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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오늘, 이들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서평]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 조사관 출신 조한성의 <한국의 레지스탕스>

등록|2013.05.15 20:08 수정|2013.05.15 20:08
2012년 11월 23일 민족문제연구소는 <두 얼굴의 이승만>과 <프레이저 보고서>로 구성된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후 200만 명이 넘게 시청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재조명한다는 목적 하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적나라하게 알리고 논쟁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논쟁을 넘어 논란에 이르렀다. 급기야 지난 5월 2일에는 이승만의 유족이 "동영상은 허위 사실과 자료 조작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인격 살인하고 있다"며 "이 영상물을 민간연구소 주도 하에 국사학자들이 협력해 만들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고 <백년전쟁> 제작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5월 9일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등 6개 역사단체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표현의 자유와 시각의 다양성이 빌미가 되어 논란이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아울러 이승만에 대한 비판을 강조하였다. 결정적으로 <백년전쟁>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적 목적으로 호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에 반대한다 하였다.

개인적으로도 <백년전쟁>을 흥미롭게 보았고, 보고난 후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경각심이 들었다. 최대한 어떤 정치적 색깔도 개입하게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건 제작자들도 바랐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논란'이 아닌 '논쟁'을 바랐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결국 거대한 논란으로 점철되고 말았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주고자 했던 역사적 사실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이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서로 주장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고 보니 <백년전쟁>에 어떠한 풍자나 비판이 없었다면, 하는 후회마저 든다.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정치적 색깔이 개입되지 않은 깔끔한 역사책을 소개해본다.

정치적 색깔이 개입되지 않은 담백한 서술

▲ <한국의 레지스탕스> 표지 ⓒ 생각정원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역시 정치적 색깔이 개입할 여지가 많은 일제 시대 비밀결사들을 다룬다. 책의 저자 조한성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출신으로, 일본 제국주의 시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반대편에 섰던 지식인들의 활동과 고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매료된 비밀결사들은 총 8개 단체에서 활동한 사람들로, 그들 중엔 민족주의자도 있고 공산주의자도 있고 아나키스트도 있었다. 즉, 정치적 색깔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공통적으로 원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서 반목과 협력을 거듭할 줄 알았다.

저자는 이들 8개 단체를 어떠한 정치적 색깔도 개입하지 않은 채 한 발짝 떨어져 서술해 나간다. 작금의 이분법적 시각이 아닌 당시의 거시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저자도 이 점만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서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대한민국의 '건국'에 두고 그 공로를 1948년 정부 수립에 참여한 인물들로 한정하려는 움직임을 단호히 비판하고 있다. 그러며 이 책은 그들과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고 못 박는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투쟁이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하였다고 말하면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한국의 레지스탕스, 그들의 투쟁으로부터

<한국의 레지스탕스>에 등장하는 비밀결사들은 다음과 같다.

"대한제국 말기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의 접점에서 의협 투쟁을 열었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정의의 이름으로 암살 테러 전술을 본격화했던 의열단義烈團, 혁명의 기치 아래 공산주의국가 실현을 꿈꿨던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이 그들이다. 동맹 휴학과 대중 시위로 일제에 저항한 학생들의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와 독서회 중앙부, 무장투쟁과 인민전선 결정으로 맞섰던 조국광복회祖國光復會, 평범한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여 민족해방을 앞당기고 건국을 준비하고자 했던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 그리고 민족을 대표하는 정부로서 독립운동 최고기관이 되고자 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그들이다."(본문 중에서)

잠시 중국의 비밀결사를 언급해본다. 중국 비밀결사의 전설적인 존재인 천지회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몇 백 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중국 역사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다. 신화적 영역에서만 존재해 오다가 근대에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인 케이스이다. 가로회라는 비밀결사도 있다. 역시 청나라 때 만들어져 그 역사가 수 백 년에 달한다. 현재에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중국의 비밀결사가 근대 중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또한 아무도 이들이 한 일을 호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비밀결사들이 한국의 레지스탕스처럼 공통분모가 존재했었는지는 미지수이다.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공통분모가 존재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는 나라, 억압과 착취가 없는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다. 저자는 그들이 어떤 수단으로 목적을 향해 나아갔든지 그들의 투쟁이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독립 운동사를 이해하는 방법은 많다. 저자는 그 중에서 비밀결사를 주목했고, 이를 레지스탕스라 명명하며 재조명하였다. 그런 만큼 책은 답답함 없이 흘러갔다. 치열하고 시원시원하며 때론 유쾌하기까지 한 그들의 삶이 짜릿하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알게 되었다. 한국 독립 운동사의 비밀결사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정리하는 데 훌륭한 책임에 분명하다.

한 가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을 말하고자 한다. 정치적 색깔이 개입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의 서술에 치중하다보니, 교과서적인 느낌으로 약간은 딱딱한 맛이 난다. 또한 저자의 생각이 너무 획일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분명히 이 한국의 위대한 레지스탕스들에게도 뚜렷한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한 모든 일이 다 잘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들이 잘못한 일도, 이들의 한계도 지적하지 않는다.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담백한 서술과 꼼꼼한 자료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이 충분히 간을 맞춰주었다.

또한 단점이라기보다 아쉬운 점이 있다. 등장하는 비밀결사 단체들이 사실 너무 유명하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배일에 가려진 비밀결사 단체들을 추려내었더라면 좋았을 듯싶다. 자료의 한계와 대중과의 호흡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신간회 같은 경우는 교육 중심의 단체로만 알고 있었고, 성진회와 독서회 중앙부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또한 조선건국동맹(1944년 8월 결성)은 광복 이후에 만들어진 단체로 알고 있는 우를 범했다. 이 책을 통해 짧은 지식을 다시금 확인하는 동시에 일제 시대 투쟁의 역사를, 나아가 우리나라 투쟁의 역사를 섭렵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게 되었음을 밝혀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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