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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해진 양말로 감싼 등산화 신고도 한라산 완주

[포도원교회등산선교회 5월 정기산행] 창립 이래 첫 한라산등반(1950m)

등록|2013.05.17 20:11 수정|2013.05.18 15:51

한라산...만나러 가는 길...배 위에서... ⓒ 이명화


등산선교회 창립 이래, 첫 한라산 추억만들기 등반

청파 높은 곳에/ 님이 여기 계시옵기에/ 찾아와 그 품속에/ 안겨 보고 가옵나니/ 거룩한 님의 댁(宅)이어/ 평안하라, 한라산// 물길이 험하오매/ 꿈속에도 어려우리/ 고도(孤島)에 맺은 정을/ 다시 언제 풀까이나/ 내 겨레 사는 곳이니// 평안하라, 제주도(이은상 시)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은상이 지었다는 시다. 구한말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진 최익현은 제주로 유배되어 6년간 머물다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한라산에 올라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오직 이 산은 유독 바다 가운데 있어 청고하고 기온도 낮으므로 뜻 세움이 굳고 근골이 건장한 자가 아니면 결코 오르지 못할 것"이라 했다.

오늘 이 제주도 한라산을 만나러 간다. 제주도는 1,847.1km의 면적에 동서로 73km, 남북으로 31km의 타원형으로 형성되어있다. 한라산은 1966년 일부 구역이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82호)으로 지정된 이후, 1970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제주도 전체면적의 8.3%에 해당하는 151.35㎢가 공원구역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강정호, <한라산> 참조)

한라산...만나러 갑니다... ⓒ 이명화


'한라산은 곧 제주도이고 제주도 자체가 한라산'이라 흔히들 말한다. 제주도 한가운데 우뚝 서 있어 어디서 보아도 한 눈에 들어오는 한라산, 한반도의 가장 큰 섬 제주도에 남한의 최고봉 한라산(1950m)을 만나러 간다. 몇 년 만의 재회다. 오늘은 혼자서도 둘이서도 아닌 84명의 포도원교회등산선교회 회원들과 함께 제주 땅을 밟았다.

어제(5/10.금) 저녁 7시에 부산 연안 여객선터미널에서 제주로 출항하는 서경 파라다이스호에 승선(오후 4시에 교회서 집결, 교회버스로 이동해)해서 11시간을 꼬박 밤바다를 가르며 제주로 향했고 오늘(5/11.토) 이른 아침에 제주에 도착했다.

포도원교회등산선교회 창립 이래 처음으로 뜨거운 연합 속에 제주 한라산 등정을 하게 되었다. 등산팀, 여행팀 2개의 팀으로 나눠서 13개의 조를 편성하고 차량을 또한 배정했다. 총 84명이 참여한 회원들 중에 등산은 70명, 여행팀은 14명. 제주 땅에 내리자마자 예정된 식당으로 이동해 아침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받은 후 여행팀은 따로차를 배정받아 여행을 떠나고 등산팀은 성판악에 도착했다.

한라산...엄마와 딸...함께 왔네요... ⓒ 이명화


70명의 회원들이 13개의 조로 구성하여 당도했지만 성판악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산 들머리에 들어섰다. 등에 붙인 포도원교회등산선교회 로고나 깃발이 없었다면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분간도 못할 뻔했지만, 각 조장의 배낭에 꽂힌 샛노란 깃발과 모든 회원들의 등판에 붙인 표시를 보고 그나마 우리 회원들을 식별하기가 용이했다.

오늘 참여한 회원들은 연령도 개성도 다양한 사람들이다. 등산선교회와 함께 처음으로 합류한 사람도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온 사람도 있고 군대 말년 휴가 나온 아들과 함께 온 사람도 있고 대학생 딸과 함께 온 사람 혹은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등산선교회에서 가장 연령대가 높은 7학년(70대) 언니들(?)도 있었다. 전문 산악 팀이 아닌 체력도 저마다 다르고 산행 능력도 모두 다르니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협력하고 어울려 여기까지 왔고 오늘도 역시 그럴 것이다.

