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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유족의 주장, 역사학자 판단 모독"

6개 역사단체 "<백년전쟁> 정치적 접근 반대"...문제제기 이인호 "회견내용 말도 안돼"

등록|2013.05.09 18:30 수정|2013.05.09 18:30

▲ 9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근현대사 진실찾기 프로젝트 '백년전쟁'관련 기자회견에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등이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시기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전략을 비판적으로 다룬 동영상 다큐멘타리 <백년전쟁>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는 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권, 유족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역사 왜곡·음해 주장을 사료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소로까지 이어진 최근 일련의 사태 배경에 의구심이 있다며 청와대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역사 관련 6개 학술·시민 단체는 이날 '<백년전쟁> 고소사건에 대한 역사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참여단체는 한국역사연구회(회장 하일식), 역사문제연구소(소장 김동춘), 역사학연구소(소장 전명혁),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이성호), 역사정의실천연대(상임대표 한상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대표 안병우)다.

이들은 "지난 5월 2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족이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민족문제연구소를 검찰에 고소하기에 이르렀다"면서 "유족의 주장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추구할 가치와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영상물 <백년전쟁>의 인터뷰에 응한 역사학자들의 학문적 판단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역사 연구자들은 영상물 <백년전쟁>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정치적 목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는 이미 그 개인의 인격을 떠나 '역사적 해석'의 차원에 들어선 지 오래"라며 "지난 세기에 대한 역사적인 판단은 다양한 학문적 논의와 연구·토론을 통해 이루어져야 마땅하지, 권력에 기대어 사법적 영역으로 가두려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두툼한 반론 자료집 PDF 홈페이지에 공개

▲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본편 1부 '두 얼굴의 이승만' 포스터 ⓒ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승만 박정희 추종세력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바로 민족문제연구소"라며 "그들은 집요하고 맹렬하게 연구소를 공격함으로써 연구소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한편으로, 이승만기념관과 현대사연구원이라는 엄청난 반대급부를 얻으려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현대사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그들만의 논리를 세우려한다, 목표는 이승만 박정희 정통론의 확고한 정착"이라며 "일본과 한국이 동시에 겪고 있는 퇴행적 역사인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을 직시해달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기자회견에서 '이승만, 그는 과연 진정한 독립운동가였나'라는 두 권의 자료집을 배포했다. 한 권은 53페이지고, 또 한 권은 146페이지다. 또한 홈페이지를 통해 PDF 파일로 모두 공개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했다. 연구소는 이 자료집에서 <백년전쟁>의 이승만편에 제기된 각종 비판을 근거자료를 대며 꼼꼼히 반박했다.

연구소는 "우리는 학술단체로서 사료가 없는 내용은 말하지 않는다, 있는 사료는 꼭 찾는다"면서 "이승만 연구에서 기초가 되는 1차 사료가 <신힌민보>와 <지미오십년사>다, 여기 나온 내용조차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런 자료를 제시하라"고 말했다.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최근 청와대의 한 수석이 학술 관련 3대 기관장에게 <백년전쟁> 대응을 언급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련의 상황에 정치적 배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공개 토론회, 또는 공개 심포지엄을 해서 학문적으로,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 풀어나가려고 한다"면서 "그렇게 해야지 지금처럼 다 거짓말이라느니,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느니, 비학문적으로 국민들을 선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소측은 보수단체인 '시대정신'이 제안한 공동 심포지엄에 "언제든 응할 자신이 있고 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시대정신 측은 최근 연구소측의 심포지엄 의지에 의문이 든다고 밝힌 바 있다. 임헌영 소장은 "이미 수십년 전에 역사적 학술적 평가가 끝난 인물을 왜 21세기에 와서 다시 우상화 작업을 하려 하는가"라며 "그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회견에는 임 소장과 윤 전 총장을 비롯해 함세웅 연구소 이사장(신부), 박재승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이이화 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이 참석했다.

이인호 전 대사, 회견 지켜보고 자료 챙겨... "보고싶은 것만 찾은 것"

▲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러시아 대사)이 지난 3월 13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원로급 인사 오찬 회동에 참석했다. 이날 이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왼편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 청와대


한편 회견장 객석에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러시아 대사)이 참석해 주목을 끌었다. 이 이사장은 지난 3월 13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원로급 인사 오찬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백년전쟁'이란 영상물이 많이 퍼져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라는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 "이런 역사 왜곡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틀 후 이 사실이 <조선일보>에 처음 보도됐고 이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백년전쟁>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회견을 지켜보다가 후반부인 11시 40분경 회견장을 떠난 이 이사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짧은 인터뷰에서 "(회견 내용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정치적, 사법적 차원이 아닌 학술적 차원에서 이 내용이 다뤄져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를 표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 이번 논란을 일으킨 일종의 관계자인데, 기자회견 어떻게 봤는가.
"여기서 발언한 내용은 학계에서 논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것을 만든 사람들은 학자들도 아니고, 자기들이 보고싶은 것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찾아들어간 것이다. 학문적으로는 이야기할 자리도 못된다. 내가 문제제기를 했던 것은 이것이 동영상이라고 다큐멘타리라고 하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젊은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니까 제기했던 것이다."

- 오늘 어떻게 직접 오게 됐는가.
"어떤 식으로 반박을 하는지, 만든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지, 들어보려고 왔다."

- 자료집도 챙겼고, 직접 들어보니까, 회견 내용은 어떤가.
"짧게 이야기하면 또 괜히 오해가 되겠지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거두절미하고 맥락은 보지 않고. 가령, 예를 들면 당시 <호놀룰루 스타블러틴>지에서 이승만이 '우리 학교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반일 감정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고 한 것은 교포사회에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한 것이고, 그런 변명을 했다는 자체가 벌써 이승만 박사가 항일운동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일본 신문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

- 저쪽 주장의 핵심 중 하나는 이 부분이 학술적 논의가 아니라 고소 고발 등 정치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 같다는 것인데.
"그것(고소고발)은 유족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다. 학술적인 차원은 아니다."

- 그렇다면 학술적인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는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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