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수도 민영화? 로마에서 배워라

[리뷰] 스티븐 솔로몬의 <물의 세계사>

등록|2013.05.16 17:06 수정|2013.05.21 15:12

▲ <물의 세계사> ⓒ 민음사

"물이 왜 이래요?"
"네, 우리 동네 물은 철분이 많아서 비눗물이 금방 없어져요."

어릴 적 우리 고향에 오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했다. 당시 우리 동네는 수돗물이 아니라 공동 우물을 사용했다. 그런데 워낙 철분이 많아서 한 번만 씻으면 비눗물이 다 빠져버렸다. 머리를 감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참 좋은 동네였다. 하지만 물을 깃는 일은 참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5~6학년 때까지 물지게를 졌다.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다. 물이 풍족한 국가라고 해도, 물은 꼭 아껴 써야 한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물을 아껴 쓰는 버릇이 아직 몸에 베이지 않았다. 우리 고향인 경남 진주는 진양호가 있기 때문에 '가뭄' 걱정하지 않고 살 정도로 물이 풍부한 동네에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잘 나온다.

"모든 사회 역사는 물 투쟁사"

전임 '가카'께서는 "우리처럼 물 값이 싸고 함부로 다루는 나라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을 준엄하게 꾸짖고 '4대강 살리기'를 밀어붙이셨다. 물론 4대강살리기는 커녕, 죽이기가 되어버렸다. 전임 '가카'께서 4대강 죽이기로 우리에게 준 하나의 교훈은 물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은 생명이며, 한번 오염된 물은 그 생명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교훈은 이명박 전 대통령만 아니라 지구에 생명이 존재할 때부터 모든 생명체는 알고 있었다. 물이 없으면 '죽음'이었다. 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력과 국가는 존재할 수 있었고, 물을 지배하거나 다스리지 못하는 나라는 결국 멸망했다. <뉴욕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포브스> 등에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저술가인 스티븐 솔로몬은 <물의 세계사>에서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물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변화하는 물 조건에 사회가 당대의 기술과 조직을 동원하여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곧 역사를 결정짓는 핵심 동력이다. 자연적인 물의 방해를 이겨내고, 이 필수불가결한 자원에 숨겨진 이익을 얻어 그것을 지렛대로 사용하는 데 성공한 문명이 주도권을 차지한다." (본문 19쪽)

조금 과한 정의 같지만 '비옥한 초승달'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황허문명, 나일강문명 등 세계 4대문명은 모두 강을 통해서 이뤄졌다.

물 못 다스리면 역사 빈민으로 전락

전임 '가카'께서 4대강을 밀어붙이면서 4대강 목표는 '수량 확보, '홍수 예방', '수질 개선', '일자리 창출'를 내새웠다. 하지만 지난해 가뭄 때문에 사실상 댐은 '녹조라떼'가 되어버렸다. 죽어 둥둥 떠 있는 물고기들을 봤다. 물만 있다고 생명이 살 수 없음을 경험했다.

또 4대강을 밀어붙이면서 둔치까지 '삽질'했다. 둔치를 자전거도로로 만들었고, 생명농업 상징인 '두물머리'를 망가뜨렸다. 결국 4대강은 '콘크리트' 천지가 되어버렸다. '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물의 세계사>는 수자원을 관리를 하지 못하면 '역사의 빈민'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경고한다.

"역사상 언제나 수자원이 늘고 관리, 항해, 음용이 가능해지는 사회는 탄탄하게 오래 존속한다(중략) 최상의 수자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된 사회는 역사의 빈민으로 전락한다."

검찰이 '4대강 비리' 건설사 3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스티븐 경고가 황당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전임 가카와 4대강 찬성론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물의 세계사>가 몇 년 만 더 빨리 나왔더라면 4대강은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4년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겨우 700쪽짜리 책이 귀 기울리가 없다.

로마가 대제국이 된 이유는 많다. 그 중 하나가 '물'을 잘 다스렸기 때문이다. 로마는 "해상 교육 중심이자 지중해 주변 지역의 부유한 속주들에 대한 제국적 착취 중심지로 경제 잉여를 누리"면서 번영했다. 무엇보다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수도 민영화... 로마에서 배워라

▲ 대제국 로마는 깨끗한 물을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제국의 위생과 군사적 강건함을 유지했다. 로마는 남부 프랑스의 퐁뒤가르유적 같은 수로를 이용해 도시 급수반이나 목욕탕·하수도를 운용했다. ⓒ 민음사


"로마인들이 마시고, 목욕하고, 청소하고, 위생 처리를 한 시스템 규모는 역사상 없는 정도였다. 만일 이것이 없었다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빈부격차 없이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시민사회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반전이다. 제국 전체에 걸쳐 로마의 수로는 도시와 변경에 주둔한 부대의 건강을 지켜주었다. 또한 군인들의 전투 능력을 제고해 결국 로마 군이 우위를 차지하게 만든 중요한 요소였다."(111쪽)

여기서 주목할 점은 로마가 제국이었지만 물 공급은 "모든 계급에 공평하게 물을 제공하는 것은 민주화된 서구산업사회가 받아들이는 시민사회 표준이 된다"는 점이다. 제국에 빈부를 따지지 않고, 계급을 따지지 않고 깨끗한 물을 공급했다. 그런데 요즘 수돗물을 '민영화'하려고 한다. 수돗물 민영화는 곧 물을 계급화 하겠다는 발상이다. 로마는 지금보다 물에서만은 민주사회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수도 민영화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발상하는 이들은 모든 계급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한 로마제국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후버 댐, 20세 미국 초강대국 밑거름... 하지만

▲ 지은이는 후버 댐은 20세기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는 발판이 되었다고 말한다. ⓒ 민음사


<물의 세계사>는 또 16세기 이슬람이 강력한 제국을 이룩한 이유도 1453년 오스만 튀르크가 이곳을 정복한 이후 수로 확충과 수력을 혁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9세기 대영제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런던 템스 강의 '대악취'를 해결하고 콜레라를 퇴치, 런던 지하에 정교한 하수도망 건설, 저수시설을 통해 시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한 사실을 강조했다.

미국은 관개농업과 후버 댐 건설로 20세기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고 말한다. 서부 영화를 보면 서부 개척지는 건조한 사막이 많다. 미국은 "거대한 지하 대수층에 축적된 물을 뽑아 사용함으로써 대평원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곡창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1935년 9월 30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후버 댐 헌정사에서 "왔노라, 보았노라, 압도당했노라"라고 외친다.

"1940년대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수자원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미국은 아직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강물이라는 중요한 자원으루 생산적인 경제, 군사적 결과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지도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능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428쪽)

하지만 후버 댐을 예로 들면서 우리도 댐을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망상이다. 지금은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경제를 살리는 시대가 아니다. 무엇보다 대규모 댐은 환경을 파괴한다. 짧은 기간 동안 경제를 살릴 수 있지만, 긴 시간을 볼 때 거대한 댐은 재앙일 뿐이다. 4대강 죽이기 사업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물의 세계사>는 물, 무엇보다 깨끗한 물을 가진 나라와 민족이 강성했으며, 문명을 이끌어왔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는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많은 나라는 역사의 빈국이 되고 말 것이다. 깨끗한 물은 사람에게 생명이지만, 나라에게도 생명이다.
덧붙이는 글 <물의 세계사> 스티븐 솔로몬 지음 ㅣ 주경철·안민석 옮김 ㅣ 민음사 펴냄 28000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