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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나이' 울 아부지도 이장 관두실 때는...

등록|2013.05.27 16:00 수정|2013.05.27 16:00

"친절한 리장"마을 사람들이 담벼락에 붙인 표시 ⓒ dong3247


"햇수로 한 3년쯤 됐나…. 에이, 모른다. 나 밥 먹다 받아서…."(뚝~)

그날의 아픔이 기억나셔서 그랬나? 갑자기 전화해서 동네 이장직 하야한 날을 묻는 둘째 딸의 말에 점심 먹는 중이라고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리신다. 우리 아부지. 그랬다!

한 30여년간을 서울 일류 호텔 주방장으로 근무하시다가 퇴직하시고, 그 다음날부터 곧장 이장 완장을 차고 근 십년을 다니셨는데(사실 회사다니시기 전에도 한 10년 가량 이 마을 이장님이셨단다), 갑자기 젊은 신진 세력(60대로 추정)이 나서는 바람에 원치 않게 이장직을 내놓고 하루 아침에 완장을 빼았기셨다. 그 아픔이 몇 년 지났다고 해서 사라졌을 리가 없다.

IMF시대,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정리해고가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딱 6개월 전인가 뭐 그렇게 회사애서 잘리셨다. 그래도 딸년 대학은 내 손으로 보낸다라는 굳은 의지로 그 딸년이 별일없이 졸업만 하면 회사에서 대주는 학자금 받아먹고 졸업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 '고 딸년'은 한학기 휴학을 질러버렸다. 당시 때려 죽이고 싶은 고 딸년에 대한 미움을 울아버지는 회사 그만둠과 동시에 권력(동네 이장)을 잡는 것으로 푸셨다. 그렇게 퇴직 후 한 10년을 이장생활을 즐기셨다.

당시, 이장의 아침은 방송으로 시작되었다. 새벽 6시 30분이면 이미 시골의 아침은 해가 중천에 뜬 낮이라며 이런 식으로 방송을 한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OO3리, 이장입니다. 오늘은…(중략). 요즘 산불예방기간입니다. 논뚜렁 밭뚜렁에 불지르는 일 없도록 하시길 바랍니다.이상입니다."

매일 아침 선천적으로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에 마이크를 입술 바짝 대고 질러대는 이장의 선전용 방송은 가끔 찾아간 자식들의 아침은 물론이고 그 마을에 간혹 있는 젊은 부부들의 민원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장님의 정해진 일상은 10년간 변함이 없었다.

방송 후에 아침을 먹고 면사무소에서 서류 나왔다고 연락이 오면 '빽차'(아부지 자전거다. 어디서 고물 자전거를 주워다가 전체를 흰색 페인트로 칠해 타고 다니시는 말그대로 백색차, 이장님 전용차다)를 타고 쉬이~ 다녀와서는 동네 한바퀴 순회에 나서신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지만 시골 인심이 늘 그렇듯이 이장님 음료수 좀 드셔라, 이것도 좀 맛보시라는 인정에 '아부지' 배는 남산만큼 불러진 상태로 백차가 거의 짊어지기 힘든 상태에 이르러서야 동네 투어를 마치신다(울아버지, 평생 일하신 요리사를 천직으로 삼으실 만큼 정말 먹는 걸 좋아하신다. 일류 호텔 주방장 출신이라고 하면 뭔가 미각이 발달하신 분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울아버지 미각 상관없이 엄청난 대식가이시다. 마치 모 패스트푸드 문앞을 지키는 그 할아버지처럼 배가 정말 장난이 아니시다).

그것뿐이 아니셨다. 동네에 좋은 일은 물론이고 궂은 일이 있을 때에도 이장은 그래야 한다며 내내 그 집에 가서 일이 마칠 때까지 지키신다. 본인이 칠십 가까운 노인네라 자식들이 말려도 부득부득 일을 다 끝내야만 돌아오시곤 했다.

그런데! 평온하게 마을을 장기집권하며 불룩불룩 나오는 배를 쓰다듬으시던 아부지 귀에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OO가 이장을 하고 싶다는…. 하지만, 울 아부지는 '싸나이'였다. '지가 뭐 하고 싶다고 해지나…. 내가 있는데…' 오, 그런데 자만심이 화를 불렀다. 주민들 술사주고 밥사주던 그 OO가 이장에 당선된것이다.

아~ 이승만 대통령만 하야하는 줄 알았다. 근데, 울아부지 방심하시던 사이, 그 믿었던 동네 사람들 단숨에 등을 돌렸다.

'김 이장,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좀 쉬라는 거지~~~'

울아부지 그날 회사에서 잘리던 날보다도 더 슬퍼하셨다. 우는 모습은 못 봤지만 아마 숨어서 우셨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한 삼일 밥도 적게 드셨다(대식가에게 이 3일은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울아버지는 지금 완장없이도 잘 지내신다. 구이장 모임에 나가서 구이장들끼리 한 잔도 하고, 또 의무감은 없지만 하루에 한 번씩 동네 투어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영어실력과 화통을 삶아드신 그 목소리로 마을의 외국인들의 애로사항은 구 이장이 다 처리한다. 그래도 대놓고 묻는 건 싫은신가 본다.

"친절한 리장, 아부지 언제 하야했지?"라는 질문에 버럭 화내시는 아버지. 기분 풀어드리려면 늘 열려 있다는 아부지 주머니에 용돈 좀 두둑히 넣어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나의 아버지"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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