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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진격, 우리가 살 길은...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록|2013.05.27 14:02 수정|2013.05.27 14:02
최근 일본 M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국내에서도 화제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원작 작가가 "애니메이션이 원작이고, 내가 리메이크 한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TV판임에도 세밀하게 표현된 그림체, 매회마다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을 이어가는 연출력, 개성 있으면서도 정감이 가는 캐릭터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압권인 것은 <진격의 거인>이 보여주는 세계관과 설정이다.

서기 800년대, 갑작스럽게 출현한 거인들로 인해 인류는 큰 위기를 겪는다. 거인들이 인간을 무자비하게 잡아먹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궤멸의 압박에 처한 인류는 50미터 높이의 성벽을 쌓아올린다. 100km 남짓하게 구축된 공간 안에서 100년간 평화롭게 살아가며, 소박하게나마 행복한 삶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평온한 나날은 오래가지 못한다. 845년, 초대형 거인들에 의해 성벽이 무너지고, 그 안에서 안전하리라 믿었던 사람들은 또 다시 침략당한다. 대포로 무장한 성벽도 거인들 앞에선 초라하기만 하다. 등장인물들은 그저 거인들이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신세다.

거인의 손에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은 복수를 다짐하며 군에 입대한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더 흐르고, 거인의 침공은 또다시 벌어진다. 과연, 거인에 맞서 인간들은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잃어버린 평화를 다시 되찾는 것은 가능할까.

<진격의 거인>이 '일본 군국주의 찬양'?

일본에서 누적 판매부수 1000만 권을 돌파했다는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 그 열기는 날로 뜨거워지는 중이다. 그런데 극 중 설정을 두고, 국내 누리꾼들은 다양한 해석을 늘어놓으며 갑론을박하는 모양새다.

그중 가장 설득력을 얻고있는 해석은 '일본의 군국주의 찬양'에 관한 것이다. 극 중에서 성벽 안에 갇혀서 발전을 이뤄가는 주인공(인간)들은 일본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이고, 거인은 주변의 강대국인 중국 등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모든 기반이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 다시 경제를 부흥시켰던 것은 '거인들의 첫 침공 이후 성벽을 쌓아올려 그 안에서 안정을 추구'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견고할 것만 같던 성벽이 또다시 허물어지고 벌어진 거인의 2차 침공은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태 이후 추락한 일본의 지위와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위기 의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최근 일본이 극우화되고 있는 경향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현실을 염두에 두고서 지켜보자면, <진격의 거인> 속 대사들은 그저 흘려듣기에 섬뜩할만큼 군국주의의 부활을 예찬하는 듯하다.

"싸워! 싸워야 살아남는다."
"적전 도망은 사형에 처한다! 모두 명심하고, (명령에) 목숨을 바쳐라!"

결성된 군대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용맹하게 전투에 임하는 것은 많은 국가들이 자연스럽게 장려하는 태도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오늘날 일본의 입에서 나온 표현이라면, 식민 지배의 아픔 겪었던 국가 중 하나인 한국으로선 당연히 경계심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대목인 것이다.

또 다른 시각, 한국의 현실에 비춰본다면...

앞서 말했듯이, 현재 8화까지 방영된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들이 읊는 대사들에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거인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전투력을 기르고 무장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대사는 최근 일본의 우경화 분위기에 맞물리는 구석이 많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보려고 한다. 작품을 만든 사람과 그가 속한 배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지면에서는 한국의 시청자로서 와닿을만한 또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3년 한국, 여느 때보다 이슈가 되고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갑'이다. '최고'라는 뜻을 가진 유행어가 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최근 뉴스를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몇가지 사건들이 배경에 있기도 하다.

항공사 승무원에게 "라면이라도 끓여오라"며 수차례 시비를 걸다가 끝내 폭력을 휘두른 모 기업의 임원, 비윤리적인 폭언과 '밀어내기'식 납품 종용을 일삼은 것이 폭로돼 불매운동의 대상이 된 남양유업, 점주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는 편의점 업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슈퍼 갑'의 횡포가 만연한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진격의 거인> 속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며 대포에도 끄덕없는 거인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대기업 혹은 '갑'의 지위와 닮은 꼴이다. 부당한 정리해고와 안전불감증 등 관리 소홀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눈조차 깜빡하지 않는 태도 역시,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꿀꺽 삼켜버리며 자신의 배를 채우는 거인의 태연한 모습과 닮아있다.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 앞에서 무기력한 개인의 모습, 그것이 단지 애니메이션의 대립구도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다 편한 마음으로 <진격의 거인>을 시청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중국의 급성장'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 한국에서도 이 애니메이션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도 대중이 주인공들을 응원하며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은, 그 대상이 다를지언정 우리도 현실에서 권력자인 누군가의 부당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현실에서도 '진격하는 거인'에 굴하지 않기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의 과정을 거친 시청자들은 그들이 거인을 상대로 이기는 장면을 기대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등장인물들이 거구의 괴물들을 쓰러트리고, 되도록이면 더욱 적은 희생으로 평화를 되찾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지닌 것은, 나약한 육체와 스파이더맨처럼 고공을 날게 해주는 케이블 기구 그리고 두 자루의 칼이 전부다. 초인적인 능력이나 영웅적 용감함과는 거리가 멀고, 육중한 괴물들 앞에서 지레 겁먹는 그들의 모습은 소시민인 우리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들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처럼, 현실에서도 우리가 '진격하는 거인'에 굴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거인 하나의 목덜미를 베고나면 무뎌지는 칼날처럼, 그저 잠깐에 불과한 대중의 관심과 언론보도에 그치지 말았으면 한다.

서로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입대했지만, 거인에 대항할 때만큼은 단결하는 등장인물들은 서서히 거인을 무찌르는 방법을 찾아간다. 거인에게도 약점은 존재하고, 이것을 찾아낸 뒤에 실행하는 것은 각자의 능력을 발휘한 개인의 집합이다. 말하자면 '연대'를 했기에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경제민주화는 정당하게 이뤄지는 '부의 재분배'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부당한 착취부터 근절해야 마땅하다.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을 쓰러트리고 함께 손잡고 살아가는 세상, 그런 사회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노무현이 남긴 말처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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