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아들 대신 감옥 간 운전수, 내 인생을 바꿨다"
[인터뷰] 서칫 로찬 자 '비욘드 네팔' 대표
어느 날이었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사람이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조사를 맡은 경찰은 트럭 운전수의 실수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트럭 운전수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와 다르게 증언했다. 트럭 주인의 아들이 운전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트럭 운전수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정해진 길을 가야 하는 변호사는 나를 만족 못 시켜"
지난 9일 오후 7시 한양대 정문 앞 한 찻집에서 만난 서칫 로찬 자 '비욘드 네팔' 대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의 길을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트럭 운전수는 가난해서 주인이 주는 돈을 받고 (주인의 아들 대신) 감옥에 갔다. 대신 트럭 운전수는 가족들에게 돈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 처지에서 보면 자기를 죽인 사람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이렇게는 정의를 지킬 수 없다."
서칫은 "트럭 운전수는 가난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 것이다"라며 "변호사로 활동하면 돈이야 벌 수 있겠지만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정해진 길을 따라 가야 한다. 그래서 변호사는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네팔 최대 규모의 국립 트리뷰반 대학교에서 법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서칫은 28살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아버지도 변호사였다. 하지만 변호사는 네팔의 현실 앞에서 무력했다. 돈 앞에서는 정의와 진실도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변호사의 길을 접고 NGO 활동가를 선택했다.
"일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고, 정의를 생각할 수 있어서 NGO 활동가를 선택했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다. 네팔에서 NGO는 미래가 있는 직업이다. 변호사만큼은 아니지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문제없다."
"NGO가 '달러 벌어오는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서칫에 따르면,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는 3만 곳이 넘는다. 시민사회가 충분하게 발달하지도 않았는데도 네팔에서 이렇게 NGO가 난립하는 이유를 서칫은 이렇게 설명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아주 작은 그룹들도 NGO 관련법에 따라 등록만 하면 다 NGO로 활동할 수 있다. 그렇게 등록하면 NGO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NGO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외국 후원자한테서 돈이 들어오고, NGO들은 이 투자금을 쓴다. 그래서 NGO 사이에서 경쟁도 있다. NGO가 '달러를 벌어오는 기계'(dollar-making machine)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아직 정부의 역할이 적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네팔은 지난 2008년에서야 왕정을 폐지하고 '네팔 연방 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서칫은 "도로가 잘 정비되지 않아서 중앙정부가 지역에 접근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NGO가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팔의 NGO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지역개발에 주력하는 NGO이고, 둘째는 정책입안에 주력하는 NGO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네팔의 여자는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NGO들의 활동으로 양성평등하게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법이 생겼다. 두 번째 NGO 유형은 사회운동의 성격을 갖는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를 모두 하는 유형이다."
서칫은 "그렇게 정부가 할 수 없는 역할을 NGO가 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NGO를 별로 안좋아한다"고 전했다. NGO가 정부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현실을 정부 쪽에서도 경계한다는 얘기다.
"네팔 NGO, 외국 후원자에 많이 의존"... '비욘드 네팔' 창립
변호사의 길을 포기한 서칫이 처음 들어간 NGO는 네팔 농촌재건운동 단체인 'RRN'(Rural Reconstruction Nepal)이었다. RRN은 '농촌재건활동'을 펼치는 일종의 '풀뿌리시민운동단체'다. 서칫은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활동을 펼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재건을 통한 빈곤퇴치에 머물지 않고, 인권신장과 사회정의 실현 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새마을운동'과는 좀 달라 보인다.
RRN을 이끌고 있는 아준 칼키 박사는 지난 2011년 네팔의 인권신장과 최빈국의 빈곤퇴치에 앞장선 점을 인정받아 제14회 지학순 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 수상식에서 아준 칼키 박사는 "정의, 평화, 인간애의 원칙에 기반을 둔 세상을 건설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칫은 성공회대의 'NGO 지도자 과정'을 거쳤다. 그는 "(성공회대 유학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사람으로서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었다"며 "사람에게는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NGO의 또다른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서칫은 지난 2009년 자신의 고향인 박타푸르(Bhaktapur, 히말라야 남부도시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에서 '비욘드 네팔'(Beyond Nepal)이라는 NGO를 창립했다. 제3세계와의 공정무역 활동을 벌였던 정성미씨와 함께였다. 네팔인과 한국인이 힘을 합쳐 NGO를 창립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성공회대가 개설한 석사 프로그램인 '아시아 시민사회 지도자 과정(MAINS)'에서 만났다.
"네팔의 많은 NGO들은 외국인 기부자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첫 세대들은 그런 외국인 기부금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NGO들이 그런 외국인 투자금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점점 더 많이 외국 후원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NGO를 '달러 벌어오는 기계'로 생각하고 있다. 어감은 안 좋지만."
