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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인도야 한국이야?' 영광의 또 다른 얼굴

[여행] 전남 영광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를 찾아서

등록|2013.05.28 19:28 수정|2013.05.29 10:10
"오늘 특별한 약속 없으면 전남 영광에나 다녀오죠.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 들렀다가 해변을 따라 조성된 백수해안도로 중간지점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에서 조기 정식도 먹어보고요. 돌아올 때 해수온천탕에서 목욕하면 피로가 싹 가시거든요···."   
"(한참 생각하다가) 그래, 별일 없으니 다녀오자고!"
 
지난 24일(금) 오전이었다. 전남 영광에 가자는 아내의 제의는 놀라웠다. 며칠 전 여학교 동창들과 1박 2일로 다녀온 코스를 또 돌아보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어울리면서도 "문득문득 자기(남편) 얼굴이 떠올라 언제 함께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대목은 가슴이 찡할 정도로 고마웠다.

구수한 된장국으로 아침을 가볍게 먹고 집을 나섰다. 오전 10시 10분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IC에 진입, 목포 방향으로 50분쯤 달리니 영광 IC 안내판이 보인다. 몇 차례 다녀간 곳이고 이런저런 추억이 담겨 있어 그런지 반갑게 느껴진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2차선 국도를 20분쯤 달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기념성역 주차장에 도착했다. 도착 시각은 오전 11시 20분.

한국 불교의 또 다른 모습,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 백수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기념성역 ⓒ 조종안


주차장 안내판에서 고승 마라난타의 불갑사(佛甲寺) 창건과 영광 법성포의 지명 유래를 알 수 있었다. 험난한 여정을 마다치 않고 백제에 불법을 전한 마라난타의 숭고한 행적과 의미를 길이 남기기 위해 기념성역을 조성하였고, 건축물은 마라난타 출신지가 대승불교 문화의 발원지이므로 간다라 조각과 건축양식을 투영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백제시대 법성포의 지명은 '아무포'(阿無浦). 이는 마라난타 존자가 가슴에 품고 온 '아미타불' 의미를 함축한 명칭으로 정토 신앙 전래에서 유래한단다. 그 후 '성인이 불법을 전래한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으로 법성포(法聖浦)라 부르게 됐다는 것. 마라난타는 도착 후 가까운 모악산(불갑산)에 최초로 불교 사원을 창건하였고, '불법의 시원이요, 으뜸이 되는 절'이라는 뜻으로 '불갑사'라 부르게 됐다 한다.

불교는 기원전 500년경 석가모니가 창시한 종교로, 발생지가 북인도 지역(네팔 포함)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한국은 삼국시대 중국에서 고구려를 통해 들어와 백제와 신라로 전파된 것으로 배웠다. 그래서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안내판을 보고도 전설이겠거니 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인도 간다라지방 출신 고승 마라난타가 백제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 중국 절강성에서 배를 타고 영광 법성포에 도착, 불법(佛法)을 전파했다니 호기심이 동했다.

▲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일주문 역할을 하는 상징문 ⓒ 조종안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기념성역 안으로 들어갔다. 국내 유명사찰들은 대부분 두 기둥 위에 기와를 얹은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한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가기 전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그런데 일주문 대신 세워놓은 석조물(상징문)이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삼존불상을 형상화한 석조물로 비치기도.

▲ 전남 영광의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기념성역 전경 ⓒ 조종안


상징문(정문)을 지나 광장에 들어서니 높이 솟은 사자탑을 중심으로 해변공원처럼 꾸며진 만다라광장이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불갑사 대웅전을 본떠서 지었다는 부용루(芙蓉樓)와 약식 석굴사원 형식을 띤 '사면대불상'도 옅은 안갯속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독특한 형태의 사면대불상은 한국 불교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탄을 자아냈다.

▲ 간다라 건축요소를 담아 지었다는 유물관 ⓒ 조종안


캄보디아 앙코르사원을 지키는 수호신 '싱하(Singha)'를 닮은 사자탑에서 처음 대하는 양식의 건축물까지 볼수록 신기한 모습들. 간다라유물관은 겉모습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힌두교 영향을 받은 동남아 지역 불교국가에서 봤던 유적들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유물관에 들어서니 장삼을 걸친 마라난타 존자상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으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인도 고승이어서 그런지 이국적인 냄새가 짙게 풍겼으나 부와 덕을 상징하는 귀가 부처님 귀처럼 귓불이 크고 두터워 더욱 후덕해 보였다.

