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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아있는 20대, 혁명을 꿈꾸라

[서평]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등록|2013.05.15 17:38 수정|2013.05.15 17:38
대학 졸업을 1년 앞둔 나는 요즘 '왜?'라는 주위의 물음에 시달린다. 국어국문을 전공하고 있는 내가 이번 해에 문예창작을 복수전공으로 택하였기 때문이다. 각종 매스컴들이 국문과의 존폐 위기에 대해 떠들어 대는 이 시점에, 경영도 아닌 문예창작이라니... 부모님, 친구들, 친척 오빠까지 나를 향해 '왜?'라는 물음을 던진다. 순수한 물음의 '?'가 아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에 가까운 질문이다. 나는 1년 가까이 고민해왔던 나 자신을 위한 선택임에도 괜스레 몸이 움츠러든다. 왜, 내가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 안 돼?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2009.9)의 저자 우석훈은 20대들에게 '88만원 세대'라는 가슴 시리도록 현실적인 이름을 달아준 이다. 그가 앞서 저술한 <88만 원 세대>는 사회과학 출판 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 숫자가 놀라운 것은, 책을 기피하는 20대들이 40%의 구매층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픔과 '미친 세상'에 쿨 한 척 고개를 돌리다가도, 결국 자신이 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답함을 <88만원 세대>를 통해 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88만원 세대>는 여느 사회과학 서적이 그렇듯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물론 저자가 젊은 감각으로 친근하게 써내려갔지만, 3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익숙하지 않은 경제학 용어 때문에 한 번에 책을 완주해내기는 어렵다.

그러한 이유인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는 <88만원 세대>의 속편 격인 책이 나왔지만, 전보다는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유행을 타듯 우후죽순으로 나온 '청춘 위로 마케팅'의 책들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문제의 개선방향보다는 '자기 계발서'에 그친 수준이었다. 결국 책은 자신들의 현실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회의가 20대들을 점령했고 청춘마케팅의 유행은 점차 식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다시금 책을 놓고 시니컬해진 20대에게 출간된 지 4년이 지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여전히 그들을 향해 그 답을 던지고 있다. 당신들이 바꾸고자 하는 현실과 문제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 '혁명'을 통해 이뤄낼 수 있다고.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 짜기>. 제목과 부제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88만원 세대>가 20대를 관찰하고 그들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이 붙을 수밖에 없는 시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자신이 이름 붙인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그 이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야말로 조용히 '혁명'을 준비함으로써 88만원 세대의 새판을 짜는 책이다.

무기력한 20대, 추해서 못 참겠다

이 책은 제일 먼저 20대들이 '혁명'을 꿈꿀 수 없는 이유와 무기력해진 그들을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을 제시한다.

90년대 말, 케인스 시대가 해체되고 신자유주의가 시대적 대세로 떠오르면서 대기업의 CEO가 새로운 '영웅'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역시 IMF 이후 본격적인 CEO 찬양 시대가 열리더니, 2008년도 대선 때 이명박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금의 20대는 이처럼 CEO가 영웅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시기에 10대를 보냈다. 학벌주의와 빈부격차가 따라오는 사교육을 볼 때, 어떤 선진국보다도 뼈저리게 신자유주의를 체득했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진 20대는 경쟁 안에 갇혀있다. 경쟁에서 실패한 20대 혹은 여전히 경쟁에 시달리는 20대 모두 사회적 존재감은 매우 낮고, 그들에게 집단적으로 무엇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이들을 움직일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원동력을 '간지'에 목숨을 거는 20대들의 특성에서 바라본다. 이는 한예종 학생들이 든 '추해서 못 참겠다.'라는 피켓과 '옳다/그르다'의 접근이 아닌 '싫다/보기 싫다'라는 말로 이명박 시대에 몸서리쳤던 20대들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불의는 참아도 추한 것은 못 참는 20대들의 감성에서 '혁명'의 씨앗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진(陣) 짜는 법, 친구들아 모여라

다음으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는 이러한 20대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에서 존재감 있는 세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가장 큰 맥락은 20대 스스로 그 방향에 참여하는 '당사자 운동'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선 저자는 20대가 짤 수 있는 진의 형태를 추측한다. 80년대 대학생들은 교문 돌파를 위해 펼쳤던 직사각형의 가투 진을 짰지만 지금 20대들에게는 어떠한 진도 없다. 오로지 경쟁사회에서 이기기 위한 자신들만의 진(陣), 즉 '스펙 쌓기'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진들은 커다란 사회 구조 앞에서 무기력하다. 국가 재정 활용 방안에 20대를 고립시키고 20대 신입사원들의 월급을 깎아도 속수무책이다.