카페 비욘드, 럽시캔디, 써질로 냅킨... '자립형 NGO' 꿈꾸다
비욘드 네팔은 '자립형 NGO'를 지향하고 있다. 서칫도 "자립(독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국 후원자들에만 의존하고 있는 기존의 NGO 운영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단체 이름에 '~을 넘어서'라는 뜻을 가진 '비욘드'(beyond)가 포함된 이유기도 하다.
비욘드 네팔은 지난 4년간 ▲'카페 비욘드' 설립 ▲벽돌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와 도서관 건립 ▲'럽시캔디' 판매망 구축 ▲현지 적합 농사기술 보급 ▲친환경 화장실 설치 ▲태양광 조리기 보급 ▲대안생리대 제작·보급('써질로 냅킨 프로젝트') 등을 펼쳤다.
이해준 전 <헤럴드경제> 디지털뉴스센터장은 지난해 6월 언론에 기고한 글(이해준의 희망여행기(6))에서 "비욘드-네팔이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고, 그 핵심은 농민을 주체로 세우는 일이었다"며 "건물이나 도로를 지어주고 마는 식의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서칫도 "자립에 중점을 두고,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젊은 사람들에게 심어 주려고 한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네팔은 농업 이외에 다른 산업이 거의 없다. 거의 모든 것을 수입해서 쓰고 있다. 이렇게 네팔은 완전히 (해외) 의존적이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 농부들에게 그렇게 한다. 지원받을 수야 있지만 항상 그렇게 의존하지 말고 자신들의 힘으로 자립하라고 말이다."
"기다리기만 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어"
서칫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기다리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며 "일단 혼자서라도 일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참여하고, 결국은 같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다리기만 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비욘드 네팔도 처음엔 두 명이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시작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오더라.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하게 된다는 신념을 공유하게 됐다."
자립(self-reliance)은 '욕망'(desire)과 '경험'(experience)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서칫의 생각이다. 그는 "(네팔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내 욕망과 정성미씨의 경험이 만나서 큰 힘이 됐다"며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칫은 한양대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건강한 학교 만들기사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주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건강한 학교 만들기사업'은 라오스와 스리랑카, 네팔, 몽골 등 4개국 아이들이 건강한 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각국의 고유한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하는 프로젝트다.
"정해진 길을 가야 하는 변호사는 나를 만족 못 시켜"
▲ 지난 2009년 비욘드 네팔을 창립한 서칫 로찬 자 대표. ⓒ 구영식
"트럭 운전수는 가난해서 주인이 주는 돈을 받고 (주인의 아들 대신) 감옥에 갔다. 대신 트럭 운전수는 가족들에게 돈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 처지에서 보면 자기를 죽인 사람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이렇게는 정의를 지킬 수 없다."
서칫은 "트럭 운전수는 가난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 것이다"라며 "변호사로 활동하면 돈이야 벌 수 있겠지만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정해진 길을 따라 가야 한다. 그래서 변호사는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네팔 최대 규모의 국립 트리뷰반 대학교에서 법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서칫은 28살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아버지도 변호사였다. 하지만 변호사는 네팔의 현실 앞에서 무력했다. 돈 앞에서는 정의와 진실도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변호사의 길을 접고 NGO 활동가를 선택했다.
"일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고, 정의를 생각할 수 있어서 NGO 활동가를 선택했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다. 네팔에서 NGO는 미래가 있는 직업이다. 변호사만큼은 아니지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문제없다."
"NGO가 '달러 벌어오는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서칫에 따르면,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는 NGO는 3만 곳이 넘는다. 시민사회가 충분하게 발달하지도 않았는데도 네팔에서 이렇게 NGO가 난립하는 이유를 서칫은 이렇게 설명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아주 작은 그룹들도 NGO 관련법에 따라 등록만 하면 다 NGO로 활동할 수 있다. 그렇게 등록하면 NGO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NGO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외국 후원자한테서 돈이 들어오고, NGO들은 이 투자금을 쓴다. 그래서 NGO 사이에서 경쟁도 있다. NGO가 '달러를 벌어오는 기계'(dollar-making machine)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아직 정부의 역할이 적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네팔은 지난 2008년에서야 왕정을 폐지하고 '네팔 연방 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서칫은 "도로가 잘 정비되지 않아서 중앙정부가 지역에 접근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NGO가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팔의 NGO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지역개발에 주력하는 NGO이고, 둘째는 정책입안에 주력하는 NGO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네팔의 여자는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NGO들의 활동으로 양성평등하게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법이 생겼다. 두 번째 NGO 유형은 사회운동의 성격을 갖는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를 모두 하는 유형이다."
