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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부부강간' 첫 인정... 강제 성관계 남편 징역형

"형법 강간죄 객체인 '부녀'에 법률상 처도 포함"... 종전 대법원 판례 변경

등록|2013.05.16 18:50 수정|2013.05.16 18:50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는 경우에도 남편이 강제로 아내와 성관계를 가졌다면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부부 강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종전 대법원 판결은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는 등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될 수 없는 경우에는 배우자에 대한 강간을 인정할 사례(2009년 2월 2008도8601)가 있다. 하지만 혼인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상태에서도 배우자에 대한 강간죄를 인정한 판례는 없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을 때에는 설령 남편이 강제로 아내를 간음했다고 하더라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종전 대법원 판례(1970년 3월. 70도29)를 변경한 것이다.

이번 판결과 관련, 대법원은 "형법 제297조에서 규정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법률상의 처도 포함되고, 혼인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법리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로써 법률상 처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와 양성평등 사회를 지향하며, 혼인과 성에 관한 시대변화의 조류와 보조를 같이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건은 이렇다. A(45)씨와 B(41, 여)씨는 2001년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서 슬하에 자녀 2명을 두고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2~3년 전부터는 불화로 부부싸움을 자주 해왔다. 그런데 아내가 밤늦게 귀가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A씨는 2011년 11월 주먹과 발로 B씨를 때리고, 흉기로 찌를 듯한 태도를 보이며 강제로 세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이로 인해 A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B씨는 흉기로 인해 겁을 먹어 항거불능 상태였다. 실제로 B씨는 A씨에 대한 공포심으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두 차례나 거부할 정도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혼인이 성적 자기결정권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다"

1심인 수원지법 안산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는 2012년 5월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개인신상정보공개 7년과 전자발찌 10년 부착 명령을 내렸다. 이에 A씨가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10형사부(재판장 권기훈 부장판사)는 2012년 11월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형량이 무겁다"는 항소만 받아들여 A씨에게 징역 3년6월로 형량을 낮췄다. 신상정보공개와 전자발찌 부착은 유지했다.

재판부는 "민법상 부부는 동거의무가 있고, 동거의무는 성생활을 함께 할 의무도 내포하고 있으므로, 법률상 부부 사이에서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 및 침해 여부는 제3자에 대한 경우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며 "배우자의 명시적·묵시적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가 있는 경우 강간죄 성립 여부는 혼인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아 법률상 처가 당연히 강간죄의 객체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는 없고, 또한 부부 사이에서 비록 상대방에게 성관계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폭행·협박 등으로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해 강제로 성관계를 할 권리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며 "그와 같은 경우에는 처의 승낙이 추인된다고 할 수 없고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양형과 관련, "피고인이 10년간 부부로 살아온 피해자를 흉기를 휴대한 채 폭행한 후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강간하는 등 범행수법이 대단히 불량하고, 그에 대해 피해자가 극도의 공포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다만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당심에 이르러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이혼 등 사건과 관련해 확정된 화해권고결정에 따라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선처요지 탄원서를 제출한 점 등을 참작해 보면 원심의 형은 무거워서 부당해 보인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 지난 4월 18일 '부부강간' 사건 공개변론

사건은 A씨가 상고해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은 지난 4월 18일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6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년6월과 개인신상정보공개 7년,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법 제297조는 부녀를 강간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형법이 강간죄의 객체로 규정하고 있는 '부녀'란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불문하며 곧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이와 같이 형법은 법률상 처를 강간죄의 객체에서 제외하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문언 해석상으로도 법률상 처가 강간죄의 객체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또 "부부 사이에 민법상의 동거의무가 인정되고, 여기에는 배우자와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포함되나, 그 동거의무에 폭행·협박에 의해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가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없다"며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고, 성적으로 억압된 삶을 인내하는 과정일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내용, 가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부부의 동거의무의 내용 등에 비춰 보면, 형법이 정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는 법률상 처가 포함되고, 부부 사이에서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이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전원합의체에 참석한 13명의 대법관 중 이상훈·김용덕 대법관은 "강간죄의 객체에서 법률상의 처는 제외돼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두 대법관은 "강간은 '강제적인 간음'을 의미하고, 간음은 '부부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이라 할 것이므로, 결국 강간죄는 그 문언상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인이 아닌 부녀에 대하여 성관계를 맺는 죄'라고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히려 강제적인 부부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하지 않더라도, 행사된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처벌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강간행위에 대한 처벌 및 강간죄의 보호법익인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보호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두 대법관은 그러면서 "따라서 강제적인 부부관계에 대해 행사된 폭행이나 협박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을 넘어서서 강간죄의 성립을 부정했던 종전의 판례를 변경해 강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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