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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규제 부활 논란... 싸게 파는 게 죄?

[현장]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토론회... 기변-저가요금제 차별 금지 추진

등록|2013.05.08 18:32 수정|2013.05.08 18:32

▲ 8일 오후 과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열린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보조금 차별 금지 방안을 놓고 학계와 시민단체, 이통3사, 정부 대표 10여 명이 열린 토론을 벌이고 있다. ⓒ 김시연


"휴대폰 싸게 팔았다고 처벌하는 법이 어디 있나?"

최근 단말기 보조금 규제 부활 움직임에 대한 한 온라인 판매업자의 항변이다. 차별이 문제라고 보조금을 규제하면 모든 소비자가 단말기를 비싸게 사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8일 오후 과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열린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방안 정책토론회'에선 보조금 차별 금지 방안을 놓고 학계와 시민단체, 이통3사, 정부 대표 10여 명이 열린 토론을 벌였다.

요금제 따른 보조금 차별 금지하고 분리 요금제 도입 추진

현재 미래창조과학부와 일부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통사 보조금 과열 경쟁을 막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규·기변·번호이동 등 가입 유형이나 요금제, 거주지역 등에 따른 보조금 차별을 금지하고, ▲'동일 단말기-동일 보조금' 원칙에 따라 이통사 보조금을 공시하는 한편, ▲자급제 단말기 가입자를 위한 할인요금제(유심요금제)를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아울러 고가 요금제를 3~6개월 의무 사용하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거나 제조사 장려금도 조사해 제재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시민단체나 사업자, 학계, 정부 쪽 모두 조금씩 입장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보조금 차별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가장 큰 반발은 2시간30분에 걸친 토론 막바지 청중석에서 나왔다. 단말기 보조금 과다 지급한 사업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 원 벌금형을 규정한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 법안이 화근이었다.

12년째 온라인 기반으로 단말기 유통사업을 하고 있다는 김아무개씨는 "저렴하게 판 걸 문제 삼는 건 우스광스럽다"면서 "소비자들도 저렴하게 구입해 좋은 부분인데 처벌하는 건 공감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소비자들이 정상가에 요금제를 선택하기보다 갤럭시S3 보조금 받고 고가 요금제 쓰는 이유는 그만큼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면서 "차별이 문제라고 보조금을 규제하면 전부 단말기를 비싸게 사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이에 이날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한 정진한 KISDI 박사는 "보조금 왕창 때리고 단말기 출고가를 고가로 책정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라면서 "보조금 죽인다고 출고가가 고가면 단말기가 안 팔려 가격을 낮추게 되기 때문에 단말기 값이 높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왜 싸게 사는 게 문제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정 박사는 "그 비용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게 문제"라면서 "다른 사람이 지출하는 걸 그 사람이 가져가는 게 형평성에 맞느냐는 문제가 보조금을 규제하는 이유가 된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3월부터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없애고 부당한 차별 행위에 대해서만 사후적으로 규제해 왔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고가 스마트폰 도입과 LTE 가입자 유치 경쟁으로 보조금 경쟁이 다시 불붙고 가계 통신비 부담이 늘면서 다시 보조금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문제는 보조금 규제에 따른 단말기 구입비용은 즉각 늘어나는 반면 단말기 출고가 인하나 요금 인하 효과는 불확실하거나 장기적으로 발생한다는 데 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역시 "보조금 규제하면 단말기를 싸게 살 기회가 없어진다는 우려에도 한두 명이 싸게 살 기회보다 전체 소비자 후생이 올라갈 수 있는 방법에 동의한다"면서도 "줄어드는 보조금을 상쇄할 정도로 인하된 요금제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리요금제 법제화 놓고 이견... SKT 대표는 '보조금 반성문'

▲ 하성민 SK텔레콤 대표이사가 8일 오전 을지로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동반성장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SK텔레콤


이에 정부와 KISDI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기존 단말기 할인 코스 외에 서비스만 가입할 경우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요금할인 코스로 분리하는 '분리요금제'를 대안으로 내놨다. 하지만 정작 이통3사는 분리요금제 법제화에 난색을 표했다. 이상헌 SK텔레콤 상무는 "요금제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보다 사업자 자율로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홍진배 미래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유럽 등은 분리요금제를 6~8년 전부터 시작했지만 우리 사업자들은 철저히 외면했다"면서 "안이 나오니까 시장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왜 여태껏 하지 못하고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실제 독일, 프랑스, 호주 등의 경우 유심요금제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반 요금제보다 월 평균 1만2천 원 정도 저렴하고 일본 NTT도코모의 경우 요금할인 코스 가입자 비중이 7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 과장은 "분리요금제로 이통사 매출이 감소할 수 있지만 단말기 판매가 이통사 본업이 아니다"라면서 "NTT도코모의 경우 오히려 재정 건전성이 더 좋아졌고 현금 지출은 줄이면서도 요금 할인으로 소비자에게 더 혜택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하성민 SK텔레콤 대표이사 역시 이날 오전 을지로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보조금 경쟁 과열을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다.

하 사장은 "시장 포화로 보조금 중심 번호이동 경쟁에 매몰돼 새로운 시장을 만들거나 경쟁력 있는 업체와 제휴하는 데 소홀했다"면서 "잦은 단말기 교체로 자원을 낭비했고 신규·번호이동 등 일부 고객에게 혜택이 편중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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