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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 책이 되다①]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박신영

등록|2013.05.27 14:51 수정|2013.05.27 14:51
한 권의 책은 그것을 읽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하며 한 사회의 진로와 역사의 발전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런 책의 위대함 때문인지 거의 모든 언론매체는 정기적으로 책 소개 및 서평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책이 독자의 삶을 뒤흔들 정도의 위력이 있다면, 도대체 그 책을 쓴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충격과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자신의 삶을 책으로 바꿔 낸 사람들을 만나, 책이 저자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들어보는 기회를 갖는다. 언젠가 책을 쓴 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은 많다. 하지만 모두가 꿈을 이루지는 않는다. 이미 자신의 삶을 책으로 바꿔 꿈을 이룬 저자의 인터뷰가 미래의 저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기자 말>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의 저자 박신영 ⓒ 임승수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편집자가 필자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임 작가, 시인은 직업이 아냐."

아마 당시 나는 글 써서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장사 안 되는 인문사회 저자로서 어려움을 토로하다가 크로스카운터를 맞은 것이다.

"그렇구나. 시인도 있는데…."

1972년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은수저 안 물고 태어난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를 일찍 깨달은 박신영씨는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미뤄왔다. 작가가 과연 제대로 된 직업인지 고민이 됐을 테니 말이다. 그녀는 책을 너무나 좋아했던 덕분에 중학교 때 남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 남자들한테 거의 왕따였어요. 남녀합반이었거든요. 쉬는 시간 같은 때에 애들이랑 뛰어 놀아야 하는데 저는 혼자 책 읽고 그랬어요. 저는 아이들이랑 TV 프로그램 얘기도 안 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쓰레기 같은 것을 던지더라고요. 제 주위에 막 휴지가 쌓여있고 그랬죠."

부잣집 막내딸 같은 곱상한 외모에 성적 우수, 게다가 도도한 척 책만 읽고 있으니, 범접하기 힘들어하는 남자들의 비뚤어진 애정이 날아다니는 휴지로 표현된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얘기는 예상 밖이다.

"이해를 못 하실 거예요. 아직도 우리나라가 책 읽는 여자를 호의적으로 안 봐요. 저도 그렇고 제 '예스24' 블로그 친구들도 그렇고, 밤에 야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잖아요? 그러면 술 취한 아저씨들이 와서 욕을 해요. 요즘도 안경 쓴 여자가 아침에 첫 손님으로 택시 타면 재수 없다고 그러고 승차거부하고 그래요. 안경 쓰면 책 많이 읽고 똑똑한 여자니까 재수 없다는 거죠."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의 <독서하는 여인>에 나오는 여성은 참 우아하던데. 책을 읽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편견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남자니까. 그런데 2013년 1월에 박신영씨는 재수 없음의 첨단을 달리게 됐다. 무려 책의 저자가 된 것이다. 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펴낸 책의 제목은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다.

별게 다 궁금했던 '왕따 소녀', 작가가 되다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표지 ⓒ 페이퍼로드

<잠자는 숲 속의 공주>나 <백설 공주> 같은 동화를 읽은 어린이는 대부분 어떤 생각을 할까? 여자라면 동화 속 공주처럼 백마 탄 왕자를 만나 멋진 결혼식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꿈꿀 가능성이 높고, 남자라면 공주를 구해내고 영웅이 되어 덕분에 공주와 결혼도 하는 일거양득을 꿈꿀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인 박신영씨는 어릴 때부터 일반 아이들과는 다르게 다음과 같은 내용이 궁금했다고 한다.

공주와 왕자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 서양 동화들을 읽으면서 어릴 적 나는 '유럽은 우리나라와 달리 나라도 많고 공주와 왕자도 참 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왕자는 왜 이리도 쉽게 공주에게 반할까? 한 나라의 왕자라는 사람이 저렇게 국경을 넘나들며 싸돌아다녀도 되는 걸까?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중

책에는 그녀 자신이 어릴 때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지금과 달리 근대 이전의 유럽은 작은 나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예컨대 1648년에 독일은 무려 300여 개나 되는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진 영방국이었으며 왕만이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귀족이나 기사들도 지방 영주가 되어 각각 자신의 영토를 다스렸다.

