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 조선에서는 '자전거세'도 있었다
[서평] 정하섭 글, 조승연 그림 <달리는 기계, 개화차, 자전거>
▲ 정하섭 글, 조승연 그림 <달리는 기계, 개화차, 자전거> 겉 표지 ⓒ 보림
자전거 활성화 정책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4대강 사업을 하기 위하여 '자전거 도로'를 슬쩍 끼워 넣는 경우도 있었고, 시장, 군수들이 추진하는 '전시성' 사업도 많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여전히 운동이나 레저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드물게는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선택하는 이른바 '자출족'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석유를 수입할 돈이 없거나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만드는 기술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에서나 타는 것으로 업신여기던 자전거가 새롭게 친환경 미래 교통수단으로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타는 사람이 스스로 페달을 밟아 바퀴를 굴리며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는 탈 것'.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엔진을 부착하지 않은 탈 것은 자전거뿐입니다. 자전거가 친환경 미래 교통수단으로 새롭게 주목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최초의 자전거 셀레리페르
그렇다면 친환경 미래교통으로 새롭게 주목 받는 자전거의 나이는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자전거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건 지금부터 이백 년쯤 전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때였는데, 자전거도 바로 이무렵에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최초의 자전거는 1790년 프랑스 파리의 한 공원에 등장한 나무 자전거였다고 합니다. 나무 몸체에 커다란 나무 바퀴 두 개가 앞뒤로 달려, 오늘날 자전거의 원형을 갖추고 있었는데, 안장에 앉아 두 발로 땅을 차서 이동하는 새로운 탈 것이었다고 합니다.
▲ 최초의 자전거 셀레리페르 그림 ⓒ 보림
이 자전거는 시브락 백작이라는 귀족의 발명품으로 파리의 명물이 되었으며, 내리막길에서 경주대회를 열기도 하였답니다. 처음엔 그냥 목마라고 불렀지만 '셀레리페르'(빨리 달리는 기계)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셀레리페르가 혁명적인 교통수단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셀레리페르가 잊힐 무렵 독일에 새로운 자전거가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1817년에 드라이스 남작이 만든 '드라이지네'는 핸들이 달린 자전거였다고 합니다. 이 독일 귀족은 '드라이지네'를 타고 말과 맞먹는 속도를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오락거리가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셀레리페르와 드라이지네의 장점을 발전시킨 새로운 자전거는 약 50년 후에 프랑스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미쇼라는 대장장이가 만든 이 자전거는 앞바퀴에 패달이 달려서 발로 땅을 차지 않고도 달릴 수 있는 멋진 자전거였습니다. 미쇼의 대장간에는 자전거 주문이 쇄도하였고 두 바퀴 자전거는 가장 실용적인 탈 것으로 다시 등장하였습니다.
▲ 핸들 달린 자전거 '드라이지네' 그림 ⓒ 보림
자전거 세계화를 이룬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에는 여러 사람들이 새로운 탈 것을 만드는 일에 매달렸는데, 프랑스인 랄르망이 1866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패달 자전거 특허를 받았지만, 자전거 대중화는 '미쇼'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엑스포)에 등장한 패달 자전거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여러 나라로 퍼져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찰스 디킨스, 알렉상드르 뒤마, 클로드 뒤뷔시 같은 예술가들이 자전거 열풍을 주도하였다고 합니다.
이듬해(1868년) 5월 파리 생클루 공원에서는 '미쇼'사가 후원하는 최초의 자전거 경주가 개최되었으며, 11월의 여성 대회에는 불과 4명의 선수가 출전하였지만 3000명의 관중이 몰려드는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자전거 대회가 개최되고, 말이나 마차와 속도를 겨루면서 자전거 속도를 높이는 시도가 이어졌고 그 결과 앞바퀴가 큰 하이-휠 자전거가 등장하였습니다.
유명 패션 브랜드의 로고로 남아있는 앞바퀴가 큰 하이-휠 자전거는 경주용 자전거로 인기를 끌었으며, 장거리 자전거 대회도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자전거 경주가 개최되면서 끊임없이 자전거의 성능 개선도 이루어졌습니다.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고무 타이어와 볼베어링이 자전거의 성능을 한층 더 높였다는 것입니다.