한라산의 추억 쌓기...멋진 가족들... ⓒ 이명화


오늘 한라산 등정 계획은 성판악 코스로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올라 관음사 쪽으로 하산이다. 오늘 산행코스가 만만찮은 만큼 염려가 되는 분들도 많았다. 정상까지 가다가 다 못가면 진달래밭대피소에서 왔던 길로 내려가야 한다고 미리 알렸으니 중도에 돌아가면 버스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었다. 오늘 날씨는 드물게 맑고 화창했다. 맑았다 흐렸다 하는 날씨가 아니라 화창함 그 자체다.

맑디 맑은 오월의 그 하루, 긴 행렬 속에 한라산 만나러 가는 길

한라산을 오르는 등반코스는 성판악코스를 비롯해 영실, 어리목, 관음사, 어승생악 코스 등 5개다. '한라산 백록담을 정점으로 서북쪽이 어리목과 어승생악 코스이고, 서남쪽이 영실코스, 동쪽이 성판악코스, 북쪽이 관음사코스다.

오늘 우리가 들머리 삼은 곳은 1960년에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횡단도로인 5.16도로와 1,100도로가 어리목코스와 함께 생기면서 개설된 성판악코스. 이 코스는 한라산을 동쪽에서 오르는 코스로 경사가 완만하나, 만만하게 보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한라산 등정로 중 가장 거리가 먼 9.6km이고 체력 소모가 크다.

한라산......긴 긴 행렬... ⓒ 이명화


한라산...맑고 맑은 날...한라산 정상 백록담에는... ⓒ 이명화


긴 행렬을 이룬 우리 팀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찾아 성판악코스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사람들로 물결치고 있었다. 제주 한라산 등정을 몇 번이고 해봤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밀리듯 가는 것은 처음이다. 시절은 마침 5월이고 불과 몇 년 만에 폭발적으로 등산인구가 늘어난 원인도 한몫 했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숲속 길 가득 긴 행렬을 이루었다. 이건 등산인지 행군인지 헷갈릴 정도다.

쾌청한 오월의 하루.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완만한 숲길을 걸었다. 가끔 땀이 옷을 적셨지만 너무 덥지도 너무 차지도 않은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워낙에 많은 인원인데다 우리 팀은 많은 사람들 속에 여기저기 섞여있어 각 조를 다 눈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무전기(8대)를 통해 각 팀은 어디쯤 가고 있고 어디쯤 통과하고 있는지 동선을 서로가 파악하면서 걸었다. 숲속 길은 완만하고 얘기 나누며 걷기도 좋은 길이었지만 바짝 뒤쫓는 무리들 틈에 끼어서 여유를 부릴 새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 ⓒ 이명화


솔밭대피소를 지나고 사라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며 한숨 돌린 후 다시 걷는 길. 여력이 닿는다면야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사라오름도 잠깐 보고 가련만, 오늘 산행거리는 성판악에서부터 시작해 관음사로 하산하는 한라산 완주하는 것인 만큼 길고 체력 소모도 많을 것을 예상해 그냥 두고 간다. 사라오름 옆을 거쳐서 경사가 조금씩 높아지다가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했다. 1,540m인 진달래밭대피소 일대엔 나무들 사이사이로 빛깔도 선명한 털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사방이 탁 트여서 시야가 넓었다.

여기서 어렵게 올라온 회원 몇 명이 더는 못가고 내려가야 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체력이 딸려서 내려가게 된 회원들이 5명이었다. 회원 중 한 사람은 10년 동안 한 번도 안 신고 모셔두었다가 신고 온 등산화 밑창이 내려앉아 양말을 신발 바깥에 씌우고도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고집했다. 에고 어쩐다지. 어쨌든 5명의 낙오자를 내려 보내고 이제 65명이 잠깐 휴식하고 다시 오른다. 앞에 간 회원들은 어디메쯤 올라갔는지...