왕이 다스리면 왕국, 공작이 다스리면 공국, 백작이 다스리면 백국으로 불렀는데 이 영주의 자녀들은 모두가 왕자나 공주였던 셈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들에 후계자가 될 왕자가 많다면 문제가 생긴다. 영토를 분할하여 상속하면 국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위를 계승하는 한 명의 왕자를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알아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누군가는 무공을 떨쳐 큰 나라에 용병대장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를 점령해 영주도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일 편하고 확실한 방법은 결혼을 통해 자신의 왕국을 가지는 방법이었다. 즉, 나라를 상속받아 여왕이 될 이웃 나라의 외동 공주나 첫째 공주랑 결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왕자들은 조건이 좋은 공주를 찾아 이웃 나라의 궁정으로 가서 끊임없이 달콤한 구혼을 하거나 자신의 용맹을 자랑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또래의 아이들이 그저 동화 속 스토리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할 때에 박신영씨는 정말 별게 다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됐다. 바로 이 남다른 '궁금증' 때문에 박신영씨가 책의 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그때 궁금증을 많이 붙들고 있는 성격인 것 같아요.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경우도 7살인가 8살 때 읽었던 것 같은데, 하이디가 가는 프랑크푸르트라는 곳이 어딘지 궁금했어요. 왜 하이디는 산의 위 아래로 옮겨 다니며 양을 키울까? 하이디가 페터의 할머니에게 흰 빵을 갖다드리고 싶은데, 그 흰 빵의 의미가 뭘까?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이런 궁금함을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커서 제가 딴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할 때 딱 떠올라요. 1989년에 롯데월드가 생겼잖아요. 거기에 제트코스터가 생겼는데 이름이 '프렌치 레볼루션'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그걸 타면서 왜 이것이 프렌치 레볼루션일까, 그게 또 궁금하더라고요. 그게 당시 국내 최초로 뒤집어서 달렸거든요. 아! 뒤집어서 레볼루션(혁명)이구나 하면서 프랑스 혁명 관련 책을 읽게 되는 거죠. 이런 사람이었어요. 후후후"

하긴 숙명여대 국문학과 3학년 재학 때는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을 찾아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궁금증도 병이라 할 만하다. 그때 제주대 도서관장님이 기특하다고 커피도 타주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해도 학점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단다. 교수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제주도까지 가서 구해온 자료로 자신이 쓰고 싶은 것만 적고 있으니.

뻔히 알고 있던 동화 속 역사를 신선하게 '뒤집어 보기'

책의 내용 중에서 필자의 인상에 가장 남았던 내용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부분이었다. 소시 적에 교과서에서 <마지막 수업>을 접하며 치기 어린 애국심으로 감동했던 나는 새로운 박신영씨의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대부분이 잘 알겠지만 <마지막 수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프란츠는 알자스 주에 사는 소년이다. 평소에 자주 지각을 해서 꾸지람을 듣던 프란츠는 웬일로 아메르 선생님이 오늘은 지각했다고 야단치지도 않고 교실 분위기도 엄숙해서 당황한다.

선생님은 이 수업이 마지막 수업임을 알린다.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하여 알자스 주와 로렌 주가 프로이센 영토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제 프랑스어 수업은 금지되고 내일부터 독일어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목이 멘 채로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크게 쓰고 수업은 끝난다.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식민지의 치욕을 당했던 우리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 및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그런 일반적인 시각이 큰 문제가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알자스로렌 지방은 예로부터 동프랑크 영토에 속하여 오랜 세월 독일 문화권에 들어 있었다. 그러다 17세기의 30년 전쟁 이후 맺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프랑스 영토가 된다. 그러나 이미 오랫동안 독일권 영토에 속해 있었기에 프랑스에 병합된 이후에도 일반 사람들은 독일어를 사용했으며 프랑스어는 도시 상류 계급 일부만 쓰는 언어였다.

1871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의 전쟁으로 알자스의 대부분과 로렌의 동쪽이 독일에 병합될 때까지도 이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인구는 전체의 11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요컨대 프랑스 입장에서는 프로이센과의 전쟁 이후 알자스로렌을 잃은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지방은 오랜 세월 독일 영토였으므로 프랑스가 '잃었다'는 표현이 부적절한 것이다.

