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아빠로 산 지 50일, 부러워하지 마시라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⑨] 자유남과 기러기 아빠의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혼자 잔다
홀로 잠자리에 든 지 어느덧 5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3월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난 뒤 홀로 남겨지신 장모님을 위로하기 위에 아내와 아이들은 산청 처가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 덕에 지금 나는 서울에서 예상치 못한 기러기 아빠 노릇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격주 주말부부쯤 되려나.
덕분에 나는 주위의 많은 유부남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어쨌든 모든 유부남들에게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것은 마누라의 잔소리와 아이들의 칭얼거림인데 나는 그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늦은 시각까지 술을 먹어도, 주말에 이불 속에서 늦장을 피워도 눈치 볼 것 없는 삶.
어디 그뿐인가. 난 식구들과 헤어진 후 그동안 아이 셋 둔 아빠로서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호사도 누렸다. <아이언맨3> <고령화 가족> <전설의 주먹> <신세계> 등 최신 영화들을 섭렵했고, 5월에만 계룡산, 북한산을 다녀왔다. 과거 결혼하기 전 내가 시간만 나면 했던 취미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나의 생활에 대해 가장 부러워하는 이는 다름 아닌 아내였다. 그녀는 비록 몸은 친정에 가 있지만, 셋째를 업은 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등 일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며 투덜댔다. 오히려 아이들을 한 눈에 살필 수 없는 한옥의 특성상 더욱 힘들다며 내린 아내의 결론. 결국 이 상황에서 가장 편한 건 남편인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에 덧붙이는 가시 돋친 한숨소리.
그러나 막상 아내에게 그런 힐난 비슷한 부러움을 받고 있자니 문득 억울해졌다. '나 혼자 휴가라'는 아내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자식들을 모두 멀리 떠나보낸 채 50일을 지내고 있는 내가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족의 빈자리
최근 대구에선 치과의사가 기러기 아빠로서의 삶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워낙 사회가 팍팍해 사건은 금방 묻히고 말았으나, 당시 난 아이를 이제 막 키우기 시작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 기사를 무심코 넘길 수 없었다.
치과의사라면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돈도 벌고 지위도 있는 직업인데, 무엇이 그를 자살로 몰아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과연 나도 그와 같이 기러기 아빠 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자살을 생각하게 될까? 결혼 전 홀로 생활하는데 익숙했던 나도 외로움을 느낄까?
그리고 우연찮게 이어진 50일 간의 어설픈 기러기 아빠 생활.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에 따라 충분히 자살할 수 있다는 것. 기러기 아빠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
처음에는 처자식과 떨어지면 나의 일상이 결혼 전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구들과 함께 하던 시간에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혼자 책과 음악을 보고, 홀로 여행을 다니면 된다고 여겼다. 물론 식구들이 없는 만큼 외롭기야 하겠지만 그만큼 자유시간을 얻게 되니 그에 필요한 기회비용이겠거니.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비록 나의 일정은 앞서 언급한 시간표대로 흘러갔지만 그 행위들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은 결혼 전과 전혀 딴판이었다. 결혼 전에는 위의 행위들이 지금의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하나의 증거였지만, 기러기 아빠에게 그것들은 단지 남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혼 전에는 그토록 좋아했던 취미생활들이 이리 덧없게 느껴질 줄이야.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혼자 영화를 보고 홀로 여행을 다녀도 채우지 못하는 허전함. 그것은 가족의 빈자리 때문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언제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인데, 나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살아왔던 만큼 무의식적으로 아내와 내가 이룬 가족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갑작스레 사라진 공간에 다른 것을 채우지 못해 헛헛해 할 수밖에.
물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가족 외에 다른 의미부여 대상을 찾고 삶의 균형을 이루겠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했다. 퇴근 후 텅 빈 집에 들어서면 아직까지도 아이들이 달려 나와 외치는 "아빠"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니 말이다.
결국 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자괴감을 갖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허무함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러기 아빠들의 문제는 가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작 그 가족이 부득불 헤어지게 되자 그 빈자리에 다른 의미부여 대상을 찾지 못해 벌어지는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은 뭐로 끼니를 때우지...
어설픈 기러기 아빠로서 나의 삶이 고단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형이상학적인 이유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저녁 식사였다. 어쨌든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먹어야 했는데, 결혼 전에는 어머니, 결혼 후에는 아내가 차려준 밥상에 익숙해 있었던 만큼 내게 요리 자체는 고역이었다. 나는 요리 대신 설거지 당번 아니던가. 상황이 이러하니 퇴근할 때만 되면 고민 시작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끼니를 때우지? 뭐 좋은 건수 없나?
기러기 아빠 생활 처음에는 무조건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갔으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밖의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질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밥을 해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자취 경험 한 번 없는 내게 요리는 최악의 임무라는 점이었다. 밥이야 전기밥솥이 알아서 해줬지만 다른 반찬을 만드는 것이 수월치 않았다. 그러니 매일 먹는 것이 만만한 계란프라이나 김치찌개일 수밖에.
