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새하얀 배꽃 물결, 장관이네요
개화에서 낙화까지, 천안·아산 2000㏊ 새하얀 배꽃 세상
▲ 지난 한 주 따뜻한 봄 볕에 배꽃이 활짝 피어 절정에 달했다. 수분을 마친 배꽃은 이번 한 주 열매를 맺기 위해 다시 꽃잎을 떨어뜨려 장관이 예상되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 봄 볕을 받은 배꽃이 눈부시게 피어났다. ⓒ 충남시사 이정구
▲ 4월말 만개했던 배꽃이 5월을 넘기며 절정에 이르고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지난 한 주 구름한 점 없이 맑은 봄날이 계속되자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는 흰 배꽃 잎이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을 이루었다.
천안시 성환읍에서 아산시 둔포면과 음봉면까지 평평한 밭고랑에서부터 산비탈 계곡까지 줄지어선 수천, 수만 그루의 배나무에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뿜어내는 흰 빛 물결이 마을 굽이굽이 넘실거리고 있다.
새하얀 배꽃벨트는 천안시 직산읍과 성환읍을 돌아 아산시 둔포면과 음봉면으로 이어져 거대한 융단처럼 펼쳐진다.
지난 한 주 절정에 달했던 배꽃이 수분을 마치자 결실을 맺기 위해 다시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다. 배꽃 낙화는 이번 주말까지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추운 봄... 배꽃개화 평년보다 일주일 늦어
▲ 배꽃은 한 나무에 8000~1만 송이의 꽃을 피우고, 인공수분을 통해 250여 개의 결실을 맺는다. ⓒ 충남시사 이정구
천안시는 1075농가 1288㏊, 아산시는 700농가 772㏊에서 배를 생산하고 있다. 두 도시의 대표농산물로 배를 첫째로 꼽는 이유다. 두 지역에서 생산되는 배는 5만톤 규모로 전국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배 작황에 따라 천안·아산 농업의 평균소득이 큰 폭으로 좌우될 정도다.
올해 배꽃 개화는 평년보다 일주일 이상 늦은 것으로 관측됐다. 현지 배 농가와 천안·아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평년 4월 23일을 전후해서 만개하던 배꽃이 올해는 26~30일 만개했다.
배꽃 개화기에 잦은 비와 저온현상이 계속돼 만개시점의 예측이 힘들었기 때문에 과수농가에서는 화접(인공수분)시기를 저울질 하느라 혼선을 겪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4월 중순까지 변덕스런 날씨가 계속됐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눈보라까지 흩날리는 이상기온을 보였다.
다행히 개화가 절정에 이른 4월말~5월초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맑은 날씨가 이어져 화접작업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최근 몇 년간 개화기 내내 비가 내리거나 날씨가 좋지 않았던 상황과 비교하면 올해는 한결 수월했다는 것이 현지 농민들의 말이다.
과수농사 7할은 봄 날씨가 좌우
▲ 올해 배꽃 개화는 평년에 비해 7~10일 늦어졌다. ⓒ 충남시사 이정구
▲ 지난 한 주 만개하며 장관을 연출했던 배꽃은 이번 주 다시 낙화하며 꽃비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 충남시사 이정구
화접을 마친 이후에도 5~6일 정도는 꽃송이가 달려 있어야 정상적인 수분이 이뤄진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은 5월 초까지 이상저온에 일조량 부족이 계속되는 바람에 많은 농가에서 피해를 입었다.
예년에는 화접 시기가 되면 강한 봄볕과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날씨로 과수 농민들의 복장이 가벼웠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4월 말인데도 두꺼운 겨울옷에 우비까지 입고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변덕스런 날씨가 과수농사에 가장 큰 복병이 되고 있다.
아산시농업경영인회 이홍섭 회장은 "과수농업의 7할 이상은 봄 날씨가 좌우하는데 최근 몇 년간 날씨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각했다. 특히 일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인 화접기간에 농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악천후가 계속돼 왔다. 올해는 다행히 꽃 잎 만개 시점에 날씨가 좋아 일단은 안심된다"고 말했다.