고은희 문화관광해설사는 "유물관 건물은 간다라 건축양식으로 전시실의 불전도 부조 및 불상 등은 인도 간다라지방에서 출토된 2~5세기경 유물이다"며 "방문객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영광군이 구매하거나 기증을 받아 전시해놓았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곳(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의 역사는 <삼국유사> 기록을 통해 알려지게 됐고, 1998년 동국대학교 학술팀에 의뢰해 고증을 거쳤다"며 부용루와 사면대불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 사면대불상에서 내려다본 부용루, 용마루 중앙에 보주가 보인다. ⓒ 조종안


▲ 법성포 앞바다와 불교성역을 굽어보고 있는 사면대불상 ⓒ 조종안


"부용루는 참배 및 조망용 누각으로 1층 석벽에는 부처님 일대기가 간다라 양식으로 23면에 걸쳐 조각되어 있고, 용마루 중앙에는 자기로 만든 용마루 보주가 있는데 이것은 남방불교에서 부처 열반 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는 스투파(사리탑)라고 합니다. 불갑사 대웅전용마루에도 스투파가 있는데 건축 양식이 인도에서 전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중한 모습의 사면대불상은 화강암으로 제작됐으며 높이는 23.7m입니다. 약식 석굴사원의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는데요. 주존불 아미타불은 동쪽을, 관음보살상은 북쪽을, 대세지보살상은 남쪽을, 마라난타 존자가 아미타불상을 가슴에 안고 서 있는 모습은 서쪽을 향해있습니다. 지금 공사가 진행 중인데요. 마라난타 기념관도 들어설 예정이니 인도 간다라 문화가 궁금하면 영광으로 오세요.(웃음)"

스투파는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후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된 일종의 사리탑이다. 불갑사 대웅전의 용마루 장식물에는 인도에서 쓰이는 보주 형식인 스투파 장식이 엿보인다. 지붕 용마루 중앙에 이와 같은 보주형을 얹은 장식은 네팔, 동남 불교권, 남중국 등에 나타나며 우리나라에서는 불갑사 대웅전이 유일하다고 한다.

▲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탑원. ⓒ 조종안


유물관 옆에 들어선 탑원(塔園)도 발길을 멈추게 했다. 다양한 불교 유물을 재현해놓은 30여 개 감실의 겉모습은 물론 안치된 불상과 부조물들이 너무도 이국적이었기 때문. 마라난타 존자 출신지가 인도 간다라 지역이고, 그곳의 유구(遺構)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된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떠서 조성한 탑원이니 이국적일 수밖에.

▲ 말길을 한동안 멈추게 했던 남녀상. ⓒ 조종안


다른 석조물에 비해 크기가 작은 '남녀상'은 우리 정서와 비슷해서 그런지 발길을 한동안 멈추게 했다. 남녀상은 두 남녀가 정담을 나누는 형상을 조각한 것으로 무늬가 아름답고 섬세해서 유명 조각가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자 왼손의 거울은 결혼을 의미한다고. 인도 미술에서 이러한 자세는 미혼 남녀에게 길상(吉祥)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 태국의 불교문화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석조물(설법도) ⓒ 조종안


연좌 위에 앉은 설법 자세의 불좌상을 중심으로 보살들이 자유로운 자세로 경탄하거나, 꽃을 뿌리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 등 생동감 넘치는 설법도는 태국 어느 사원의 조각을 옮겨놓은 듯했다. 특히 하단 부분은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악마와 신(神)들이 큰 뱀(바슈키)의 머리와 꼬리를 붙잡고 젖의 바다를 휘저으며 불로장생의 명약(암리타)이 생겨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는 유해교반(乳海攪拌)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의자왕, 낙화암, 삼천궁녀에 기껏 계백 장군으로 상징되는 백제. 그러나 일찍이 불교문화가 발달했던 나라였다. 찬란한 문화는 일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백제는 성왕 30년(서기 552) 불상과 경문을 일본에 보내 불교 전파의 길을 열었다. 이어 많은 고승이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당시 백제는 문화대국이었고, 고대 일본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주면서 일본 문화의 스승으로 많은 자취를 남기게 된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관람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굴비 정식을 먹으려다 마음을 바꿔 백수해안도로로 방향을 잡았다. 해마다 음력 4월 하순이면 전국에서 수천 척의 고깃배가 몰려들었던 칠산어장, 어부들의 흥겨운 뱃노래가 콧노래로 읊어졌다. 끝없이 펼쳐지는 은빛 바다 위로는 유물관 입구에서 봤던 마라난타 존자의 후덕한 미소가 그려졌다.

▲ 간다라 유물관 입구의 마라난타 존자상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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