게다가 이런 나를 더욱 곤경으로 몰아세운 것은 이번에 장모님이 보내주신 한약에 딸린 금식 목록이었다. 돼지고기, 닭고기, 밀가루 음식, 찬 음식, 생 무 등. 정말이지 혼자 요리를 해먹고 살아야하는 나같은 남자에게 위의 목록은 최악이었다. 인스턴트 식품을 사도 거의 모든 것이 돼지나 닭고기를 재료로 하고 있는 만큼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요리를 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인데 여기에다 금식 목록까지 더하니 차라리 이 기회에 요즘 유행하는 1일1식을 해 봐?
아빠 많이 자고 와
여러모로 고달픈 기러기 아빠 생활. 그러나 문제는 그렇다고 처자식을 지금 당장 서울로 올라오게 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물론 나 역시 아직 자유를 더 누리고 싶다는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보다는 외가에서의 전원생활을 완벽하게 즐기고 있는 아이들을 강제로 데려오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 차에 타면서 울지는 않을런지.
회색의 아파트 숲만 보이는 서울의 집과 달리, 푸르른 자연 속에서 하나 되어 뛰어 노는 아이들. 녀석들만 보고 있노라면 산청과 같은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정답이었다. 장난감 대신 찌그러진 모종삽을 가지고 놀고, 책으로 보는 대신 직접 토끼 귀를 잡아 흔들고, 아침마다 신선한 계란을 직접 닭으로부터 가져오는 것이 진정한 배움 아니겠는가. 나 역시도 어렸을 때 가장 재미있던 기억은 동네 뒷산에 올라 개미굴을 파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족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걱정이기도 했다. 아빠라는 존재의 부재가 녀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했다. 보통 남아들의 경우 아빠를 보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게 마련인데 녀석들에게 그런 기회를 박탈시켜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이들을 조금 더 시골에 둘 것이냐, 아님 서울로 불러 올릴 것이냐. 이런 나의 갈등을 알아차렸는지 까꿍이는 수화기에다가 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빠, 많이 자고 와."
이제는 하룻밤부터 시작해서 최소 열 밤까지 셀 수 있는 까꿍이가 굳이 숫자를 들먹이지 않은 채 잠을 운운한 것은 그 의미가 뻔하다. 그만큼 더 외가에 남고 싶다는 것. 이제 일주일 뒤면 다시 회색빌딩의 서울이란다. 까꿍아, 산들아, 복댕아 조금 더 열심히 놀고 있으렴.
▲ 남자 혼자 사는 집스산한 풍경 ⓒ 이희동
홀로 잠자리에 든 지 어느덧 5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3월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난 뒤 홀로 남겨지신 장모님을 위로하기 위에 아내와 아이들은 산청 처가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 덕에 지금 나는 서울에서 예상치 못한 기러기 아빠 노릇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격주 주말부부쯤 되려나.
덕분에 나는 주위의 많은 유부남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어쨌든 모든 유부남들에게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것은 마누라의 잔소리와 아이들의 칭얼거림인데 나는 그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늦은 시각까지 술을 먹어도, 주말에 이불 속에서 늦장을 피워도 눈치 볼 것 없는 삶.
▲ 우중충한 빨래 색깔남자만 있다보니 원색이 사라졌다 ⓒ 이희동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나의 생활에 대해 가장 부러워하는 이는 다름 아닌 아내였다. 그녀는 비록 몸은 친정에 가 있지만, 셋째를 업은 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등 일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며 투덜댔다. 오히려 아이들을 한 눈에 살필 수 없는 한옥의 특성상 더욱 힘들다며 내린 아내의 결론. 결국 이 상황에서 가장 편한 건 남편인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에 덧붙이는 가시 돋친 한숨소리.
그러나 막상 아내에게 그런 힐난 비슷한 부러움을 받고 있자니 문득 억울해졌다. '나 혼자 휴가라'는 아내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자식들을 모두 멀리 떠나보낸 채 50일을 지내고 있는 내가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족의 빈자리
최근 대구에선 치과의사가 기러기 아빠로서의 삶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워낙 사회가 팍팍해 사건은 금방 묻히고 말았으나, 당시 난 아이를 이제 막 키우기 시작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 기사를 무심코 넘길 수 없었다.
치과의사라면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돈도 벌고 지위도 있는 직업인데, 무엇이 그를 자살로 몰아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과연 나도 그와 같이 기러기 아빠 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자살을 생각하게 될까? 결혼 전 홀로 생활하는데 익숙했던 나도 외로움을 느낄까?
