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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뒤돌아보는 감사함

선생님이 아니라 친엄마와도 같았던

등록|2013.05.16 10:04 수정|2013.05.16 10:04

천안에 가면 그 선생님이더욱 그립습니다. ⓒ 홍경석


여러분들은 47년 전의 은사님 존함을 기억하실 수 있으세요? 4년 전도 아니요, 7년 전도 아닌 자그마치 47년 전의 선생님 성함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요? 그러나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또렷이 말입니다!

그 선생님의 존함은 바로 채효숙 선생님입니다. 올해 55세인 저도 47년 전인 8세 때 천안성정국민(초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저는 홀아버지와 유모할머니를 모시고 찢어질 듯 매우 가난하게 살았지요.

그렇지만 공부 하나만큼은 참 잘했습니다. 따라서 학교서 시험만 봤다 하면 무조건 100점을 받았지요. 그러자 담임선생님께선 아예 드러내놓고 저를 편애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풍을 갔을 적에도 제 몫의 도시락과 찐 계란, 그리고 사이다도 한 병 준비하셨습니다. 마치 당신의 친아들 대하듯 그리 아끼셨지요. 아울러 급우들이 죄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저만큼은 교실에 남게 하여 선생님의 잔무를 돕도록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좋은 말씀도 참 많이 해 주셨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착하고 성실하면 그 끝은 반드시 좋다"는 말이었죠. 이후 선생님께선 제게 부반장의 직책까지 주시며 더욱 아껴주셨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회자정리(會者定離)인지라 그 선생님과는 그 해 2학기에 그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날 것 같아 아쉽구나.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하거라. 그리고 엄마 없다고 기죽지 말고!"

선생님의 그 말씀에 한참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세월은 여류하여 제 자식인 두 아이는 각각 대학과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아들과 딸 또한 학교에 다닐 적에는 공부도 잘했거니와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반면 저는 가정사적인 풍파가 심하였기에 학력이라곤 고작 천안성정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뒤늦게마나 만학(晩學)에 눈떠 사이버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지요.

어제(15일)는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는 뜻으로 제정한 날인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어제처럼 주간근무를 할 때는 주차부스에서 라디오를 듣습니다. 한데 스승의 날답게 오늘 라디오에서는 온통 스승과 선생님에 얽힌 사연과 추억을 다루더군요.

때문에 저 역시 자연스럽게 그 시절 제게 폭포수처럼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던 채효숙 선생님이 그리움의 태양으로 불끈 떠올랐던 것입니다. 전화는 시간 속으로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곱씹어 볼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사님에 대한 그리움과 그 은사님의 제자사랑은 빛바랜 편지와도 같아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기억의 창고에서 숨을 쉬는 법이죠. 선생님이 아니라 친엄마와도 같았던 그 선셍님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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