서칫은 "그렇게 정부가 할 수 없는 역할을 NGO가 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NGO를 별로 안좋아한다"고 전했다. NGO가 정부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현실을 정부 쪽에서도 경계한다는 얘기다.
▲ 비욘드 네팔이 박타푸르시 바르바르광장에 연 '카페 비욘드'. ⓒ 비욘드 네팔
"네팔 NGO, 외국 후원자에 많이 의존"... '비욘드 네팔' 창립
변호사의 길을 포기한 서칫이 처음 들어간 NGO는 네팔 농촌재건운동 단체인 'RRN'(Rural Reconstruction Nepal)이었다. RRN은 '농촌재건활동'을 펼치는 일종의 '풀뿌리시민운동단체'다. 서칫은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활동을 펼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재건을 통한 빈곤퇴치에 머물지 않고, 인권신장과 사회정의 실현 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새마을운동'과는 좀 달라 보인다.
RRN을 이끌고 있는 아준 칼키 박사는 지난 2011년 네팔의 인권신장과 최빈국의 빈곤퇴치에 앞장선 점을 인정받아 제14회 지학순 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 수상식에서 아준 칼키 박사는 "정의, 평화, 인간애의 원칙에 기반을 둔 세상을 건설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칫은 성공회대의 'NGO 지도자 과정'을 거쳤다. 그는 "(성공회대 유학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사람으로서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었다"며 "사람에게는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NGO의 또다른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서칫은 지난 2009년 자신의 고향인 박타푸르(Bhaktapur, 히말라야 남부도시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에서 '비욘드 네팔'(Beyond Nepal)이라는 NGO를 창립했다. 제3세계와의 공정무역 활동을 벌였던 정성미씨와 함께였다. 네팔인과 한국인이 힘을 합쳐 NGO를 창립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성공회대가 개설한 석사 프로그램인 '아시아 시민사회 지도자 과정(MAINS)'에서 만났다.
"네팔의 많은 NGO들은 외국인 기부자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첫 세대들은 그런 외국인 기부금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NGO들이 그런 외국인 투자금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점점 더 많이 외국 후원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NGO를 '달러 벌어오는 기계'로 생각하고 있다. 어감은 안 좋지만."
카페 비욘드, 럽시캔디, 써질로 냅킨... '자립형 NGO' 꿈꾸다
비욘드 네팔은 '자립형 NGO'를 지향하고 있다. 서칫도 "자립(독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국 후원자들에만 의존하고 있는 기존의 NGO 운영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단체 이름에 '~을 넘어서'라는 뜻을 가진 '비욘드'(beyond)가 포함된 이유기도 하다.
비욘드 네팔은 지난 4년간 ▲'카페 비욘드' 설립 ▲벽돌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와 도서관 건립 ▲'럽시캔디' 판매망 구축 ▲현지 적합 농사기술 보급 ▲친환경 화장실 설치 ▲태양광 조리기 보급 ▲대안생리대 제작·보급('써질로 냅킨 프로젝트') 등을 펼쳤다.
이해준 전 <헤럴드경제> 디지털뉴스센터장은 지난해 6월 언론에 기고한 글(이해준의 희망여행기(6))에서 "비욘드-네팔이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고, 그 핵심은 농민을 주체로 세우는 일이었다"며 "건물이나 도로를 지어주고 마는 식의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서칫도 "자립에 중점을 두고,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젊은 사람들에게 심어 주려고 한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네팔은 농업 이외에 다른 산업이 거의 없다. 거의 모든 것을 수입해서 쓰고 있다. 이렇게 네팔은 완전히 (해외) 의존적이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 농부들에게 그렇게 한다. 지원받을 수야 있지만 항상 그렇게 의존하지 말고 자신들의 힘으로 자립하라고 말이다."
▲ 비욘드 네팔은 '써질로 냅킨'이라는 대안생리대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 비욘드 네팔
"기다리기만 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어"
서칫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기다리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며 "일단 혼자서라도 일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참여하고, 결국은 같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다리기만 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비욘드 네팔도 처음엔 두 명이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시작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오더라.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하게 된다는 신념을 공유하게 됐다."
자립(self-reliance)은 '욕망'(desire)과 '경험'(experience)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서칫의 생각이다. 그는 "(네팔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내 욕망과 정성미씨의 경험이 만나서 큰 힘이 됐다"며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칫은 한양대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건강한 학교 만들기사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주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건강한 학교 만들기사업'은 라오스와 스리랑카, 네팔, 몽골 등 4개국 아이들이 건강한 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각국의 고유한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하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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