판매. 수익금은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기금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 변창기


노조가 아닌 비투위란 조직으론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 7월 8일 그동안 비투위 활동하던 회원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그 때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현대차에 비정규직 노조가 뜨자 현대차 노무관리는 갖가지 노동탄압을 자행했고 비정규직 노조는 문제가 터질때마다 공장별로 힘을 합쳐 투쟁해 나가곤 했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 말 경 불법파견 문제가 공식적으로 터졌습니다. 현자노조에서 현대차를 불법파견 기업으로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2004년 12월 말 현대차는 127업체 9234공정 모두가 불법파견 이라고 판정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불법파견 이라면 당연히 정규직 전환"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 비정규직 노조 차원은 아니지만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출입문을 돌아 다니면서 했고 점심시간에는 식당을 돌면서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1년간 했습니다. 현대차는 업체장을 시켜 갖가지 물리력을 동원했습니다. 현장에 보관해 놓은 몸벽보를 훔쳐 가기도 하고 노동가 틀려고 구해둔 녹음기도 훔쳐갔습니다. 어느때 본관 집회에선 앞에 서있던 경비들이 저를 지목하여 집단 폭행도 했었습니다. 그 때 당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2010년 3월 중순경 저는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불법파견 이라는 노동부 판정을 받았으면서도 저는 그들이 "어쩔수 없다"는 말에 정리해고 문서에 이름을 쓰고 말았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다닌지 10년차 였을때 정리해고 당했고 정리해고 당한지 4개월 후 인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를 불법파견으로 판결내린 것 이었습니다. 절망에서 다시 희망이 되던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 절차를 마치고 집회가 있으면 되도록 참석 하려고 합니다. 현대차 출근을 중단한지 3년이 넘었고 지금은 일용직 일자리 얻어 다니고 있고 해서 몸이 피곤한 날에는 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화가난다!어느 단체가 현장에서 핏켓 시위를 했습니다. ⓒ 변창기


2013년 2월 23일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 씨가 대법원 최종판결 받으면서 다시 정규직 전환에 대한 희망을 가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차는 대법원에서조차 현대차를 불법파견 대기업이라고 최종판결까지 내렸는데도 여전히 현대차만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올들어 여기저기 대기업들이 앞다퉈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정규직 전환 한다는 소식을 여러차례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선별채용만 강행할 뿐 불법파견에 대한 해결책인 정규직 전환에 대해선 아직까지 한마디 없습니다.

현대차의 행실을 보다못한 대법판결 승소자 최병승과 현 비정규직 노조 사무장이 함께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문 쪽 한 철탑위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로 200일이 되었습니다. 철탑농성 200일인 오늘 오후 2시부터 '연리문화제'란 이름으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곳에도 저는 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대구나 부산지역에서도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서울에서는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해고자들과 서울,경기지역 노동자와 지역 활동가들이 모여 함께 200일 문화제를 했다고 합니다.

지역 청소년들의 율동오늘 발표 하려고 많은 날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 변창기


오후 2시엔 현대차 불법파견 규탄집회를 하였고, 오후 4시부턴 지역의 여러단체가 추진한 연리문화제를 진행했습니다. 많은 가족이 참석해서 함께 즐겁게 보냈습니다. 임시본부로 쓰이는 천막엔 최병승,천의봉 두 농성자에게 전달하라며 많은 물품이 와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케잌 이었습니다. 케잌은 누군가 손으로 직접 만든거 같았습니다. 예쁘게 그림도 그려 넣었고 글도 써있었습니다. 어두워 지면서는 영화제도 했습니다. 그렇게 200일 하루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10년 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투쟁에 들어 갈때도 그 현장에 있었고 철탑농성 200일을 맞는 오늘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5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렀는지 모르지만 재벌기업 회장들이 대부분 미국으로 간다고 합니다.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도 '경제사절단'으로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3년 전에 경험했던 비정규직 노동자 현실과 오늘날 비정규직 현실.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어 보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희망인 것은 이미 대법원에서 현대차를 불법파견 기업이라고 판결 내렸다는 것이고 200일 째 넘기는 최병승,천의봉 두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리문화제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두 지도자왼쪽은 강성신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고 오른쪽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 입니다. ⓒ 변창기


모두가 가버리고 다시 적막한 밤. 철탑엔 밤 새 찬바람이 불 것이고 바로 옆 철길과 도로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칠 것 입니다. 비라도 내리면 빗 소리와 축축한 곳이지만 피할곳 없는 철탑위에서 또 그렇게 뜬 눈으로 날을 지새울 것 입니다. 아직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봄날은 멀어 보일 뿐입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수는 없을거 같습니다. 오늘 낮 부모 따라 온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불평등한 노동구조 비정규직 노동제도를 물려줄순 없으니까요. 5월 5일, 어린이 날 이네요. 지금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될 때는 부당하게 노동착취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리문화제를 내려다 보는 두 비정규직 농성자두 농성자는 연리문화제에 온 어린이들에게 선물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내일이 어린이 날이라고요. ⓒ 변창기


손으로 만든 케잌누군가 손으로 만든듯한 케잌이 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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