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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은 아니지만...

몽골 산동네 아이 툽세가 '태양광 전등' 달던 날

등록|2013.05.22 18:41 수정|2013.05.22 18:41

▲ 몽골 울란바토르의 한 게르촌에 사는 어린 형제가 수레에 물을 실어나르고 있다. ⓒ 이주빈


지난 12일 몽골 울란바토르 손깅하이르 지역. 어린 형제가 물수레를 밀며 가파른 산동네 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어린 형제가 사는 집엔 수도시설이 없다.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는 약 2Km 떨어진 아랫마을에서 돈을 주고 사와야 한다. 수도가 안 들어오니 전기 역시 들어오지 않는다. 물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도시의 산동네. 어린 형제는 부모를 따라 이곳에 왔다.

유목민이었던 부모는 정부의 광산 개발로 초원을 떠나야 했다. 몽골은 지하자원 매장 규모가 약 1조3000억 달러(약 1400조 원)로 추정되는 자원강국이다. 2011년 기준으로 몽골 국내총생산(GDP)의 27.4%를 광업이 차지하고 있고, 전체 수출의 약 90%가 광물일 정도다.

유목민이 초원을 잃었다는 것은 집터와 일터를 동시에 잃었다는 것을 뜻한다. 초원을 잃은 유목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 울란바토르로 몰려들었다. 몽골 전체 인구는 약 280만 명, 이 중 절반에 가까운 약 130만 명이 울란바토르에 살고 있다.

광산개발로 초원 떠난 유목민들, 일자리 찾아 도시로

▲ 정부의 광산 개발로 초원을 떠나게 된 몽골 유목민들이 도시 울란바토르 야산에 게르(유목민 전통가옥)를 치고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 이주빈


▲ 몽골 울란바토르 손깅하이르항 지역은 울란바토르에서도 가장 넓게 '게르촌'이 형성된 곳이다. 게르촌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향한 이들이 모여 살던 한국의 산동네와 달동네, 토막민촌을 연상시킨다. ⓒ 이주빈


울란바토르는 최대 팽창 인구 70만 명을 예상한 계획도시였다. 최대 예상치의 두 배에 가까운 인구가 살다보니 전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울란바토르 주민의 절반가량은 수도와 전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몽골 전체적으로는 인구 약 280만 명 중 90여만 명이 전력 소외계층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구의 1/3 가량이 전력소외계층인 셈이다.

몽골의 고질적인 전력난이 더 악화되고 있는 까닭은 초원을 잃고 도시로 향하는 유목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 외곽 야산 지역엔 몽골식 산동네이자 달동네인 '게르(유목민 전통가옥)촌'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도시로 이주한 유목민이 늘어날수록 전력난과 식수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력난에 몽골 정부는 러시아 등에서 전력을 수입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다. 또 한국 정부와 몽골 정부는 태양광 전력과 풍력 발전소 등을 개발하는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환경재단 등 한국의 비정부기구들은 수년째 '태양광 전등' 지원활동을 펼쳐 몽골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환경재단은 태양광 전등 1만 세트 지원을 목표로, 지난해 1년 동안 몽골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네팔, 캄보디아 등 아시아 5개 국가에 총 3500여 세트를 지원했다.

인구의 1/3이 전력소외계층... 한국 비정부기구, '태양광 전등' 지원

▲ 한국 달동네에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었듯 몽골 게르촌에도 무허가 게르들이 지어지고 있다. 무허가다보니 식수와 전기 공급은 원활치 않다. ⓒ 이주빈


▲ 12일 몽골 울란바토르 손깅하이르항 지역에서 '태양광 전등 전달식'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환경재단 이미경 사무총장(왼쪽)과 강기정 민주당 의원(왼쪽 두번째), 김현 민주당 의원. ⓒ 환경재단 제공


환경재단은 지난 12일 국회 연구단체인 '나무를 심는 사람들(대표 의원 강기정)'과 함께 손깅하이르항구 135가구를 대상으로 태양광 전등 150세트를 직접 전달했다. 태양광 전등과 충전식 태양광 전지로 구성된 태양광 세트의 제작비용은 한 세트 당 20여만 원. 태양광 전등은 4시간을 충전할 경우 약 10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환경재단과 '생명의 우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 손깅하이르항 가나 부구청장은 "우리 구는 울란바토르 6개 구 중 인구가 제일 많고 면적 역시 가장 넓은 곳"이라며 "몽골의 전력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까지 1000여 개가 넘는 태양광 전등을 지원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환경재단 이미경 사무총장은 "'생명의 우물 프로젝트'가 그냥 물이 아니라 한 마을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지키는 역할을 해 왔듯 태양광 전등 지원사업도 그냥 빛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비춰주는 사업"이라며 "이 태양광은 그냥 빛이 아니고 '드림 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새누리당 신성범 의원 등과 함께 현지에서 태양광 전등을 전달한 강기정(민주당) 의원은 "태양광은 지구 환경 관련 대체 에너지로서 의미가 있고 반영구적인 빛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전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태양광 전등을 전달하게 돼 기쁘고 이 태양광 전등이 희망의 빛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태양광 전등을 전달받은 툽세(파란색 체육복 입고 서있는 학생, 10)의 여동생이 찾아온 손님들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 이주빈


태양광 전등을 전달받은 체체게(여·40)씨는 "2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데 저녁이면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집안에 빛을 밝힐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고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것"이라고 인사했다.

열 살인 툽세 학생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태양광 전등으로) 집이 밝아져 저녁에도 그릴 수 있게 돼서 기분이 좋다"며 "집이 밝아지니까 너무 좋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전기가 없어 하루의 절반은 어둠 속에서 꿈을 키워야 했던 몽골 산동네의 어린이들.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은 아니지만, 초원에서 키웠던 푸른 꿈에 희망의 빛이 들어서고 있다.

▲ 몽골 울란바토르 한 게르촌의 모습. 경사진 길에서 온 가족이 소형 자동차를 밀어 옮기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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