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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자연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주장] 이 땅의 소수자들이 다수자들과 함께 할 날을 기다리며

등록|2013.05.16 15:35 수정|2013.05.16 15:35
독일의 저명한 뇌과학자인 베르너 지퍼의 책 <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을 보자. 도마뱀은 암수가 구별되지 않고 오로지 암컷만 있다. 이들은 성(性)에 큰 관심을 갖는 우리 인간과 달리 무성(無性) 생활을 한다. 바퀴벌레나 칠면조는 성이 세 개로 분류된다. 짝짓기를 하는 암컷과 전혀 그렇지 않는 암컷, 그리고 수컷이 그것. 식물은 6%에서만 성 구분이 있고 나머지는 암수한몸이다. 동물은 이와 반대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도대체 성과 관련하여 '정상'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이 책에서 지퍼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생물학과의 조안 러프가든 교수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갖고 있는 성의 분류나 구분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퍼나 러프가든 교수의 견해를 빌린다면, 흔히 많은 인간이 '정상'으로 생각하는 '이성애'는 오히려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자연에서는 한 암컷이 다수의 수컷과 짝짓기를 하기도 하고, 거꾸로 한 수컷이 다수의 암컷과 짝짓기를 하기도 한다. 경계가 불분명한 일부일처제에서 엄격한 일부일처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지퍼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타락하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두려움 이겨내고 소수자 정체성 밝힌 이들에게 박수를

미리 밝히지만 나는 확실한(?) 이성애자다. 그래서 동성애(자)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동성애(자)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혐오하지도 않는다.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또한 피와 살이 있고, 사랑의 열정과 실연의 아픔을 느끼며, 때가 되면 죽는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수의 이성애자가 소수의 동성애자를 차별과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박멸해야 할 질병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러프가든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백 개의 동물 종에선 동성애가 일반적인 짝짓기의 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 유지를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동성애가, 동물의 하나인 인간에게서만 유독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김조광수 감독의 동성애 결혼 발표로 새삼 이성애니 동성애니 하는 것들을 고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성에 민감한 고등학교 아이들은 오죽하랴. 어제 한 반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당연하지만(?), 내가 보기에 대다수의 아이들은 동성애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조차 힘들어 보였다.

실상 동성애 자체를 '인정'하는 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그런 것은 각자의 은밀한 성적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게 있다. 김조광수 감독이 그랬고, 또 이 땅의 다른 많은 성적·사회적 소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극심한 편견과 차별의 문화 속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압박과 불이익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밝힌 그들의 용기에 우렁찬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평번한 한 순간이 거대한 역사의 시초가 될 때

"현대 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칭송되는 로자 파크스(Rosa Parks, 1913~2005)는 백화점에 다니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몽고메리 페어 백화점에서 힘든 하루 일을 마친 파크스는 오후 6시쯤에 클리블랜드 거리에서 버스를 탄다. 그는 요금을 내고 유색 칸으로 표시된 좌석들 중 가장 첫 줄의 빈 자리에 앉는다.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치는 동안 앞쪽에 있던 백인 전용 칸의 좌석들이 점차 꽉 차게 되었다. 잠시 후에는 그 사이에 더 승차한 몇 명의 백인이 서 있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버스 운전기사인 제임스 블레이크는 유색 칸의 표시를 로자가 앉은 자리 뒤로 밀어내고 중간에 앉은 네 명의 흑인들에게 일어나라고 요구한다. 흑인 세 명은 이를 따랐으나 파크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기사가 그 이유를 묻자 파크스가 대답한다. "내가 일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결국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다. 이후 이 사건은 382일 동안이나 계속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이어지고, 인종 분리에 저항하는 정치 운동으로 확대된다. 좀더 얼마 뒤에는 아직은 무명인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동참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과 권익을 개선하고자 했던 미국 민권 운동이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일상의 평범한 한 순간이 거대한 역사의 시초가 될 때가 많다. 로자 파크스의 예에서처럼, 우리는 무명의 일상인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에서 내보인 작지만 비범한 용기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기 시작하는 예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조광수 감독, 결혼 축하드린다

이번 김조광수 감독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군다나 사회적으로 꽤 널리 알려진 김조광수 감독은, 그가 영화 감독으로서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시선을 생각할 때, 동성애 결혼을 발표한 일이 결코 만만한 용기만으로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현실적인 불이익이나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아주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동성 결혼을 발표하고, 자신의 성적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우리 사회에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의 이번 발표로 음지에서 침묵한 채로 살아온 수많은 성소수자들 중에 큰 용기를 얻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그의 발표는 '평범한'(?) 우리들의 자유를 넓히는 데에도 분명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한 학교에 지체 장애 학생이 입학해서 건물에 승강기를 설치하게 되면 비장애인 모두가 편리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용기를 내 기존의 편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응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소수자'의 문제는 곧 '다수자'의 문제다!

바라건대 나는 그가 스스로 공언한 대로 자신의 결혼식에 문재인 의원이나 박근혜 대통령 같은 유명인들을 아주 많이 초대했으면 좋겠다. 때맞춰 내일(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니 시기적으로 명분도 좋다. 그렇게 해서 이 땅의 다양한 '소수자'들이 더 많이 양지로 나와 '다수자'들과 함께 어깨를 겯고 살아가는 날이 좀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 김조광수 감독이 내게 초대장을 보낼 리는 없을 테니 좀 민망스럽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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