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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서평]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등록|2013.05.19 11:04 수정|2013.05.19 11:04
공부의 달인, 업무의 달인……. 이처럼 달인 앞에 오는 익숙한 수식어들은 한정돼 있다. 그런데 '놀이의 달인' 이라니, 참으로 생소하다.

 "베짱이는 한심해!"

누구든 어린 시절,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읽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문장에 과연 오류는 없는가? 베짱이는 정말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한심한 존재로 기억돼야만 하나. 저자는 자신있게 말한다. 베짱이의 명예를 되찾아주는 것. 이게 바로 우리의 프로젝트다.

고등학교 때, 공부에 취미가 없던 나를 위해 고모가 책 한 권을 사줬다. 그 때의 나는 고모에게 '베짱이'처럼 보였을 거다. '습관' 이라는 책. '일등과 꼴찌는 습관부터 다르다'라는 문장을 책 표지에 달고 있었다. 아니, 왜 내가 일등의 습관을 배우기 위해 책까지 읽어야 하지? 참 머리 아픈 세상이다. 그 자체로서의 모습은 인정하지 못하고, 왜 자꾸 같아지길 원하는 걸까. 그것도 우리가 스스로도 어려워 하는 방면에서만.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 노동하는 거라고? 노동은 결코 행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노동이 미래의 행복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존재한다면, 만약 노모에게 편안한 집을 사드리고 싶어 공사판에서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는 노동을 긍정적이라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인 놀이와 달리 노동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니까.

산업혁명 이전에는 노동 자체가 놀이였다는데, 현 사회는 '노동'과 '놀이'를 어쩜 이리도 철저히 구분해놨을까 싶다. 우리는 자본가들에 의해 서서히 노동하는 기계로 전락해버렸으며 지금도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노동하도록 채찍질 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노동의 윤리를 믿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휴식이란 없는가. 이 책에선 미하델엔데의 <모모> 중 일부 내용을 잠시 언급한다. '회색 인간'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절약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속삭인다.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거참, 뭐 이런 어이없는 말이 다 있나. 이런 소소한 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피폐해질 것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우린 참으로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 지금은 종교 개혁도 거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축제를 금지하는 도로법 개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면 트리 축제가 열리고, 거리에 예쁜 트리들이 즐비한다. 사계절이 곧 축제 같은 나날들이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내일. 시간은 적금이 아니다. 내가 살아있는 매 순간이며 삶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신나게 놀아봐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어쩌면 '놀이' 라는 것의 가치를 매길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이를 중요히 생각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지 말고 과정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즐거움은 소비되는 게 아니라 더 큰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분명 가치로 매길 수 없는 순간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학교를 가고, 회사를 간다. 여전히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이다. 책을 덮는 순간 그 사실을 깨닫고 만다. 나 또한 탐욕스런 소비자기에 노동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 나는 먼저 '놀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될 것 같다. 그래서 베짱이를 기다린다. 누가 내게 와서 말해줄 것인가. '놀자' 라고 과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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