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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길을 따라 하늘의 길로 가다

강화 심도학사에서 얻은 가르침

등록|2013.06.10 14:50 수정|2013.07.25 11:44

▲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 이승숙


2010년 가을에 강화나들길에서는 1박2일에 걸쳐 인문학 걷기를 했다. 강화나들길 2코스인 '호국돈대길'을 걷고 전등사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그날 밤 전등사의 대조루 강당에서는 불교와 기독교를 아우르는 강연이 있었는데 바로 길희성 선생님의 '보살 예수'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일 년 뒤, 길희성 선생님이 고려산 자락에 '심도학사'를 열었다. '심도(尋道)'라는 단어는 심오한 도를 찾는다는 말이다. 이런 사전적인 의미 이외에도 심도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강화의 옛 이름이 심도(沁都)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심도학사'라는 이름은 길희성 선생님이 뜻하시는 바에 꼭 맞는 맞춤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심도(尋道)로 드는 길

나들길 5코스는 '고비고개 넘는 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심도학사는 고비고개를 넘어 내가면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5코스를 걸을 때면 심도학사를 바라보곤 했다. 그 곳이 분명 좋은 곳 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성큼 발을 들이밀지는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경외심 때문이었을 것 같다. 뭔가 모르게 어렵고 대단한 것들, 이를 테면 철학이나 명상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을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멀리서 쳐다보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심도학사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심도학사는 바로 21세기의 강화학의 산실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 공부와 명상의 집, 심도학사 ⓒ 이승숙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하곡 정재두 선생은 당쟁으로 얼룩져 있는 중앙 정계를 떠나 벽지인 이곳 강화로 솔거를 했다. 하곡 선생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강화로 왔으니 실로 대단한 걸음이었고 또 지행합일의 실천이었다.

지식인의 도리는 실천하는 양심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하곡 선생은 당시의 행동하는 양심이었고 또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심도학사를 연 길희성 선생님은 하곡 선생에 버금하는 실천가이시다. 평생을 학문 연구에 보내시며 명성을 쌓으셨으니 편안하고 안락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을 텐데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하셨다. 무엇이 선생님으로 하여금 이 어려운 길에 들어서도록 했을까.

지식인의 도리, 실천에 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연 이틀이 통째로 비어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종일 집에 있으면서 내 집이 주는 여유로움을 즐기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마음이 맞는 벗들과 함께 산이나 들로 나가기도 한다. 모두가 비움이기도 하면서 또 채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5월 24일,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심도학사에 갔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내가면 오상리에 있는 심도학사까지는 승용차로 근 20분이 걸리는 거리다. 해안순환도로를 달리면서 차창 너머 보이는 외포리와 석모도의 불빛을 바라봤다. 그 불빛은 휘황하게 번쩍였다. 그러나 내가 지금 가는 곳, 참나무 잎새가 내뿜는 향이 그윽한 그 곳은 어둠 속에 한 줄기 밝은 빛을 비추고 있으니 소비와 향락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에 명상과 공부의 작은 불을 밝히고 있다. 

내가저수지를 돌아 산길로 접어들었다. 초저녁인데도 마치 한밤중인 듯 사위는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차 문을 열자 개구리 울음소리가 짜하게 들리고 참나무 냄새가 훅 느껴진다.

▲ 소리의 길을 따라 심도(尋道)로 들다 ⓒ 이승숙


심도학사는 매주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낮까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심도 깊은 공부를 한다. 내가 갔던 그 주에는 해월의 사상에 대해서 배우고 익혔다. 해월이 누구던가, 바로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 선생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동학과 수운 최제우, 그리고 해월 최시형의 이름은 들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동학이 담고 있는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동학은 동학이라는 단어로만 알 뿐이었고 수운도 해월도 역사 속의 이름으로만 겨우 알 뿐이었다.

