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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국회의원 안 한다, 국회에 19년 있어보니..."

[나는 보좌관이다 ⑤] 국정감사만 18번, '폭로 전문가' 서인석 보좌관

등록|2013.05.31 16:11 수정|2013.06.03 11:40
국회의원이 있으면, 그의 곁에는 항상 보좌관이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 상당 부분에 보좌진의 손길이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슴팍에 배지를 단 의원뿐이다. 그렇다면, 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는 보좌진들의 생활은 어떨까. 밤을 새워 일해 국회의원을 빛나게 하지만, 평생 '4년짜리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보좌진들의 정치 역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편집자말]

▲ 서인석 보좌관은 14대 국회부터 18년 동안 국정감사를 전담하며 국회가 가진 '정부 감시 기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국회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그 동안 쌓은 노하우를 소개하는 두 권의 책 <국정감사 실무 매뉴얼>과 <국회 보좌진 업무 매뉴얼>을 펴냈다. ⓒ 남소연


국정감사가 치러지는 '가을 국회'를 18년 동안 지킨 이가 있다. 바로, 김동완 새누리당 의원실의 서인석 보좌관이다. 1995년 국회에 발을 디딘 그는 햇수로 19년째 보좌관으로 국회에 근무 중이다. 그동안 18번의 국정감사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 "국회에서 18년간 근무한 보좌관은 있겠지만, 18년 동안 쉬지 않고 국감을 전담한 보좌관은 본인이 유일할 것"이라는 게 서 보좌관의 설명이다. 국회가 가진 '정부 감시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국감에서 서 보좌관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왔다.

1995년 7월, 국감이 뭔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그는 어느새 '폭로 전문가'가 됐다. 대학에서 강사를 하며 논문식 글쓰기에 익숙하던 그에게는 A4 2장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것마저도 "적응해야 할 대상"이었다. 정해진 논리를 쫙 풀다가 마지막에 뻔히 아는 답변을 위해 질문을 던지는 방식도 생경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렇게 공부하면 된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알아서 커야 하는 게 보좌관의 생리였다. 그렇게 2년을 헤매니 이제 좀 알 것 같았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국정감사 실무 매뉴얼>이다. 8번의 국감을 거친 후 자신의 경험을 집적해 책으로 펴냈다. 책에는 자료 요구 단계에서 '무조건 찔러보기식 자료요구는 안 된다', '전화 대신 문서로 확인하라', '피감기관에게 칼자루를 주지 말라'는 비법 전수는 물론, 국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결과물을 '수확' 해야 할 언론 보도에 적극 대응하는 방식도 담고 있다. 현재 3번 개정·증보하며 18년 국감 역사를 업데이트 하고 있다.

국회를 파악하는 그는 이제 행정부를 꿰뚫기 시작했다. 행정부 공무원들은 자료 요구를 하면 '그런 자료가 없다'고 답하기 일쑤였다. 향후 다른 경로로 자료가 공개돼서 따지면 '내가 언제 그랬냐'고 배짱을 부리더란다. 그는 "그렇다면 문서로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적어 장관 결재 받아 보내라"고 응수했다. 이렇게 하면 열에 아홉은 자료가 술술 나왔다.

그에게는 그만의 자료 요구 방식이 있다고 한다. 깊숙이 감춰져있는 내부 문서를 찾아내는 히든카드다. 일반적인 자료 요구 방법은 책에도 다 적었지만, 이것만큼은 '비밀'로 남겨뒀다. 국회를 떠날 때 공개할 계획이다. 

'어떤 자료를 요구할지'에 대해서도 도가 텄다.

"만일, 그린벨트 훼손 상황을 보고 싶다면 '그린벨트 훼손 현황'을 달라고 해봐야 그런 자료는 절대 안 준다. 그러나 훼손한 그린벨트에 대해 벌금을 매긴 현황을 달라고 하면 곧장 나온다. 이렇게 돌려치면 어떤 목적으로 자료를 달라고 하는지 알아도 주게 돼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일종의 폭로 전문가가 됐다."

18년 국감 전문 보좌관의 고발 흔적들..."기자들 특종하듯, 나의 특종"

이렇듯, 18회 국감 중 국토해양위원회에서 11번의 국감을 치러내며 국감 베테랑이 된 서 보좌관은 여러 건의 '고발' 흔적들을 남겼다.

