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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8항쟁' 버마전사들, DMZ 찾아 분단 아픔 느껴

버마사랑·평화교회·탄케 ABSDF 의장 등 민주화운동가 초청 체험 여행

등록|2013.05.27 12:35 수정|2013.05.27 12:36
버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이 방한,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비무장지대를 둘러보고 한국의 평화통일과 버마의 민주화를 기원했다. 이들은 5·18광주민중항쟁 행사 참석차 내한했다.

지난 25일 한반도 분단현장인 김포지역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민통선분단체험학교'이자 '민통선평화교회'를 찾은 버마인들은 버마 최대 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된 '8888항쟁'의 주인공 4명과, 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간부들. 인기 국민여배우이자 여성운동가 한명도 동행했다.

'버마학생민민주전선'(ABSDF) 탄케 의장과 에이 르윈 중앙위원, 아웅 모 조아 새사회민주당 대표, 짐미 '88세대 평화와 열린사회' PR책임자이며 서울인권영화제 2012년 상영 다큐 '창살로 막을 수 없는 자유'(Into the current) 출연자가 그들. ABSDF 두 명 간부는 국경지대에서 무장투쟁을 하다 현재는 태국에 거주하고, 나머지 둘은 군부정권에 붙들려 20여 년 가까이 징역살이를 했다.

함께 방한한 민꼬 나잉은 미국에 일이 있어 하루 전 떠나느라 DMZ여행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그는 2009년 투옥 중 광주인권상을 수상(대리)했다. 8888항쟁 당시 양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2007년 샤프란혁명을 주도한 혐의로 20년을 넘게 옥살이를 했던 그가 석방돼 직접 상을 받으려고 내한한 것.

▲ ‘8888항쟁’을 벌였던 버마민주화운동 지도자 여럿이 5·18광주행사 참여 차 방한, 한국의 분단아픔을 느끼려고 비무장지대를 찾았다. 애기봉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서. ⓒ 최방식


▲ 서울제일교회가 평화기행의 일환으로 동경의 한 교회신도를 초청 분단지역을 방문했다. 민통선 안에 있는 평화교회 앞에서. 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정진우 목사. 네번째는 김세진 열사 어머니. ⓒ 최방식


5·18행사 참여차 내한 분단 체험

지난 25일부터 이틀간 이들의 DMZ여행을 주도한 건 '버마사랑'(준비위 대표 유종순, 지난 10일 결성)과 민통선평화교회(목사 이적). 여정이 좀 달라 버마인들이 먼저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가고, 기자가 포함된 버마사랑 활동가들은 뒤늦게 이들을 좇았다.

따가운 초여름 햇살을 맞받으며 김포도심을 지나 개성시 개풍군과 해주 땅이 강 건너로 바라보이는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로 들어서는 길목. DMZ출입을 통제하는 해병대 초소가 가로막는다. 평화교회 방문자라고 하니, 일행 중 한명의 신분증을 요구하고 출입신고서 및 서약서를 작성하란다.

잠깐의 긴장된 순간, 뒤로 차 한 대가 달라붙는다. 뒤쫓아 온 일행. 검문소 병사의 거수경례를 뒤로하고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서는데, 저만큼 한적한 마을과 농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긴장감이 감도는 민통선 안쪽인데, 여행자들 눈엔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나지막한 구릉을 넘어 용강리로 들어서는데, 평화교회 안이 시끌벅적하다. 군인 몇 명도 보이고. 먼저 도착한 버마인들은 애기봉(愛妓峯) 전망대로 갔다는데, 누군지 궁금해하는데, 일본 말소리가 들린다. 서울제일교회(목사 정진우)가 일본 도쿄의 한 교회에서 온 평화교류 여행자들을 이끌고 방문한 것.

평화교회는 지난 4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민통선분단체험학교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이 목사 등 관계자들은 '김포지역 전쟁사'를 개발해 휴전선해설사 자격을 가지고 머머리섬(유도)·보구곶리·문수산성·애기봉 등에서 활동 중이다.

일행을 반기는 평화교회 이적 목사 일행과 인사를 나누는데, 일본 평화여행단은 일정을 마치고 교회를 뜬다. 일행도 애기봉으로 출발한다. 민통선 검문소에 도착하니, 벌써 해병대 안내 차량이 나와 있다.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버마인들과 동행한 분단 비무장지대 여행이 시작됐다.

▲ 애기봉(愛妓峯) 오르는 길 가에 핀 양귀비. 연인을 기다리다 산이 됐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에 피어서 그런지 농염한 자태가 애처로워 보인다. ⓒ 최방식


▲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져 서해로 흘러드는 곳. 눈앞 북녘 산하가 아련하다. ⓒ 최방식


민통선에 흐르는 정적과 고요

애기봉으로 들어서는 다시 검문초소. 재향군인회가 입장료를 받는다. 잠시 지체되는 사이, 창밖을 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탄케 ABSDF 의장. 2007년 살라이 톤탄 박사가 지학순정의평화상을 받을 때 동행했으니, 6년 만이다. 그 뒤로 NLD코리아 네툰 나잉 의장·조 샤린 국장도 눈에 띈다.

버마인 10여 명과 한국인 10여 명이 애기봉에 오르는데, 1시간가량 전 평화교회를 떠났던 한일 교회 평화여행단 얼굴이 다시 보인다. 가파른 2백여 미터 등정 길. 양옆에 화려한 꽃들이 피어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양귀비라고 한다. 붉은 정열이 빼어나다 했더니...

전망대에 들어서니 숨이 멎는 듯하다. 북녘 땅이 강 건너 지척.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지는 곳이다. 조금 더 흘러 북에서 내려오는 예성강과 합수, 강화도 북쪽과 강화·김포 사이의 염하를 흘러 서해로 스며드는 바로 그곳. 버마인들의 갖가지 질문이 쏟아진다.