만약 어떤 나라의 교과서에 일본과 조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서 일본어를 한참 가르쳤는데, 전쟁에서 패해 조선을 잃고 더 이상 조선 사람에게 일본어를 가르칠 수 없어 목이 메고 숙연해졌다는 내용 말이다. 얼마나 황당한가? 그런데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우리 교과서에 실린 것이 바로 그런 격이다. 한마디로 프랑스 극우 민족주의적 시각을 모든 국민이 교과서로 배우고 있던 셈이다.

그녀의 꿈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한국의 시오노 나나미'

▲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다고 주장하는 박신영 작가의 강의 파일박스 ⓒ 임승수


자신이 언젠가는 책을 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박신영씨는, 페이퍼로드 출판사 관계자와 처음 만난 날이 자신의 생일날이었다며 들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예스24 블로그에 책이나 영화에 대한 리뷰를 꾸준히 썼는데요. 페이퍼로드 쪽에서 국내 필자를 발굴하려고 주욱 블로거들을 살펴봤나 봐요. 그런데 제가 역사책 리뷰를 많이 쓰잖아요. 페이퍼로드에서 역사서가 많이 나오거든요. 제 리뷰를 보고 관심이 갔나 봐요. 그래서 연락이 왔고요. 처음부터 책을 내자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출간할 책을 모니터해주는 역할을 부탁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감이 왔죠. 아! 이 사람들이 나를 간을 보고 있구나. 후후후. 출판사에서 출간을 준비하는 원고 파일을 저한테 보내며 의견을 구하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원고를 검토하면서 역사적으로 오류를 지적해주거나 보완할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보냈죠. 그것을 굉장히 성실하게 했어요. 한번은 휴가를 떠나는 날 새벽 4시까지 검토해서 의견을 보내기도 했죠."

이런 박신영씨의 성실함과 내공에 감동을 받은 출판사 측에서는 함께 책을 내보자고 권유했다. 원래 출판사에서는 리뷰를 쓰는 블로거를 발탁했으니 일반적인 리뷰를 담은 책을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과감하게 출판사 측에 오히려 역제안을 한 것이다.

"나는 역사책을 읽어온 사람이고 역사책을 쓰고 싶다고 얘기했죠. 몇 가지 기획을 짜가서 마치 영업하듯이 문서를 좌악 늘어놓고, 저는 지금 이것과 요것을 쓸 수 있고요, 10년 후에는 이걸 쓸 수 있고요,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시오노 나나미가 될 거예요, 라고 했어요. 저는 주경철씨의 전문성과 주강현씨의 대중성, 그리고 이덕일씨의 사회비판정신을 다 갖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얘기했지요. 그분들 표정이 '아! 똘아이가 왔구나'였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그때 무척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회사를 다니면서 책을 쓰려니 도저히 진척이 안 됐고 회사냐 저자냐의 선택이 그녀 앞에 놓였다.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마음이 움직이는 곳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1월에 출간한 책은 벌써 3쇄를 찍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됐고 곳곳에서 강연 섭외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책을 쓰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책과 칼럼을 통해 시공간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살짝, 회사 다닐 때와 전업 작가 전향 후의 수입에 대해 물어봤다. 현재 전업 작가인 자신은 '88만원 세대'도 못 된다고 얘기하는데 도대체 왜 웃고 있는 건지. 추측컨대 내가 그때 본 웃음은 회사 다닐 때 동료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 없었던 웃음일 것이다.

그녀의 블로그를 탐색해보니 저자로 첫 강의를 한 곳이 LG전자 사내강연인데 그때 준비해간 파일박스에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역사 에세이스트 박작가 강연 파일'이라는 문구가 보란 듯 적혀있었다. 이거 보소? 패기는 시오노 나나미 급이네. 아마 그녀는 이 문구를 자신의 파일박스에 적어 넣기 위해 그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고 폴댄스(봉춤)를 배우러 가는 그녀와 헤어졌다. 아! 정말 사차원이다. 그녀가 향후 주경철의 전문성과 주강현의 대중성, 그리고 이덕일의 사회비판정신을 다 가진 한국의 시오노 나나미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책은 조만간 꼭 나올 것이다. 왜냐고? 그녀는 지금 이 삶이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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