한라산에서...이제 하산길... ⓒ 이명화


한라산 정상은 한걸음 한걸음씩 옮겨 걸을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졌다. 구상나무들과 주목이 숲을 이루고 있는 오름길. 가다가 뒤 돌아서서 상쾌한 바람으로 땀을 씻기도 하고 밝은 햇볕 때문에 오히려 흐려 보이는 제주의 풍광들이 아련했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가파른 나무계단길이 하늘로 닿는 계단인양 계속되고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멀리 내려다보이는 진달래 군락과 아련한 풍경을 보다가 다시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인 한라산 정상 백록담 앞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게 웬일이람. 어디서부터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걸까. 백록담 정상일대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의 파도로 어지러웠다. 마땅히 앉을 만한 장소를 찾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백록담이 조금 낮아지진 않았을까. 백록담 정상 주변은 울긋불긋 사람들의 물결로 넘실넘실.

백록담은 화산 폭발로 형성된 산정화구호로, 화구의 능선 둘레는 1.72km, 넓이는 21ha(6만 3000평)가 조금 넘고, 동서 약 700m, 남북 약 500m인 타원형구조로 되어 있다 한다. 그리고 원래 1950m인 백록담 정상은 서쪽이고 우리가 선 동릉정상은 서쪽보다 17m가 더 낮은 1,933m.백록담을 훼손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 아래 1994년부터 자연휴식년제로 묶어 백록담에서의 순환을 통제했기 때문이라 한다.

패잔병, 너덜해진 양말로 감싼 등산화신고 한라산(1950m) 완주,모두 대단하다

한라산...... ⓒ 이명화


우린 한라산 정상에 오른 감동을 제대로 느껴볼 새도 없이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도시락을 대충 먹었다. 적어도 오후 5시까지 식당까지 이동해야 한다. 하산해 저녁을 식당에서 먹고 7시 배를 타야 했다. 그래도 잠시 백록담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날리고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정상에서 관음사야영장(해발620m)까지 걷는 시간은 적어도 4시간 이상 소요된다(등정시간은 그보다 더 많은 5시간 이상). 내려가는 길만 해도 보통 4시간 이상 걸린다면 체력에 따라서 걸음 걸음에 따라 더 많이 차이가 날 수 있다. 거리는 8.7km. 날씨는 여전히 말갛게 씻은 듯 청명하고 바람은 상쾌했다.

용진각대피소터에 놓여 있는 넓은 평상에 잠시 앉아 휴식하고 계곡에 걸려 있는 용진각현수교를 지나 왕관릉을 멀리 조망하며 걷다가 삼각봉대피소에 도착했다. 삼각봉을 마주보며 삼각봉대피소에서 다시 휴식했다. 아까 진달래대피소 근처에서부터 등산화에 양말을 덧씌워 떨어진 신발밑창을 겨우 고정하고 여기까지 온 패잔병 내외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발은 괜찮은지 묻자 괜찮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천천히 오시라고 하고서 먼저 일어섰다.

얼마쯤 갔을까. 함께 걷던 박 집사가 발이 아파서 제대로 걷지를 못해 갈 길은 멀지만 쉬어야 했다. 휴식하던 중에 회장이 회원들이 제대로 다 내려왔는지 점검하다가 뒤처진 패잔병을 떠올렸고 제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회장이 남겠다고 했다. 우리는 발가락이 아프다며 겨우 걷는 박 집사와 함께 다시 걸었다.

힘들어하는 박 집사를 보다 못해 남편은 박 집사의 배낭을 한쪽 어깨에 들쳐 멨다. 에고 저 체격에 또 하나의 배낭이 웬 말이람. 저러다가 틀림없이 집에 가면 끙끙 앓을 텐데 싶어 마음이 쓰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제 한 몸은 책임져야지. 에잇! 혼자 투덜거렸다. 그러던가 말든가 남편은 힘들다 하지 않고 두 배낭을 지고 뛰고 걸었다.

한라산...패잔병...무사귀환 환영...ㅎ수고많으셨습니다 ⓒ 이명화


먼저 도착한 회원들은 빨리 내려오라고 몇 번이고 무전기로 연락이 오는데 마음 바쁘건만 이젠 숲길에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러고 있다간 다른 회원들도 우리도 제 시간 못 맞추겠다 싶어서 빨리 오라고 몇 번 불러대다가 맨 뒤에 오는 회장한테 무전을 치고 뛰고 걸었다.

