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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되기 전에도 사찰 받아...이골이 났다"

[현장]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꽃처럼' 강연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

등록|2013.05.16 09:23 수정|2013.05.16 16:46

▲ 지난 15일 마포구청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오월특강에 강사로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 ⓒ 노무현재단


강연 직후 한 청중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거의 기자 수준으로 날카로웠다.

"오늘(15일) 아침 본인을 노린 공작 지시 국정원 문건이 나왔다는 보도를 본 뒤 어떤 단어가 처음 떠올랐나?" 

질문을 받은 박 서울시장은 '한 단어' 대신 '여러 문장'으로 자신의 심정을 차분히 전했다. 박 시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어떤 일을 하고 또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도대체 민주주의가 왜 현재 문제인지 깨달았으면 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또 박 시장은 "나는 시장 되기 전에도 사찰을 받은 사람"이라며 "이미 고난에는 이골이 났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앞서 <한겨레>는 15일자 보도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여당·정부기관·민간단체·학계를 총동원해 박 시장을 '제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내부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이날 진선미 민주당 의원도 박 시장에 대한 사찰·정치 공작 지시가 적힌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원세훈 전 원장이 모 실장에게 특별 지시해 작성했다"는 메모도 들어있어 논란이 됐다.

박 서울시장은 15일 저녁 마포구청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주최 오월특강 '노무현을 만나는 다섯가지 이야기'의 세 번째 연사로 강연에 나섰다. 박 시장이 연단에 올라서자 뒤에 펼쳐진 빔프로젝트 화면에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꽃처럼'이라는 글자가 띄워졌다. 박 시장은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흐르도록 노력하신 분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아닐까 한다"며 이같은 강연제목을 정한 이유를 밝혔다.

어느 몇 사람의 힘만으로 세상 이뤄가는 것은 옛날 얘기

본 강연에 들어가자 박원순 시장은 시정 경험을 하나씩 얘기했다. 첫 번째 사례는 한 서울시 시내버스노동자와의 사연이었다. 이 노동자는 '사측의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트윗 메시지를 박 시장에게 보냈는데, 다행히 문제가 빨리 해결돼 나흘 뒤 '감사하다'는 트윗 메시지를 다시 박 시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당시 그날이 바로 어린이날 이틀 전이었다고. 이를 본 박 시장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면 어린이날에 그 아버지가 자식들을 어떤 낯으로 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전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지난 4월 19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심야버스다. 일주일간 약 1만7천여 명이 이용하고, 심야버스 정책관련 SNS 글에는 '좋아요'가 5만여 개, 댓글만 3천여 개가 달렸다고 한다. 박 시장은 "많은 언론이 저한테 호의적이지 않지만, 바로 이와 같은 시민들의 참여와 격려에 힘을 얻어 정책을 펼 수 있었다"고 말했다.

6개월 동안 서울소셜미디어센터에 올라온 약 1만4천여 개의 의견 중 98%가 해결됐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박수와 환호를 받기도 했다. 박 시장은 "SNS만 보면 정책이 완벽할 것"이라며 "(SNS를 통해) 소상하게 시정을 지도해주시는 시민 여러분이 내 진짜 스승"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시민력'을 믿는 박 시장은 "어느 몇 사람의 힘만으로 세상을 이뤄가는 것은 옛날 얘기"라며 "창의적 소수보다 집단 지성의 힘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운영해 갈 수 있는 시민 세력이 필요하다, 지배 수단이란 것을 놓고 정치와 권력을 좌지우지 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제 몫을 똑똑히 다하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지금 아주 큰 변화가 필요한 때 

국가의 결정은 모두 기록으로 남겨 후세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이 박 시장의 생각이다. 그는 "정보 공개가 창의경제의 시작"이라며 "정보 공개를 넘어 정보공유로 가는 '누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정보소통광장'을 개설해 문건이나 데이터 베이스 같은 자료 약 6천여 건을 시민에게 모두 공개하고 있다.

'투명 정부'는 사실 참여정부 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e-지원 시스템 특허권을 갖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약 826만 건에 달하는 참여정부 기록을 일반에 공개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정책들의 예산서나 결제 서류까지 다 올라와 있다"며 "이것이 바로 정치, 행정, 경제의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정보 공개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나누는 것의 필요성도 설명했다. 강연 직후 한 청중의 '시민운동가에서 행정가로 변신하면서 기존 공무원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마음을 얻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그게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사실 관료 시스템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고 개혁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며 "처음부터 공무원들과 함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서울시 행정1, 2부시장 자리를 서울시 공무원들 중 가장 잘 하고 오래한 신뢰성 있는 인물 두 사람을 발탁해 자신의 권한 많은 부분을 넘겼다. 그리고 자신은 서울을 혁신해내는 일에 몰두했다. 박 시장은 "그 덕분에 안정적이고도 혁신이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강연 말미에서 박 시장은 "지금 아주 큰 변화가 필요한 때"라며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21세기에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그것은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으로부터 나와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끝맺었다.

한편, 5월 한 달 동안 진행되는 '노무현을 만나는 다섯가지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마포구청에서 진행된다. 오는 22일에는 강헌 음악평론가(노무현레퀴엠 프로듀서)가 '상처 입은 시대를 위한 치유의 노래'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29일에는 태준식 영화감독이 강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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