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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가면 한국인 멀리해야 성공한다? 글쎄요...

[말라가 교환학생 적응분투기 ⑦] 한인 친구, 정보도 얻고 스트레스도 풉니다

등록|2013.05.29 17:00 수정|2013.05.29 17:00
"펑! 펑!"

지난 11일 토요일, 아침 11시 반. 집 앞 거리에서 정체 모를 터지는 소리가 난다. 화들짝 놀라서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나갔다. 전날 밤을 꼬박 새웠고, 잠이 든 지 3시간 남짓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별의별 생각이 났다.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덜컹대며 흔들리는 게 느껴지던, 시내 중심(Centro) 한복판의 다리가 무너진 건가? 아니면 지하철 공사를 하다가 가스관이 터졌나?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며 내 불안감을 더해갔다. 그러던 찰나.

아침을 여는 맑은 대포소리예상치 못한 퍼레이드. 이곳이 말라가입니다. ⓒ 홍희주 제공

"펑!"

"둥. 둥. 둥."
"펑!"

폭발음에 섞여서, 리듬을 타고 들려오는 북소리. 아휴. 불안이 안도로 바뀌었다. 또 피에스타(fiesta, 축제)인가 보다. 정말 대단한 양반들이다.

무슨 축제인지도 모르겠지만, 또 있나 보다 싶다. 페이스북을 켰다. 한국인 교환학생 분이 사진을 올렸더라. 대포가 사람들에 이끌려서 말라가 시장 앞, 다시 말해 우리 집 문 앞을 행진하고 있다. 그 정체 모를 소리는 바로 대포 쏘는 소리였던 것이다.

뭐, 한편으론 감사하다. 오늘은 말라가에서의 생활이 한 달 남짓 남은 형이 파티를 열었다. 단, 조건은 요리를 하나 해오는 것. 세 시가 넘어서 시장 문을 닫기 전에 빨리 가서 재료를 찾아봐야 하니까. 휴대폰도 못 깨우는 날 깨워줘서 감사하다. 말라게뇨(Malagueño, '말라가 사람') 당신들, 최고다.

한국인을 멀리하라? 나에게 말라가의 문을 열어준 건 한인사회

한국을 떠난 후에 아빠가 말씀하셨다.

"뉴스나 이런 거 그만 보고, 스페인어에 몰두하는 건 어떻겠니…."

오랜 외국 생활을 한 후 기자를 하는 선배도 말씀하셨다.

"외국 생활의 성공은 많이 노는 것에 있는 것 같아. (한인) 유학생 그룹에 매몰되기 보다는…."

틀린 말은 아니다. 언어를 공부하기에 최적의 조건은 현지인과 많은 연습을 해보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시중에 나와 있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교환학생, 언어연수 가이드 서적에 꼭 들어있는 말도 '한국인을 멀리하고 외국인과 친해져라'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하루 지낼수록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먼저 와 있던 한국인 학생사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아니, 원래 여기 와서 얻고자 했던 것, 언어, 사회체험, 문화체험 그리고 외국인 친구까지도 그들이 아니었다면 얻기 어려웠을 테다.

페이스북 '말라가 한인회' 페이지5월 27일 현재 110명이 가입해 있다 ⓒ 페이스북 캡쳐


말라가에 처음 발을 들였던 2월, 이곳에서 처음으로 외국인과 교류다운 교류를 한 건 말라가대학 내 인천대 사무소에서 주관한 '언어교환' 행사였다. 그 정보를 처음 얻은 건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는 페이스북의 '말라가 한인회' 페이지였다.

이 페이지는 이곳의 한국 학생과 한인들과의 교류창구로 활용되는 건 물론,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을 만나는 정보창구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이 연재 기사의 첫 소재였던 '설날 한국문화 알리기' 행사 또한 이곳에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관련기사: 피카소 고향 들썩인 '강남스타일', 온몸이 짜릿했다).

페이지를 만든 황성호(건국대) 학생은 "처음 이곳에 올 때, 한국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놀랐어요. 그런데 정보나 구심점이 되는 모임도 없었죠"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함께 말라가에 온 최예솔 학생과 주도적으로 '말라가 한인회' 페이지를 꾸려나갔다. 3월에 어학원을 다니며 한국학생을 모아 규모를 늘리고, 체육대회나 근교여행, 언어교환 모임 등의 행사를 열었다. 말라가를 떠나면서 남겨두고 간 '말라가 TIP' 파일은 이곳에 6개월 먼저 있던 친구들도 추천하는 알찬 정보통이 돼주고 있다.

말라가 재래시장의 신선한 재료들

말라가 재래시장 Mercado de Atrazanas집 앞 바로 건너편, 좋은 입지. ⓒ 김정현


졸린 눈을 비비고 대충 씻고 집을 나왔다. 낮 1시. 느릿느릿 걷는 스페인 사람 사이를 곡예 하듯 지나가며 빠르게 길을 건넜다. 코를 찌르는 해산물 냄새. 봉지를 한 아름 들고 빠져나가는 사람들. 문은 열었지만 장을 파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곳 재래시장은 주말마다 이용하는 곳이다. 농산물과 식료품은 일부 할인매장도 값도 싸다. 하지만 신선한 생선과 고기는 이곳만 한 곳이 없다. 무엇보다 일요일에는 못 산다. 전부 다 문을 닫기 때문이다.