길은 왜 이렇게 끝도 없는지. 겨우 도착한 관음사 주차장. 버스 한 대는 이미 식당으로 가고 없고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쪽으로 걸어가다가 뒤 돌아보니 박 집사도 곧 모습을 드러냈다. 급히 뛰어왔다고 했다. 한숨 돌린 그때서야 아까 혼자 속상해서 맘속으로 투덜댄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 마음그릇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것을. 그동안 마음씀씀이가 작고 옹졸한 사람을 보면 '간장종지'같다고 했건만, 에고, 나야말로 간장종지보다 더 마음 그릇이 작았네 그려.

그 와중에도 우리는 한라산등정인증서를 발급받고 회장과 뒤처진 패잔병부부는 하는 수 없이 택시로 오라고 하고 버스는 곧 출발했다. 저녁 식사는 생략. 곧바로 여객터미널로 급히 이동해야했다. 연안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자 총알택시를 타고 온 회장과 패잔병 두 사람 역시 급히 도착했다. 우리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배가 떠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당도한 그들을 환영했다. 패잔병의 등산화를 감싸고 있던 양말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극적인 해후를 환호로 서로 화답하며 급히 배에 올랐다.

겨우 배에 올라 방을 배정받은 대로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지 못한 사람들은 배 식당에서 저녁을 시켜 먹었다. 땀으로 젖은 몸을 더운 물에 샤워까지 하고 나니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왔다. 바깥은 이미 어둠에 싸여 있었고 바람 없는 바다 위로 배는 진동 없이 바닷길을 나아갔다. 출발할 때와는 달리 돌아오는 길엔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온 밤을 배는 항해했고 이른 아침 우리를 부산항에 내려놓았다.

패잔병들이 있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한라산 등반부터 하산까지 긴긴 시간 동안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고 모두들 잘 해냈다. 신록이 짙어가는 5월, 이 푸르른 계절에 쾌청한 일기 속에 많은 회원들이 함께 한 한라산 등반...시작부터 끝까지 은혜 속에 마쳤다. 한라산에서 돌아서자마자 조용할 때 곧 다시 오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이은상도 한시를 지었겠다 싶었다.

구름 갓 안개 옷에/ 바람수레 탓사오매/ 하늘 뫼 갈밭머리/ 나도 오늘 신선이라/ 산마루 높은 고개도/ 나르는 듯 오르리라/ 아! 좋다 하고/ 다시 일러 좋다 하고/ 좋단 말밖에/ 다른 말은 모르겠네/ 인간에 신선 말 없으니/ 좋단 말이나 외칠거나.

포도원교회 등산선교회 한라산 등반이야기

ⓒ 이명화


덧붙이는 글 산행수첩

1. 일시: 2013년 5월 11일(토) 맑음
2. 산행: 부산 포도원교회 등산선교회 5월 정기산행: 70명
3. 산행시간: 9시간 30분
4. 진행: 성판악(8:30)-솔밭대피소(10:00)-사라약수(10:20)-사라오름 입구(10:35)-진달래밭대피소(11:30)-(간식후 출발 12:00)-백록담 정상(1:35)-하산(2:05)-용진각대피소터(3:00)-용진각현수교(3:15)-삼각봉대피소(3:25)-탐라계곡대피소(4:55)-숯가마터(5:15)-관음사 주차장(6:00)

*성판악→ 백록담: 5시간 5분 (점심시간 30분)
*백록담→ 관음사: 3시간 55분

5. 2013년 5월 10일(금): 오후 4시. 포도원교회 집결→4:40 출발→5:20 연안여객터미널 도착→5:30~6:30 팀별 인원파악. 주의 사항 전달→6:30 서경파라다이스 배에 승선→저녁 7시 출항(팀별로 방 배정-팀별로 배 안에서 저녁 식사)

6. 2013년 5월 11일(토)
→오전 6:00 제주항 도착
→차량 45인승 2대 (팀별 이동. 여행팀14명도 탑승)
→식당에서 식사 후 점심도시락 받음
→말 방목지에서 차량 두 대 만남
→성판악 도착
※산행 70명 중 5명 성판악으로 되돌아 감. 65명 완주함

7. 2013년 5월 12일(일): 오전 6:30 부산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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