▲ 최초의 패달식 자전거 '미쇼' 그림 ⓒ 보림
1885년 현대식 자전거 '로버'가 등장하다
1884년에는 토머스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섰고, 1885년에는 영국인 존 스탈리가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가 같고 차체가 낮은 '로버'라는 자전거를 만들었습니다.
로버는 안전한 자전거였을 뿐만 아니라 패달을 앞바퀴에서 분리하고, 체인과 기어를 장착하여 속도를 높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공기 타이어를 장착하여 승차감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으며, '하이-휠'자전거를 밀어내고 자전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비로소 자전거가 개인용 교통수단이 된 것입니다.
한편 자전거의 등장은 여성의 패션에도 커다란 변화를 이끌었는데, 치마만 입던 유럽과 미국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기 위하여 바지를 입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자전거는 남녀평등을 상징하는 민주적인 탈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자동차 보급이 워낙 많아져서 상상이 잘 안될 수도 있겠지만, 한 때(19세기 말)는 자전거 순찰대, 소방 자전거, 자전거 부대도 만들어졌었다고 합니다. 우편물배달은 물론이고 군인과 공공기관 기업에서도 자전거가 필수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군요.
자전거 성능이 개선되면서 자전거 대회도 점점 인기를 얻었는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전거 대회로 명성을 얻은 '트루드 프랑스'는 1903년에 시작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1869년부터 장거리 자전거 대회가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일제치하 조선에는 자전거세가 있었다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0년대 중반이었는데, 1884년 미국 해군장교가, 1886년에는 선교사가 자전거를 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1893년에는 캐나다인 의사가 궁궐에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자전거를 '자전거', '자행거', '개화차'라고 불렀는데, 1890년대 중반에는 서울에 자전거 가게가 생기고 신문에 자전거 판매 광고도 등장하는 등 급속하게 보급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1903년에는 정부에서 업무용으로 자전거 100대를 구입햇고, 경찰과 군대에서도 순찰용과 연락용으로 자전거를 장만했어요. 1905년에는 '밤에 등불이 없이 자전거를 타면 안 된다'는 법규가 생겼고 교통경찰도 등장했지요......1906년에는 정부에서 '자전거세'를 만들어 자전거에 세금을 매겼어요."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자전거는 경주용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1906년 4월 최초의 자전거 대회가 개최되었고, 1913년 용산에서 열린 자전거 대회에는 10만 관중이 몰렸다고 합니다. 바로 이 대회에서 '엄복동'이라고 하는 걸출한 자전거 스타가 등장하여, 1920년대까지 동아시아 최고의 자전거 선수로 명성을 날렸다고 합니다.
1930년대에는 자전거가 중산층의 교통수단으로 널리 확산되었으며, 1952년 3월 부산에서 삼천리호 자전거가 만들어지면서, 버스와 택시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직전인 1970년대에 이르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자전거가 도로에서 밀려난 것은 자동차의 증가와 궤를 같이 하였습니다. 1975년 국산차 포니가 등장했고, 1990년대 후반엔 1000만 대 넘게 보급돼 '마이카'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전거는 도로에서 밀려났습니다.
친환경 미래 교통수단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자전거
교통수단에서 밀려난 자전거는 자전거 경주, 자전거 묘기, 산악자전거로 발전해 나가다가 21세기에 '지구를 살리는 물건'으로 새롭게 주목 받고 있습니다. 지구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대신할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 자전거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하섭이 글을 쓰고, 조승연이 그림을 그린 <달리는 기계, 개화차, 자전거>에는 지금 소개한 이런 자전거의 역사와 기술발전 과정이 재미있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기 때문에 간략한 소개를 뒷받침하는 조승연의 멋진 그림들이 담겨있습니다.
책에 담긴 자전거 그림만 차례로 살펴봐도 자전거 기술의 발전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입니다만, 자전거를 타는 어른들도 부담 없이 읽고 상식과 교양을 넓힐 수 있는 알찬 그림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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