가장 최근에 '고발'한 사례로 그는 지난 해 국감에서 감사원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은 것을 들었다. 행정부를 상대로 '항공 마일리지' 사용을 독촉하던 감사원이 정작 600만 항공 마일리지를 방치한 채 사용하지 않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당시 감사원은 "이게 보도되면 '가오'가 서지 않는다며 공개를 막으려 온갖 공작을 펼쳤지만 공개 했다"고 서 보좌관은 전했다.

지하철 신문판매권을 특정인들이 독점하고, 이마저도 수의 계약으로 이뤄지는 상황도 밝혀냈다. 이로인해 신문판매권은 공개경쟁입찰로 제도 자체가 바뀌었다. 주택공사의 영구임대주택 세입자 중 절반이 입주자격이 없는, 외제차 이용자와 다량의 재산 보유가임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임대주택 입주자격이 강화됐다.

서 보좌관은 "기자들은 특종하는 맛에 살지 않냐, 우리도 우리 나름의 특종을 하는 거"라며 웃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기껏 밝혀낸 사안을 덮어야 할 때도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 국감을 치를 때, 철도 서행 구간 자료를 요구해 받았다. 교량, 터널 지날 때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30km로 줄이는 구간이 나오더라. 기본적으로 붕괴위험이 높을 때 서행한다. 그 구간을 위주로, 교량 건설 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보수한 구간을 뒤져보니 난리가 난 상황이더라. 그런데 정권 바뀌고 호남이 득세할 때였고, 철도청에 광주일고 핵심이 자리 잡았었다. 결국 덮을 수밖에 없었다."

"국회 수준 높아져 행정부가 보좌관 두려워 했으면...그게 진정한 3권 분립"

▲ 서인석 보좌관은 "국회 수준이 높아져서 행정부가 보좌진들의 실력과 내공 때문에 국회를 두려워했으면 좋겠다, 그게 진정한 3권 분립"이라고 말했다. ⓒ 남소연


그가 보좌관 생활을 하며 펴낸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국회 보좌진 업무 매뉴얼>이다. 그는 책에 보좌진의 역할이 무엇이고 연봉과 상여금이 얼마며, 보좌관은 어떤 절차를 통해 뽑히는지 자세히 적었다. 보좌관이 된 후, 출근 첫날 무엇을 해야할지까지 알려주어 국회 내의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실제 지난 해 여름, 국회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은 서 보좌관이 쓴 국정감사 매뉴얼이었다. <보좌진 매뉴얼>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서 보좌관은 "책으로 돈 벌려는 게 아니"라며 "국회 도서관 대출 1,3위라는 건 그만큼 사보는 사람은 없다는 거"라고 강조했다. 그가 이처럼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데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자리하고 있다.

그의 책을 두고 '다 아는 내용 굳이 책으로 내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밥그릇을 왜 공개하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책을 내면 여러 보좌관들도 연달아 책을 낼 줄 알았다"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책 잘 만들었다는 칭찬 한 번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개정·증보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서 보좌관은 "보좌관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알려야, 국회 보좌관 수준이 높아진다"며 "국회 수준이 높아져서 행정부가 보좌진들의 실력과 내공 때문에 국회를 두려워했으면 좋겠다, 그게 진정한 3권 분립"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 숨은 일꾼인 보좌관이 정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만 진정한 의미의 3권 분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좌관 교육이 시급하다는 것이 서 보좌관의 판단이다.

"보좌관 출신 국회의원이 19대에만 20명이 넘는데 누구 하나 보좌진 출신이라고 밝히는 의원이 없다. 이 분들이 나서서 보좌관 육성에 힘써야 하는데 안타깝다. 보좌관은 개인이 알아서 성장하기 참 어려운 직업이다. 하루살이가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보좌관으로, 개인의 노하우를 모아 국회의 조직적 자산으로 쌓아야 한다."

"법이 첫째, 그 다음이 예산, 마지막이 국정감사"

그렇다면 그는 후배 보좌관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있을까. 서 보좌관은 "후배들 교육할 때, '법이 첫째고 그 다음이 예산 그 다음이 국정감사다. 국감은 1년에 한 번하는 이벤트일 뿐이다'라고 말한다"며 "의원들이 국감 가지고 싸우던가? 법과 예산 가지고 멱살 잡는다, 그만큼 법과 예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이 있어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액션이 가능하고, 예산이 주어져야 액션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기에 법과 예산이 갖는 힘이 실로 막대하다는 것.