그리고 우연찮게 이어진 50일 간의 어설픈 기러기 아빠 생활.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에 따라 충분히 자살할 수 있다는 것. 기러기 아빠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
▲ 남자가 혼자 살때 필요한 공간밥도 먹고 글도 쓰는 좁은 공간... ⓒ 이희동
처음에는 처자식과 떨어지면 나의 일상이 결혼 전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구들과 함께 하던 시간에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혼자 책과 음악을 보고, 홀로 여행을 다니면 된다고 여겼다. 물론 식구들이 없는 만큼 외롭기야 하겠지만 그만큼 자유시간을 얻게 되니 그에 필요한 기회비용이겠거니.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비록 나의 일정은 앞서 언급한 시간표대로 흘러갔지만 그 행위들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은 결혼 전과 전혀 딴판이었다. 결혼 전에는 위의 행위들이 지금의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하나의 증거였지만, 기러기 아빠에게 그것들은 단지 남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혼 전에는 그토록 좋아했던 취미생활들이 이리 덧없게 느껴질 줄이야.
▲ 북한산 문수봉오랜만에 홀로 떠난 등산 ⓒ 이희동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혼자 영화를 보고 홀로 여행을 다녀도 채우지 못하는 허전함. 그것은 가족의 빈자리 때문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언제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인데, 나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살아왔던 만큼 무의식적으로 아내와 내가 이룬 가족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갑작스레 사라진 공간에 다른 것을 채우지 못해 헛헛해 할 수밖에.
물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가족 외에 다른 의미부여 대상을 찾고 삶의 균형을 이루겠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했다. 퇴근 후 텅 빈 집에 들어서면 아직까지도 아이들이 달려 나와 외치는 "아빠"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니 말이다.
결국 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자괴감을 갖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허무함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러기 아빠들의 문제는 가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작 그 가족이 부득불 헤어지게 되자 그 빈자리에 다른 의미부여 대상을 찾지 못해 벌어지는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은 뭐로 끼니를 때우지...
어설픈 기러기 아빠로서 나의 삶이 고단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형이상학적인 이유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저녁 식사였다. 어쨌든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먹어야 했는데, 결혼 전에는 어머니, 결혼 후에는 아내가 차려준 밥상에 익숙해 있었던 만큼 내게 요리 자체는 고역이었다. 나는 요리 대신 설거지 당번 아니던가. 상황이 이러하니 퇴근할 때만 되면 고민 시작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끼니를 때우지? 뭐 좋은 건수 없나?
▲ 텅 빈 냉장고혼자 살면서 밥을 해먹기란 쉽지 않다 ⓒ 이희동
게다가 이런 나를 더욱 곤경으로 몰아세운 것은 이번에 장모님이 보내주신 한약에 딸린 금식 목록이었다. 돼지고기, 닭고기, 밀가루 음식, 찬 음식, 생 무 등. 정말이지 혼자 요리를 해먹고 살아야하는 나같은 남자에게 위의 목록은 최악이었다. 인스턴트 식품을 사도 거의 모든 것이 돼지나 닭고기를 재료로 하고 있는 만큼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요리를 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인데 여기에다 금식 목록까지 더하니 차라리 이 기회에 요즘 유행하는 1일1식을 해 봐?
아빠 많이 자고 와
여러모로 고달픈 기러기 아빠 생활. 그러나 문제는 그렇다고 처자식을 지금 당장 서울로 올라오게 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물론 나 역시 아직 자유를 더 누리고 싶다는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보다는 외가에서의 전원생활을 완벽하게 즐기고 있는 아이들을 강제로 데려오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 차에 타면서 울지는 않을런지.
▲ 감자 싹이 자랐나?내가 심은 감자밭이랍니다 ⓒ 이희동
▲ 저수지에서아이들 최고의 놀이터 ⓒ 이희동
회색의 아파트 숲만 보이는 서울의 집과 달리, 푸르른 자연 속에서 하나 되어 뛰어 노는 아이들. 녀석들만 보고 있노라면 산청과 같은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정답이었다. 장난감 대신 찌그러진 모종삽을 가지고 놀고, 책으로 보는 대신 직접 토끼 귀를 잡아 흔들고, 아침마다 신선한 계란을 직접 닭으로부터 가져오는 것이 진정한 배움 아니겠는가. 나 역시도 어렸을 때 가장 재미있던 기억은 동네 뒷산에 올라 개미굴을 파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족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걱정이기도 했다. 아빠라는 존재의 부재가 녀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했다. 보통 남아들의 경우 아빠를 보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게 마련인데 녀석들에게 그런 기회를 박탈시켜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이들을 조금 더 시골에 둘 것이냐, 아님 서울로 불러 올릴 것이냐. 이런 나의 갈등을 알아차렸는지 까꿍이는 수화기에다가 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빠, 많이 자고 와."
이제는 하룻밤부터 시작해서 최소 열 밤까지 셀 수 있는 까꿍이가 굳이 숫자를 들먹이지 않은 채 잠을 운운한 것은 그 의미가 뻔하다. 그만큼 더 외가에 남고 싶다는 것. 이제 일주일 뒤면 다시 회색빌딩의 서울이란다. 까꿍아, 산들아, 복댕아 조금 더 열심히 놀고 있으렴.
▲ 갓 꺼낸 싱싱한 달걀이 왔어요체험학습이 아니라 삶의 지혜 ⓒ 문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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