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도 비정규직?

24시간 근무 2~3시간 취침... 계약만료 고용불안 고민까지

등록|2013.05.06 17:12 수정|2013.05.06 17:56
지난해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의 비율은 48%에 달한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비정규직인 셈이다. 노동절이었던 지난 1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철탑 농성은 197일째를 맞았다.

비정규직 600만 시대에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도 비정규직 근로자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아파트다. 아파트가 급증하면서 아파트 관리직원들의 숫자도 늘었다. 하지만 아파트 근로자 90% 이상은 아파트주택관리직원위탁회사 소속이다. 입주민이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라 용역업체가 아파트에 파견하는 방식이다. 전국아파트노동조합연맹은 "아파트 근로자 거의 대부분이 용역업체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광주지역 아파트는 35만6900채(2011년 기준)다. 지역 전체 주택 수가 54만4900채로 시민 10명 중 7명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아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가 그들이다.

경비업무의 경우 24시간 격일 근무가 원칙이다. 오전 6시 아파트 지하~지상 순찰로 일과가 시작된다. 순찰을 끝내고 재활용 분리수거를 한다. 이후 아파트 주변 쓰레기를 줍는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한 번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한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닦는다. 화단의 풀을 정리하고 중간 중간 택배를 받는다. 아파트 순찰을 마치고 자정이 돼서야 하루를 정리하고 눈을 붙일 수 있다.

최근에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이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아파트보다 경비관리 체계가 엄격하다. 24시간 근무 중에서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은 2~3시간이 전부다. 임금은 월 70~150만 원까지 아파트마다 제각각이다. 대체로 나이가 많을수록 적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건물 청소업무의 경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일한다.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토요일은 정오까지 근무가 일반적인데 한 달에 받는 임금은 100만 원도 못 된다. 외곽청소 근로자도 마찬가지다.

'당신 곁의 비정규직' 아파트 청소·관리 노동자

▲ 경비업 근로자 90% 이상은 용역업체 소속으로 비정규직이다. ⓒ 신원경


319세대가 살고 있는 광주 서구 ㄱ 아파트에는 2명의 경비원과 2명의 청소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경비 근로자 ㄴ씨(70)는 ㄱ 아파트에서 일한 지 올해로 14년째다. 그동안은 아파트 주민회의에서 직접 고용하는 식이었지만 금년 2월 1일부터 아파트가 경비관리용역업체와 계약하면서 ㄴ씨도 용역업체 직원이 됐다.

"나이 먹고 할 것이 없어 경비 일을 시작했다"는 ㄴ씨는 "60대 초반까지 계약기간 만료 시기와 함께 고용불안에 시달리곤 했다"고 털어놨다. ㄴ씨는 "잘리지 않기 위해 성실히 일하다 보니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A아파트에는 334세대의 가구가 살고 있다. 여기서는 경비직원 6명, 청소근로자 2명, 아파트외곽 청소근로자 1명이 근무한다. 김아무개씨(59)는 A아파트에서 근무한 지 3년 하고 2달이 됐다. 아파트 후문을 책임지고 있는 김씨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아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은행에서 30년간 일하고 퇴직했다. 모아둔 돈으로 서울 강남 삼성동에 식당을 차렸지만 '쫄딱' 망했다. '억' 소리 나게 돈이 깨졌다. 40평 식당에 월세 1000만 원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현재 조기연금 70만 원을 매달 받고 있다. 만 61세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지만 생활이 어렵다보니 조기연금을 신청해 2년째 받고 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네 번 일하는 데 월 153만 원을 받는다. 여기서 세금을 떼면 150만 원이 못 되는 돈을 받는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약 3984원이다. 최저임금 4860원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150여만 원이 되는 돈도 강북이나 변두리, 지역 아파트 경비보다는 많이 받는 축에 속한다.

적은 월급에 고용불안까지 시달리는 이유는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들은 아파트관리용역업체들과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 재계약이 안 될 때는 용역업체 소속인 경비직원도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 법적으로 고용승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11월에 제정된 '아파트관리업무 종사자들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지침'에 따르면 '아파트주택관리업자 변경 시 신규 업체에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고 명시돼 있다.

1년 단위 계약 일반적... 재계약 안 되면 일자리 잃어

▲ 광주 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 신원경


입주민대표회의에서 재계약을 의결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경비원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새해에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10년째 일하다 해고된 60대 경비노동자가 아파트 굴뚝에 올라가 고용안정보장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였다. 위탁관리회사 '한국주택관리'가 60세 이상이 된 14명의 근로계약을 해지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이 농성은 해고된 경비원 14명 중 복직을 원하는 7명이 일자리를 되찾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간접고용이다 보니 근로안전문제도 위태롭다. 지난해 7월 27일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청소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폭우로 지하실에 물이 차오르자 물을 퍼내기 위해 지하실로 들어갔다 감전사했다. 청소노동자 ㄷ씨는 2004년부터 일해왔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하루 8시간 근무에 월 7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임금을 받았다.

용역업체 측은 "위험하게 지하로 들어가 문제가 된 것"이라며 ㄷ씨의 죽음을 개인 과실로 돌렸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소가 비가 내릴 때면 지하의 물을 퍼내라고 청소 아주머니들을 질타했다는 것이 동료들의 증언이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ㄹ씨(63)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ㄹ씨는 "불성실하면 바로 자르겠다고 하는 까다로운 입주민을 상대할 때,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모시는 사람들이라는 직업적 책임감으로 버틴다"며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힘닿는 데까지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광주 신창동의 ㅁ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화란씨는 "아파트에서 일하시는 근로자분들이 비정규직인 줄을 몰랐다"고 말했다. 쌍촌동 ㅂ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이유진씨도 "잘 알지 못했다"며 "주위 많은 친구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아파트에서 근로하시는 분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국민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시대에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경비 아저씨', '청소 아주머니'의 자리도 매일이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