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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안전' 구멍 뚫렸는데... '전력 대란' 걱정?

'불량 부품' 시험검증서 조작 드러나... 정부는 '조기 가동' 급급

등록|2013.05.28 20:21 수정|2013.05.28 20:21

▲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가 방사능 물질 유출 사고를 가정해 실시한 방사능방재훈련 모습. ⓒ 한수원


"불철주야 작업해 4개월 안에 모든 것을 끝내겠다."

원전 안전 불감증이 또다시 '전력 대란'을 자초했지만 정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신뢰가 생명인 시험검증기관이 '불량 부품'을 안전하다고 시험검증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전력 대란'을 앞세워 원전 조기 가동에만 급급한 것이다. 

원안위는 5~6개월, 산업부-한수원 4개월... 재가동에 급급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28일 "원자로 3기가 추가 정지돼 올 여름 유례없는 전력 대란이 우려된다"며 전력수급 비상체계를 가동했다. 이날 오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서 신고리 1,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 등에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불량 케이블'이 사용됐다며 원자로 가동을 정지하고 부품을 교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가동이 추가 정지돼 전국 원전 23기 가운데 가동 중단되는 원전은 10기로 늘어났다. 현재 신고리 1호기는 계획예방정비로 가동이 정지된 상태고 신월성 2호기도 운영허가 심사 중이다.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 역시 오는 31일과 다음 달 12일부터 예방정비를 앞두고 있었다.

계획예방정비 기간은 일정 기간 원자로 가동을 멈추고 핵심 부품을 점검·교체하는 시기로, 보통 18개월 가동하면 30일 정도 정지한다. 애초 일정대로라면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7, 8월경에 충분히 가동할 수 있었던 원자로 3기가 멈추게 되는 것이다. 

당장 원전 재가동 시점을 놓고 '안전'을 책임진 원안위와 '전력 수급'을 책임진 산업부의 전망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애초 이은철 원안위 위원장은 이날 오전 긴급 브리핑에서 "(교체 부품) 성능 만족 여부 확인까지 두 달 정도 걸리고 원전에 설치된 것에 대한 안전성 확인도 필요해 적어도 5~6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진현 산업부 제2차관은 이날 오후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기기 교체 소요 기간은 규제기관의 안전 확인 기간 등에 따라 다소 유동적이지만 4개월 내외가 소요될 전망"했다.

원전 운영을 책임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김균철 사장은 "각 원전에 사람을 최대한 투입해서 공사 기한을 단축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우리들 보기에는 약 4개월 안에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불철주야 작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산업부와 한수원이 이처럼 재가동을 서두르는 건 올 여름 이처럼 '전력 대란' 때문이다. 한진현 차관은 "부품 교체기간 동안 3개 원전이 정지돼 당장 6월부터 공급 차질로 수급 비상 상황이 발령될 가능성이 높고 8월에는 매우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애초 8000만kW로 예상했던 공급 능력이 7700만kW 내외로 줄어드는 반면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는 7900만kW로 예상돼 200만kW 전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산업부는 당장 이날부터 9월 말까지를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전력수급 비상대책본부'를 설치해 전력수급 비상체계를 가동했다.

'불량 케이블'은 빙산의 일각? 원전 추가 정지 배제 못해

▲ 지난해 6월 21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모의 전력관제센터에서 에서 정전 대비 위기대응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 김시연


또 산업부는 "장기 정비중인 원전은 차질 없이 재가동하고 건설 중인 발전기의 준공 일정도 최대한 앞당길 계획"이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장 불량 부품 교체와 안전 점검 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고 부품 전수 조사 결과에 따라 다른 원전이 추가 정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밀양 송전탑 공사로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는 신고리 3기와 내년 완공 예정인 신고리 4호기에서도 일부 서류 조작이 확인돼 불량 케이블 사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은철 위원장 역시 "(앞으로 같은 사례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 부분에 대해 추가로 점검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다른 원전도 가동이 정지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다만  "신고리 3호기는 시험 조건을 위조했지만 시험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나왔다"면서 "만약에 합격한다면 차질이 없겠지만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균섭 한수원 사장도 "이번에 문제가 된 검증기관에서 검증한 부품에 대해서는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에 따라 원안위의 지침과 관련규정, 절차를 준수하여 신속하게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시험보고서 위조 사건은 지난 4월 말 '원자력안전신문고' 제보에서 출발했다. 국내 시험기관이 제어 케이블 시험의 일부를 해외 시험기관에 의뢰했는데 결과가 요구 수준을 통과하지 못하자 아예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이다.

특히 제어 케이블은 원전사고 발생시 안전 설비에 동작 신호를 전달하는 부품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핵연료 냉각이나 방사성 물질 외부 유출을 막지 못해 자칫 대형 사고로 어어질 수 있다. 결국 제보가 아니었다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채 방치됐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김균섭 사장은 "지난해는 일반산업용 제품을 원전에서 사용기 위한 인증서를 위조한 사건이고 이번 것은 굉장히 고도의 기술적인 품목에 대해서 이른바 'EQ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품목"이라면서 "전문기관에서 검토하도록 돼 있어 (자체 검사가 아닌) 외부 제보에 의해서 이 문제가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라면서 '허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시민단체 "제보 없었다면... 시험기관-부품 전수 조사해야"

▲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안전등급 제어케이블이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에 설치되어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설치된 제어케이블에 대한 안전성 분석 결과, 원전사고 발생시에 제어케이블의 성능이 확보될 수 없다고 평가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정지냉각계통 흡입라인 격리밸브 제어용 케이블(신월성 2호기)과 안전등급 케이블 전선관 및 단자박스(신고리 1호기). ⓒ 원안위


최재천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잦은 원전 정지사고로 국민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전력수급 문제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면서 "품질 문서 위조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해 이의 예방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던 한수원이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안위의 안전 관리 시스템에도 근본적인 허점이 존재한다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핵없는사회를위한시민행동도 이날 성명에서 "이번 사건은 원전 안전에 대한 신뢰 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라면서 원안위에 모든 시험검증기관과 부품에 대한 전수조사를 촉구했다.

시민행동은 "작년에 벌어진 위조부품 납품 사건은 납품업체가 품질검증서를 위조해서 납품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시험성적서를 발행하는 시험검증기관이 스스로 관련 자료를 위조한 것이 들통난 것"이라면서 "조작이 드러난 것도 해외에 맡겼기 때문이지만 국내에서 시행한 시험에 대해서는 조작 여부를 확인할 수조차 없다"고 꼬집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장은 "시험검증기관의 시험검증서 조작은 원전 안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라면서 "문제가 되는 시험검증기관이 몇 곳인지 부품이 얼마나 되는지 원안위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모든 부품에 대한 테스트를 다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이날도 책임기관과 책임자를 상대로 형사고발, 손해배상 등 민형사상 조치를 즉각 시행하고 내외부 감사를 통해 책임자를 문책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고리 1호기 정전 사고 은폐 사건과 '불량 부품'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정부는 부품 전수 조사와 책임자 문책 등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지난 여름 '전력 대란'에 직면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국 원전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재발해 원전 가동이 중단되고 전력대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행동은 "원전 안전에 치명적인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전력 수급을 핑계로 원전 안전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그들만의 폐쇄된 구조 내에서 원전 가동과 안전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이라면서 "국내 전력수급을 당장 싼값에 원전 위주의 공급 정책으로 맞추어 온 기존의 전력정책의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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