아산시 음봉면에서 배 농사를 짓는 박정우(45)씨는 "배꽃은 인공수분을 제때 하더라고 16℃ 이상 온도를 유지해 줘야 좋은 열매가 맺힌다. 따라서 앞으로 10일 이상 지켜봐야 좋은 착과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농민들은 올해는 배꽃이 평년보다 늦게 개화함으로써 오히려 저온으로 인한 냉해가 예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배나무 한 그루에는 8000~1만 송이의 꽃이 핀다. 이 중 화접에 의해 250개 정도의 열매가 맺힌다. 농민들은 봄과 여름을 지나 태풍피해까지 예측하며 수확기에 몇 개의 열매를 끝까지 매달고 갈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상품성이 좋은 배 하나를 수확하기 까지는 앞으로도 멀고 험한 여정이 남아 있다.
떨어지는 꽃잎이 더 아름답다
▲ 아산시 둔포면과 음봉면 과수단지에 들어서면 마을 입구마다 흐드러지게 핀 배꽃을 볼 수 있다. ⓒ 충남시사 이정구
▲ 4월22일~5월3일까지 화접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농민은 물론이고 군인, 경찰, 공무원, 회사원, 학생 등 6000여 명이 천안·아산 배 과수농장에 동원돼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 아산시
4월 말 절정에 달했던 배꽃은 인공수분을 마치고 5월로 접어들며 한 풀 꺾여 이번 한 주 낙화가 예상된다. 배꽃이 피어나는 모습도 장관이지만 착상에 성공해 열매를 맺기 위해 떨어지는 꽃잎은 개화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배 과수단지는 요즘 싱그런 들판 위에 새하얀 배꽃이 절정을 지나 꽃잎이 지며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천안시 성환읍 율금리와 왕림리를 돌아 아산시 둔포면과 음봉면으로 이어지는 야산과 밭고랑은 새하얀 융단을 펼쳐놓은 듯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천안시 성환읍에서 인근지역으로 한 필지, 두 필지 늘려가던 배 과수원이 현재 전국 최대의 과수단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천안시 성환·직산읍, 아산시 둔포·음봉면으로 접어들면 길과 마을을 제외하고 온통 새하얗다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이 곳에서 떨어지는 배꽃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들풀, 냉이꽃과 함께 어우러져 세상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뒤덮고 있다.
봄 날씨 추운 이유 있었다... 일본 오호츠크해상 '블로킹 하이'
▲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배꽃 개화기 새벽에는 기온이 영하까지 뚝 떨어져 꽃잎이 냉해를 입고, 한낮 기온도 10℃를 넘기지 못하는 이상저온현상이 계속됐다. ⓒ 충남시사 이정구
최근 들어 봄 날씨의 변덕이 유난히 심하다. 특히 올해 4월은 겨울 날씨를 무색케 할 정도로 춥게 느껴졌다. 배꽃보다 10일 정도 일찍 개화하는 벚꽃 만개 시기에는 겨울 복장이 어울릴 정도로 체감온도가 낮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4월 평균기온은 전국단위로 기상을 관측하기 시작한 1973년 이래 세 번째로 낮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기상청은 "지난 4월 한 달간 전국 평균기온은 평년(1981~2010년까지 30년 평균)보다 1.6℃ 낮은 10.3℃ 기록했다"며 "이는 2010년 4월(9.9℃), 1996년 4월(10.2℃)에 이어 가장 추운 4월 날씨였다"고 밝혔다.
4월 전국 평균기온은 기상청이 4월 한 달 동안 전국 45개 관측 지점에서 관측한 기온을 평균 낸 값이다. 지난달 전국 평균 최저기온은 4.4℃로 1996년 3.9℃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이처럼 4월 날씨가 추웠던 이유는 일본 동쪽 오호츠크해상에 '블로킹 하이(blocking high)'라 불리는 큰 고기압이 버티면서 공기의 흐름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던 찬 공기가 '블로킹 하이'에 가로막혀 한반도로 방향을 틀어 오래 머물러 있었다.
기상청은 5월 초까지 '블로킹 하이' 현상이 이어져 당분간 기온은 평년보다 다소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배꽃 개화기 새벽에는 기온이 영하까지 뚝 떨어져 꽃잎이 냉해를 입고, 한낮 기온도 10℃를 넘기지 못하는 이상저온현상이 계속됐다. 또 비를 동반한 강풍이 계속 불어 제때 인공수분을 하지도 못한 채 꽃잎이 떨어지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교차로>와 <충남시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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