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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가 미쳤다고 했지만, 억대 대박 쳤습니다"

[서울처녀 제주착륙기 18] 서울처녀가 만난 섬사람 1, 제주 중산간 피자집 사장님

등록|2013.05.12 20:28 수정|2013.05.12 20:28
육지에서 친구들이 내려오면 우선 반갑다. 사람도 반갑지만 그들의 지갑도 무척 반갑다.
"서울에서 왔으면 지역경제발전을 위해 돈을 쓰고 가야지!"라며 나는 당당하게 그들에게 밥을 살 것을 요구한다. 물론 내가 서울 살 적에 많이 베풀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주에 머무는 제한적 시간 안에 열릴 지갑들이기에 바쁘게 제주도의 맛난 먹거리를 소개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육지에서 먹기 힘든 몸(모자반)국, 갈치국, 각재기(전갱이)국, 근고기(제주산 돼지고기를 근으로 파는 것) 등을 먹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도 질릴 때가 있는 법. 피자를 먹겠다며 나를 오히려 끌고 가는 곳이 있었다.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해안가가 아니라 중산간 마을인 한경면 저지리다. 코딱지만한 그냥 제주 돌집인데 가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알고보니 나름 유명한 집인 모양이다. 피자는 나름 맛이 있는데 사장(장창언, 사진)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어째 좀 무서워 보인다. 인상파다. 어찌보면 촌스러운 가게 이름도 그렇고, 이런 곳에 관광객과 제주말을 쓰는 도민들이 다른 것도 아닌 피자를 먹으러 몰려오는 것도 희한하다 싶었다.

"피자가 맛있네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피자집이 대박이라니 거참…. 전 어쨌든 대평리 살고요. 언제 소주나 한잔 하시죠." 

인상파 아저씨는 육지에서 온 낯선 여자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고등어회와 한라산 소주를 앞에 두고 앉았다. 그의 인생 얘기를 듣다보니 재미져서 소주가 술술 넘어간다.

"내가 안 해본 게 없어요 진짜. 지금 이 가게 청수리로 옮긴다니까 점쟁이가 망한다고 그러네요. 처음에 저지리에 한다고 했을 땐 점쟁이가 미쳤냐고 했었구요."

▲ 후원했던 영화 '지슬'의 출연배우와 함께한 장창언 사장(오른쪽). ⓒ 조남희


제주도의 명물 피자집으로 성공하기까지 사실 지난 10년 세월은 그에게 부침의 연속이었다. 제주도 해양경찰이었던 그는 부친의 권유로 일찌감치 장사의 길로 들어섰지만 벌이는 일마다 '망해먹었다'.

독서실, Bar 경영에 이어 '지하경제'에도 몸담았다. 성인오락실과 성인PC방 등을 조폭과 운영하면서 하루 매출이 수천에 이른 적도 있었지만 동업하던 친구의 배신으로 날마다 찾아오는 빚쟁이들 등살에 그마저 접어야 했다. 남은 것은 빚이 2억. 교도관이자 그가 단 한 번도 생활비라는 것을 가져다 준 적이 없었던 그의 아내, 그가 '인생 멘토'라고 부르는 아내가 그제서야 그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살아…."

그때부터 아내가 말한 달리도서관과 한라산 학교라는 곳에 다니기 시작했다. 일종의 문화학교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그에겐 충격이 되었다.

'내가 가진 게 있어야 남들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돈만 좆으며 살아온 그였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가진 게 별로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과 섞여 1년을 살아보니, 그제서야 '내가 왜 망했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경제에서 나와 제주시의 7평짜리 공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인 음식을 해보기로 했다. 그게 피자집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한 음식이 맘에 안들면 직접 찌개를 끓일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었다보니 결국 좋아하는 일로 돌아온 셈이다. 피자 배달 가면 과거 어둠의 세계에서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던 조폭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으니 오히려 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인스턴트 피자를 며칠 배운 실력으로 배달 위주의 피자집을 하다가 '왜 피자를 이렇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슬로푸드와 피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달리도서관에서 만난 2명의 아줌마 동기들과 함께 '진짜 장사'를 해보기로 하고 피자집 장소를 물색하다 저지리에 있는 폐가를 우연찮게 임대 계약해버렸다. 임대가격은 연세 50만 원. 한 달 매출이 100만 원에 불과했던 가게는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억대 연봉자가 되었다.

▲ 저지리에 있는 농가주택을 개조한 식당. ⓒ 조남희


"장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장사는 고생을 파는 겁니다. 깡통 따서 재료 넣는 대기업식 프랜차이즈 피자를 먹으려는 게 아니라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는 것, 제주산 식자재를 직접 공수하고 요리하는 수고를 대신해주는 것이 식당의 본질이고 역할이죠."

기본으로, 과거로 돌아가자는 생각은 제주 사람으로서 제주도에 대한 재인식으로도 연결되었다. 과거 제주도는 변방이었고 유배지였지만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를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육지에서 대거 몰려들어온 사람들이 운영하는 펜션, 게스트하우스, 카페, 음식점 등이 가득찬 제주도의 현실을 보면서 제주 본토 사람으로서 지지 않겠다는 오기도 있었다.

'대박'난 집이다 보니 크고 좋은 관광단지 내 시설 안으로 들어오라고 사장이 직접 방문해 청했는데도 거절했다. 특정 계층을 위한 피자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다. 피자집 주인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저지리 이웃 마을인 청수리로 이전해서 공간을 새로 꾸밀 준비를 하고 있는 이 식당은 청수리의 마스코트로 마을과 함께 조화롭게 공존하려고 한다. 

▲ 한경면 청수리로 이전 중인 가게 모습. ⓒ 조남희


시간을 쪼개 농사일을 배우고 트랙터 운전 등 필요한 농사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이유다. 식자재 조달을 위해 아예 직접 돼지를 키울 계획도 있단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농사도 못 짓고 닭도 못 키우잖아요. 농사 지으면서 피자 구우면서 늙어가려고요." 

최근 도의원 연구모임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성공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형태의 비즈니스라는 의미이다.

여러 번 망해본 사람이라 그런지 겁이 없다. 지난 대선 때는 가게 천정에 떡하니 대놓고 문재인 후보의 선거포스터를 붙여놓고 할인 이벤트 공약을 해서 제주 선관위에서 선거법 위반이라며 경고장이 날라오기도 했단다.

힘든 인생수업을 거친 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 눈치보지 않고 살아가는 그를 보니 사람이 행복하는데 너무 많은 것은 필요하지는 않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된다. 소박하게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살아보겠다고 하는 내가 괜히 힘이 난다. 고등어회와 함께 한 한라산 소주의 야간 등반은 이날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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