북쪽의 군인들은 어디 있느냐, 판문점은 이디로 가야 하느냐, 바다는 서해는 어느 쪽이냐, 한강은 어디서 어디로 흐르느냐, 북쪽에서 강 건너 피난 오는 이는 없냐, 월남·월북하면 어떻게 되느냐, 강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느냐, 평화의 댐은 어디 있느냐, 애기봉은 무슨 뜻이냐….

잠시 소동이 벌어졌다. 휴전선 해설사의 말에 방문단 한 명이 반발한 것. 분단의 아픔과 이를 권력 안보에 이용한 과거 군부정권을 비판하는 말에 군인의 노고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으며, 이를 존중하는 좋겠다는 선에서 그쳤다.

애기봉을 떠난 일행은 조강리 남방한계선 앞으로 향했다. 유도(留島)를 50여 미터 앞둔 곳, 거대한 숫소 동상 앞에서 해설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버마인들을 위한 통역과 함께 말이다. 유도는 남·북 한계선 사이에 있어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섬, 그래서 생태계의 보고가 된 걸까.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저어새의 낙원이라니.

▲ 두고 온 고향 북녘을 그리며 돌아갈 날만 기다리다 끝내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 묻힌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휴전선해설사. ⓒ 최방식


▲ 민통선 안 평화교회 마당에서 버마와 한국 사람들이 양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조촐한 저녁잔치를 열었다. ⓒ 최방식


애기봉·유도 그리고 '평화의 소'

'평화의 소' 이야기가 이어진다. 1996년 홍수로 북에서 떠내려온 숫소가 상륙한 유도. 김포시와 해병대가 협의해 소를 구출하고 '평화의 소'로 이름 지은 일. 배필감을 골라 2년 뒤 제주산 '통일염원의 소'와 결혼. 그 후손들이 북한과 제주도 그리고 김포시에 퍼진 내력까지.

해설사는 일행이 선 묘지이야기도 덧붙였다. 북에서 살다 고향을 떠나온 할머니 몇 분. 분단으로 못가고 이 이 동네에 살았는데, 우도 앞에서 고향 갈 날을 기다리며 춤을 추곤 했다고. 살아생전 꿈을 못 이뤄 모두 그곳에 묻혔고, 고향 북녘을 향해 무덤을 썼다고 한다.

일행은 다시 평화교회 앞마당에 모여 앉았다. 버마사랑과 평화교회가 외국인 손님을 대접한다며 맛좋은 음식을 준비했다. 배고팠는지, 일행은 음식이 다 차려지기도 전 식탁 위 먹을 것들을 입으로 가져간다. 민통선에서 생산된 신선한 야채·고기·막걸리와 여러 술까지.

식탐에 정신없는데 뭔가 주변을 바삐 맴도는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개다. 여느 개와 달라, 물으니 교회 한쪽 벽을 가리킨다. 묻는 이가 많아 그런지 벽에 개 이름과 궁금해하는 것들을 써놨다. 이름은 '통일이'라는 삽살개. 이웃이 평화교회 활동을 지원, 기부했다고 한다.

허기를 좀 채웠나 싶더니, 저마다 한마디씩 이어진다. 짐미 '88세대 평화열린사회' PR책임자가 말문을 열었다. "

88세대 동지들을 한국에 와 25년만에 만나게 됐습니다. 버마의 동지와 한국인들 모두 참 반갑네요. 양국 사람들이 협력해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탄케 ABSDF 의장은 "그간 한국의 시민사회가 버마 민주화운동을 도운 일,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양국 시민사회간 연대가 버마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또 최근 버마 군부와 무장투쟁단체간 협상에 대해 "진행 중"이라며 "신뢰쌓기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 평화교회를 지키는 삽살개 ‘통일이’. ⓒ 최방식


▲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의 담소 속에 분단의 땅, 민통선 안 어느 마을의 밤이 깊어간다. ⓒ 최방식


버마민주화·한국통일 그 꿈은...

그레이스 쉐 진 타익 국제인구서비스(PSI)버마지부 대표는 "광주행사에 참여해 한국 여성들의 인권·여성·민주화 운동경험을 배웠다"며 "버마에서도 여성들이 사회운동에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PSI는 세계 65 개국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다. 에이즈 등 질병퇴치에 앞장선다. 그레이스는 인기영화 200여 편에 출연한 60대의 유명 국민배우.

행사를 주도한 이적 평화교회 목사는 "멀리까지 오게 했는데 준비가 소홀해 미안하다"며 "버마인들이 한국의 분단상황을 직접 보고 느낀다니 반가워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버마인들이 한국의 경험을 토대로 바른 민주화의 길로 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종순 버마사랑 대표도 "버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버마사랑 작가모임 등의 활동을 하며 10여 년간 버마인과 교류협력을 해왔는데, 활동가들이 석방돼 한국의 분단지역까지 방문하게 된 걸 반갑게 생각한다"며 "버마의 민주화와 한국의 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이날 비무장지대 여행에는 네툰 나잉 NLD한국지부 의장과 2007년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한 살라이 톤탄 박사의 친조카인 유수나 성공회대 NGO대학원생 그리고 조샤린과 최근 결혼한 그의 부인 등 한국 거주 버마인들도 여럿 참여했다.

한편, 탄케와 짐미 그리고 민꼬 나잉 등은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광주에서 열린 '2013세계인권도시포럼' 참석 차 내한했다. 44개국 550여 명의 인권활동가가 참여한 행사다. 민꼬 나잉은 이날 오후 6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2007년 대리수상했던 광주인권상 메달과 상장을 직접 받았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저널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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