천지 만물을 공경(恭敬)하라

우리는 해월의 사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동아시아의 자연관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서구의 자연관이 자연과 나를 별개로 보고 정복하고 복속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아시아에서는 자연과 나를 하나로 본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선험적으로 하늘과 땅의 이치며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 등이 들어 있다. 마치 공기와 물처럼 아니면 어머니의 손길처럼 자연은 우리와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고 땅을 아끼며 함부로 하지 않는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산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혀 지혜의 길로 들어서기 위함이었다.  놋그릇을 자그마한 공이로 살짝 치니 '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가 깊이도 넓이도 잴 수 없는 어떤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소리의 파장을 따라 끝없이 갔다. 그 소리는 한량없는 곳으로 퍼져 나가 광대무변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해월은 일자무식이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관군을 피해 도망 다니며 살았다. 길 위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신산했을까. 그럼에도 그는 깊은 통찰을 통해 많은 일화들을 남겼는데 그가 남긴 말씀과 행적들은 모두 우리 민족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선(善)함이 바탕이 된 것이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으면 행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해월은 사람을 하늘로 섬겼을 뿐만 아니라 만물 모두를 공경하고 위했다. 그의 사상은 '삼경(三敬)'에 다 담겨 있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삼경이란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며 천지 만물을 공경하는 것이다.

▲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읽기도 한다. ⓒ 이승숙


우리 민족은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도 고마워 할 줄 아는 게 우리다. 풀 한 포기에도 천지의 이치가 깃들어 있음을 알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런 밑바탕이 있는 우리 민족이었으니 해월의 사상, 곧 사람이 하늘이고 세상 모두를 공경하라는 말은 특별할 것도 없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은 우리 마음 밑자락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해월은 그 생각들을 끄집어내어 일러주었고 또 실제 삶을 통해 깨우쳐 주었다.

하늘과 사람을 공경하는 데서 나아가 천지 만물까지 다 섬기라는 말씀은 지금으로 봐도 참 파격적이다. 19세기 후반인 당시에는 반상(班常)과 남녀의 차별이 있었던 시대였는데 동학은 세상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다고 했으니 시대를 한참 앞서나간 생각이었다. 그래서 쫒기고 핍박을 받았던 것일 게다. 

동학에 담긴 깊은 뜻을 배우고 익히자니 자꾸 옛 어른들이 생각이 났다. 흙과 함께 사셨던 웃어른들의 삶이 바로 해월이 주창했던 그 삶이었던 것이다. 조금 손해 보는 듯이 살아라, 내 집에 온 사람을 귀히 여겨라, 넘치는 것보다 약간 모자란 게 더 낫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함부로 하지 마라 등등 그 분들이 행하셨던 일들이며 말씀이 떠올랐다.  

주어진 것에 감사해하며 인간의 도리를 다 하고 사셨던 우리의 웃어른들, 비록 이름도 빛도 없이 사셨지만 그 어른들의 삶이 바로 하늘의 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을 따라 걷는 길

하늘의 길을 느끼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그것은 금요일 오후에 있었던 일들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늘 웃는 낯빛으로 대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날 나는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애들을 꾸짖었다.

그날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갔다 온 아이들은 학원에 왔을 때 좀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그 중 유독 두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같아서 꾸중을 하였더니 한 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애들 공부를 독려하는 좋은 의미의 잔소리고 꾸중이라고 하더라도 큰 소리로 화를 낸 것은 잘못이었다. 그래서 내내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해월은 사람을 하늘로 모시면서 어린 아이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나는 선생이라는 위치에서 아이를 내려다보며 꾸짖고 함부로 했다. 사람을 하늘로 모시는 일은 말로는 쉽겠지만 실제로 행하기에는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듯했다.

▲ 심도학사의 길희성 선생님 ⓒ 이승숙


스승을 찾아 먼 곳에서 사람들이 왔다. 길희성 선생님은 그들과 함께 하늘의 길을 걸었다. 한 발 한 발 앞장을 서서 길을 안내하셨다. 우리는 선생님이 놓아주는 디딤돌을 밟으면서 하늘의 길로 나아갔다.

수업은 늘 마치는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끝이 났다. 밤은 깊어갔지만 배움의 불빛은 꺼질 줄을 몰랐다. 스승이 따로 없고 제자 또한 없었다. 먼저 간 이가 내미는 손을 잡고 뒤를 따라가는 길, 바로 심도학사의 공부가 그러했다.

오늘은 종일 비가 왔다. 며칠 전에 심은 고구마에게는 더할 수 없이 고마운 비가 내린 것이다. 고구마 모종들은 이 비를 맞으면서 사름을 할 것이다. 심도학사에 내딛은 내 발자국은 이 비에 남아 있을까. 마음의 밭을 걸은 길이니 내 발자국은 온전하게 다 남아 있을 것 같다. 가끔씩 물을 주고 또 북을 돋워주면서 내 발자국이 고구마 모종처럼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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