이곳 해안에서만 잡히는 생선들, 주인장들의 알아들을 수 없지만 대충 '뭐 얼마! 뭐가 싸요!' 하는 호객의 외침. 정신을 잃고 지갑을 열 것만 같다. 호객해야 할 만큼 가게도 많고 재료도 다양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에서만 나는 재료를 찾아다니러 말라가를 넘어 마드리드까지 다닐 때랑은 다른 느낌이다.

▲ 타파스 가게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시장의 백미는 군것질이다 ⓒ 김정현


▲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산처럼 쌓여있다 ⓒ 김정현


한국 친구들끼리 대화하다가 "중마(중국인이 운영하는 마트. 여러 개가 있는데 Lotus라는 상호의 가게가 '진짜' 한국제품이 많아서 대개 여기를 통칭했다)에 비빔면 나왔대!" 혹은 "떡볶이 떡이 중마에 있더라" 등등 정보를 얻으면 귀가 쫑긋 선다. 이러고도 없는 재료는 마드리드의 온라인 한인 가게에서 공동구매한다. 종로의 광장시장에서 듣던 반찬가게 아주머니의 호객 소리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 붉은 불 켜진 정육점 앞이 한산하다. 주인도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 김정현


▲ 생햄 하몽(Jamon)과 초리소(Chorrizo) ⓒ 김정현


벽을 넘어 길을 걸어 다른 곳으로 가면 과일과 채소의 밭이 열린다. 광택이 나는 체리는 아직 제철이 아니라 비싸다. 조금만 익히면 한국 배와 다르게 단맛이 괜찮은 서양 배와 사과, 표고버섯(시타키 Shitaki) 그리고 이름 모를 채소들. 그 반대편 복도에는 고기가 있다. 만화에서만 보던 돼지 뒷다리가 걸려있다. 말려서 만드는 스페인 생 햄, 하몽(Jamon)이다. 그 밑에는 닭 가슴살부터 소, 돼지, 칠면조까지 부위별로 다양하게 진열된 고기들이 있다.

사람이 다섯, 여섯은 올 테니 적당히 반찬거리를 고민했다. 호박부침개가 생각났다. '좋아.' 달걀은 집에 있으니 호박을 하나 골라야겠다. 호박이 뭔지 모르니 호박을 가리키며 말한다.

"올라. 꽌또 에스? (Hola. ¿Cuanto es? 안녕. (이거) 얼마야?)"

물건을 담아주는 주인의 손을 유심히 본다. 오래된 상하기 직접의 양파를 집어넣으려던 걸 저번에 봤었다. 아마 정신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노. 노. 오뜨라(No, No. Otra. (다른 거)" 해서 바꿔 담았다. 호박 두 개를 사고, 근처 할인 마트에 들러서 달걀을 한 판 사고 집에 돌아왔다.

속을 터놓는 대화만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죠

호박을 썰고 간을 하려고 소금을 쳤다. 전화가 울렸다. 아는 형이 전화했다. "오늘 오냐?"는 전화다. 처음 볼 때는 서로 말도 못 붙이는 사이였다. 아, 물론 내 탓도 있을 거 같다. 난 덩치가 좀 있고, 소위 말하는 '액면가'가 30대 아저씨 급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지금은 만나면 "집에서 밥 먹고 가라"고 하면 진짜로 밥 먹고 가는 사이다.

▲ 호박을 썰어서 소금을 뿌리니 여기가 한국과 같더라 ⓒ 김정현


▲ 친구들과 해먹는 라볶이로 그리움도 달래고 ⓒ 임주연


한국인을 피하라지만, 오히려 친해지면 한국에서보다 더 쉽고 빠르고 깊게 친해지는 것 같다. 함께 유학을 온 동질감도 있겠지만, 대화의 힘이 큰 것 같다. 한 형은 "스페인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보다 한국 친구에게 하는 게 낫다. 공감하는 정도가 다르다"고 내게 말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대개, 스페인과 한국이라는 문화적 차이란, 거의 지구 반대편에 달하는 먼 지정학적 거리만큼이나 멀 수밖에 없다.

석양을 바라보며우리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만큼 친해질 수 있었을까? ⓒ 임주연

그 형이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해줬다. 초반에 정보가 없어서 고생을 좀 많이 했다.

집주인에게 사기를 당해 집을 10번 정도 옮겼다. 소매치기도 당하고 짐도 통째로 잃어버리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멘탈붕괴'의 고행 끝에 드디어 정착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이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한국인 친구 C에게 했다. 표정을 굳히며 "진짜 고생 많았네. 힘들었겠다"고 말해줬다. 이 이야기를 스페인 친구 B에게 했다. "뭐, 잘 해결됐네. 그럼 된 거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개인적인 성격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데 무게를 좀 더 싣는다. 하지만 흥미롭게 들렸다.

다 만든 부침개를 담아서 형네 집에 갔다. 한국에서 온 형들과 친구들이 먼저 와 있다. 한국 음식을 데우며 한국말로 한국 사람과 대화를 하니, 한편으로는 여기가 유럽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

한때는 내가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면 다음날에 오히려 일이 잘 안 풀리고, 책도 잘 안 보였다. 어느새 그 고민을 한국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편하게 생각하는 게 답인데, 한국 사람들과의 시간은 적어도 나에겐 그런 마음가짐에 도움이 되어 준다.
덧붙이는 글 독자 여러분들께 :
개인적인 사정으로 1달간 알림 없이 연재를 쉰 것에 대해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컴퓨터가 고장 난데다 여러 일이 겹쳐서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시 이런 말씀을 드려 한없이 죄송스럽습니다. 내용과 구성을 보강해 연재를 다시 재개하여 충실히 마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기대를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또바기미디어(ddobagimedia.tistory.com)'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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