이들의 진(陣)은 어떻게 짜일 수 있을까. 20대에게 유신세대의 상명하복 소통 구조와 386세대의 '결정되었으면 따라야지'라는 민주집중제는 어울리지 않는다. 권위를 앞세워 이끈다고 이끌려 가는 세대도 아니며, 다 같이 모여 의견을 모으지도 않는다. 긍정적으로는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이 싹틀 수 있는 터가 20대에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수평적인 진. 저자가 말하는 20대의 진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陣)을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진(陣)을 만들어 낼 20대 영웅이 등장하기엔 사회는 너무나도 부패하여있으며, 강남/비강남 수도권/비수도권의 구도 아래에서 20대들은 서로가 공동의 운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20대들의 진(陣)을 구축하기 위해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찾는 것을 첫 번째로 본다. 누군가 진(陣)을 만들어보자고 나설 때, 그를 '엄친아'나 질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수평적으로 함께 갈 수 있는 동반자로 바라봐주는 것. 서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때 혁명을 위한 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혁명은 어떻게? 조용히

현실적인 해결방안으로 저자는 시민운동과 정치운동, 그리고 노조설립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시민운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이를 후원하고 활동가를 길러 내는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형이든 개별적인 별도의 조직이든, 시민운동이 확대될 때 이는 '혁명'이 된다.

정치 운동은 작은 공간에서 출발하여 정당을 활용해야 한다는 관점을 내세운다. 지역의 20대가 당사자 조직을 꾸리기 위해서는 기초의원 선거부터 출마하여 지역에 뿌리를 둔 실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 곳곳에 널린 '알바'들이 자신들의 노조를 구축할 때, 이들의 운동은 대리인 운동인 동시에 당사자 운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의 20대 혁명의 모델로 68운동과 차티스트 운동을 세운다. 그는 20대의 혁명이 68혁명의 은유를 유지하되 차티스트의 운동과 같이 구체적인 요구 사항들과 입법을 포함한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권리 선언문'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권리들을 제시한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큰 틀과 함께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해준다. <88만원 세대>를 읽고,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발이 들었던 이들에게 친절한 매뉴얼을 건네주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제시한 방안이 지금의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이뤄지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현실을 타파하고 '그럼에도' 나아갈 힘을 북돋아 주는 데 큰 분량을 할애한다. 무기력한 20대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대'라며 기를 죽이지도, 자신감을 사디슴 적으로 주문하지 않는다. 20대를 이해하고 관찰하여, 그들의 혁명이 가능하게끔 원동력을 끄집어내 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진(陣)도 리더도 아닌 20대들이 서로 부대끼며 지낼 수 있는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당장 큰 변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선, '엄친아'라며 누군가를 배척하지도, 나는 SKY대고 너는 지잡대야, 라며 저들끼리의 계급을 나누지 않고 20대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서로가 우정을 회복하는 것. 그러한 조용한 혁명에서부터 세상을 바꿀 '혁명'은 이루어질 수 있다. 20대의 '혁명'을 통해 그가 이뤄내고 싶어 하는 세계 역시 소박하다. 

20대가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 먹고 살 수 있는 세상. 그는 불신 지옥의 대학에서 한방의 취업을 노리는 고독한 저격수가 아닌, 명랑하게 마음을 나누며 살아갈 20대의 세상을 꿈꾼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왜?'라는 물음에 시달리는 국문과 여대생을 포함한 수많은 20대에게 이러한 말을 전한다.

쫄아있는 '당신들', 혁명을 꿈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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