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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 조사에 6시간 검토...김용판 사법처리 초읽기

[현장-해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힘겨운 귀가

등록|2013.05.22 10:49 수정|2013.05.22 15:07

김용판, '질문은 사양합니다' 지난해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수사할 당시 사건을 맡은 수서경찰서에 부당하게 개입해 수사를 축소시킨 의혹을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조사를 받고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밖으로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동이 터서야 밖으로 나왔다. 19시간이 넘는 조사였다. 국정원의 정치·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한 주요 관계자 소환 조사 중 가장 오래 걸렸다.

전날(21일) 오전 10시경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로 출두한 김 전 청장은 날이 바뀐 22일 오전 5시 20분경에야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입구에서 밤새 기다린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도 그가 한 말은 "성실히 조사에 임했다"가 전부였다. 그는 밤새 취재진과 약간 떨어져 대기 중이던 대여섯 명 사복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차에 올랐고, 카메라를 의식해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엄지 손가락에는 인주 자국이 묻어 있었다.

검찰 조사는 전날 오후 11시경 끝났지만, 그 이후 시간 동안 김 전 청장이 꼼꼼히 조서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만 13시간, 검토에 6시간. 검찰과 김 전 청장, 양쪽 다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정권 정통성의 제2 아킬레스건

김 전 청장의 소환과 강도 높은 조사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의 사법처리 여부가 현 정권의 정통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찰 수뇌부의 축소 수사 의혹은 국정원의 정치·대선 개입 의혹에서 파생된 지류와 같은 사건이다. 하지만 그 무게감은 본류 못지 않다.

김 전 청장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지난해 12월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권은희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장(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등 실무진에게 수사를 축소하라고 압력을 넣은 혐의다. 두 번째는 대통령선거를 불과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 16일 한밤중에 "국정원 여직원이 정치 댓글을 올린 흔적이 없다"는 부실 중간수사 결과를 갑자기 발표하라고 지시한 혐의다.

하나하나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매우 정치적이고 대선 개입으로 해석된다. 김 전 청장이 무슨 배경에서 그런 행위를 했든, 결과적으로 그 혜택은 고스란히 새누리당과 현 정부가 봤다. 정치적 반대 진영에서는 '국정원이 만든 정권'뿐 아니라 '경찰이 만든 정권'이라고 공격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박주민 사무차장은 "김 전 청장의 행위는 국정원 사건 자체와는 또 다른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라며 "그가 기소가 된다면 논리적으로 당연히 현 정권의 정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에서 김 전 청장은 자신의 혐의에 대해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7일 출판기념회에서도 "나에 대해 이런 저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투명하고 공정하면서 원칙에 맞게 했다고 자신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혐의 입증 자신있어 하는 검찰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있어 하는 분위기다.

김 전 청장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부장)에 소환된 시간은 21일 오전 10시다. 그런데 검찰은 이날 새벽 3시 30분에야 서울경찰청 압수수색이 끝났다.

검찰 수사 관계자는 이날 오전 압수한 물건을 검토할 시간도 없이 바로 소환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이 많이 있다"면서 "압수물이 지금 반드시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없어도 (소환조사에)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기초조사를 많이 했다"며 "(김 전 청장이 조사를 받으면) 와, 이렇게 많이 조사했구나, 할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당시 김 전 청장의 상관이자 역시 피고발인 신분인 김기용 전 경찰청장에 대해서는 "관련 증거가 하나도 안 나왔다"고 말했다.

김 전 청장의 밤샘 조사로 경찰 수뇌부의 축소 수사 의혹에 대한 수사는 거의 끝났다. 같은 날 검찰은 국정원 내부 기밀 유출 의혹에 대해서도 관련자를 소환했다. 검찰은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했다며 새누리당이 고발했던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수서경찰로서로부터 조만간 사건을 송치받을 예정이다. 민주당 피고발인들은 소환 통보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소환 등 막판 수순만 남았다.

한편 민주당은 최근 새롭게 터져나온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과 '반값 등록금 대응 문건'에 대해서도 23일 고발장을 제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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