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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수리를 요청하기 망설이는 이유

소비자는 갑이지만, 회사 입장에선 언제나 '을'인 서비스기사들

등록|2013.05.09 17:21 수정|2013.05.09 17:22
"아나~~, 정말 짜증나네. 인터넷이 또 자꾸만 끊긴다고."
"또? 왜 자꾸 그러지. 서비스도 받았는데. 계속 끊기니?"

컴퓨터 앞에 앉아 얼굴에 헤드셋을 끼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열심히 게임을 하던 아들녀석이 또 궁시렁 댄다. 학교 공부가 끝난 후 밤 늦은 시간까지 자기는 도저히 학원 의자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항의하던 사춘기의 녀석이 얼마전부터 전과목 학원을 끊고 저녁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놀릴 수는 없어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자격증을 따겠노라는 약속을 받고 합의하에 이뤄진 학원끊기다. 엄마로서 썩 내키지는 않지만 학원의자에 밤늦게까지 도저히 앉아서 공부하기 힘들다며 나에게도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녀석의 요구를 끝내 외면할 수 없어 내린 결정이었다.

아직 컴퓨터학원 등록 전이라 녀석은 저녁시간을 이용해 여유롭게 마음껏 컴퓨터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열심히 게임을 하는 중에 툭하면 인터넷이 끊기면서 녀석의 궁시렁이 시작된 것.

사실 인터넷이 툭하면 끊긴 지는 한참됐다. 하지만 녀석이 게임을 하는 중에만 끊겼기에 내심 모른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얼마전 드디어 가입돼 있는 A사 서비스센터를 통해 서비스요청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서비스기사가 방문했고, 그는 아파트 벽면에 위치한 인터넷선의 끝부분이 낡아 접지가 잘 안돼 인터넷이 끊긴 것이라며 수리했으니 다시 끊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서비스센터가 아니라 본인에게 직접 연락을 달라고 당부했다.

본사에서 모니터링 전화가 오면 서비스 잘 받았다는 말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눈치로 알 것 같았다. 분명 서비스를 했는데 서비스한 곳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미일테고, 그 직원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려니 짐작했다. 인터넷이나 가전제품 서비스 한두 번 받아본 것도 아니고 척하면 척 아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같은 문제가 또 발생했다는 것이다. 고쳤다고 했는데도 그놈의 인터넷이 또 툭하면 끊긴다고 아들녀석이 야단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서비스센터에 연락해 문제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서비스를 하기는 한 것이냐고 따지고 싶지만 요즘 유행하는 '갑'과 '을'의 관계가 나를 부담스럽게 한다.

분명 A업체와 나 사이에서는 내가 갑의 위치일 것이다. 나는 서비스요금을 지불하고 당당하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보장받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A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을'의 위치일 수밖에 없는 서비스기사가 나를 망설이게 한다.

'갑'인 내가 A사에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경우 회사와 '을'의 관계에 있는 그 기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사에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그 기사에게 다시 서비스를 요청할 경우 꽉 짜여진 서비스 스케줄 속에서 그가 나를 위해 회사 모르게 일부러 시간을 내야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 기사를 다시 부르기가 차마 미안하다는 마음도 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소비자인 '갑'으로서 당당하게 다시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내게 있지만 나의 권리주장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다른 '을'이 나를 망설이게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갑'과 '을'이 존재한다. 나역시 누군가에게는 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을일 수도 있다. 갑과 을은 또다른 이들과 갑과 을의 관계로 얽히고 섥히면서 갑의 권리주장이 또다른 을의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갑인 나와 을인 인터넷업체. 갑인 인터넷업체와 을인 서비스기사. 갑과 을의 관계가 나를 답답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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