"찬반이 분분한 4대강 사업을 두고 국감을 한다고 하면 정부는 싫은 내색은 하지만 실제로는 '하려면 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예산을 깎겠다고 하면 당장 담당 과장이 국회로 달려온다. 사업비가 없어지면 그 일을 담당하는 자신의 부서가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회 경력 20년을 코앞에 둔 그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것도 예·결산이다. 그가 판단하기에, 예산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보좌관은 손에 꼽힌다. 그만큼 복잡하고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예산심사는 돈에 꼬리표 달아주는 거다. 100원을 어디에 쓰는지 다른 주머니에 돈을 넣지 않는지 감시하는 거다. 그런데 보좌관들이 용어도 잘 모른다. 예비비, 예비금이 뭔지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확한 용어를 모르니 행정부에서 만만하게 보는 거다. 행정부를 쪼려면 그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서 보좌관 자신도 예·결산에 대해 아직 모두 알지는 못하는 상황.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 국회를 떠날 즈음 <예·결산 매뉴얼>을 책으로 펴내 국회 보좌관 3종 세트를 완성하는 게 그의 목표다.

국회와 행정부를 '빠삭하게' 꿰고 있는 그에게 '의원에 도전할 의사'를 물었다. 가차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회의원 두 번만 하면 자기 손으로 기차표도 못 끊고 전화도 못 건다. 의원들이 왜 재선에 목을 맨다고 생각하나. 배지는 곧 생계다. 9명이 4년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보좌하는데 국회 밖으로 나가서 아무것도 못한다.

내가 국회의원을 안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권력욕과 명예욕이 없기 때문이지만, 의원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항상 누군가 자기 지역구를 뺏을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다보니 팀제로 운영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각개전투다."

국회 경력 19년차, 서인석 보좌관이 겪은 3명의 의원들

서 보좌관은 14대 국회 말 쯤 임채정 전 열린우리당 의원실 비서관으로 국회 생활을 시작했다. 햇수로 꼭 19년째다. 그동안 연을 맺은 의원은 임채정 의원, 안상수 의원, 장광근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근 20여 년의 역사 동안 그가 바라본 의원들의 모습은 어떨까. 서 보좌관이 함께 일한 기간이 1년 이상이 되는 3명의 의원들에 대해 물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 (14, 15대 때 보좌관으로 근무)

"임채정 의원은 참 그릇이 큰 사람이다. 1995년 가을, 임 의원이 노원구청장 공천 관련 돈을 받았다고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지구당 화장실까지 뒤지더라. 검찰이 조사를 들어오니, 보좌관 중 한 명이 선거관련 자료를 지구당 사무실에 가져다 놨는데 그걸 보고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고 (검찰이) 쳐들어 온 거였다.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서류를 옮겨놔서 압수수색까지 들어오게 한 셈이 됐다. 당사자는 또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겠냐. 그런데 임 의원이 비서 어깨를 툭 치며 '마음 고생 많지' 하고 그냥 넘어가더라. 1000명 중 999명은 불같이 화를 냈을 거다. 참 그릇이 크다고 느꼈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 (16,17대 때 보좌관으로 근무)

"안상수 의원 같은 의원 10명만 있어도 국회가 바뀐다. 정치 후원금 받을 때 셈이 명확하다. 지인과 나(안 의원)와의 관계에서 200만 원 내는 정도가 맞는데 500만원을 냈다고 하면 300만 원을 돌려보내는 사람이다. 나머지는 뇌물이라는 거다. 정말 오랜 인연을 가진 친구가 500만원 줬다면 그건 둘 사이의 관계에서 오갈 수 있는 돈이라 판단하고 받는다. 그런 선을 명확히 지키는 사람이다. 또, 안 의원은 검찰을 거치면서 행정 매카니즘을 잘 알았다. 신문을 뽑아주면 그걸 일일이 읽고 스스로 정리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 (18대 때 보좌관으로 근무)

"정말 달변이다. 현안 관련 지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행사에 가도 핵심 이슈 몇 가지만 제시해주면 그걸 두고 10분을 얘기할 수 있다. 웬만한 사람은 보좌관들이 원고를 적어주면 그거 읽는데 급급하다. 장 의원은 어느 상황에 처해도 얘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공력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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