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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 너 참 쉽지 않구나

[신 선생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딩⑦] 마낭에서 캉사르까지

등록|2013.05.29 09:39 수정|2013.06.21 12:00
마낭에서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여유가 저를 방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젯밤, 식당에서 분위기에 취해 맥주를 몇 잔 마셨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자정부터 설사와 고열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몇 차례 화장실을 다녀오고 감기약과 지사제를 먹고 나서도 아침까지 잠을 설쳤습니다. 

아침, 숙소에서 6살 딸과 트레킹 중인 스페인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저와 반대쪽에서 출발해 쏘롱라(4130m)를 넘어 마낭에 왔다고 합니다. 그제, 묵티나트를 출발해 쏘롱라를 넘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해발을 1800m 이상 올렸다가 다시 1000m 이상 내려가야 합니다. 더구나 쉴 수 있는 로지도 없어 무척 힘든 코스입니다. 가이드나 포터 없이 역방향으로 쏘롱라를 넘어온 스페인 가족의 모험담에 아침 숙소 전체가 들썩였습니다. 

총코르 전망대

늦은 아침을 먹고 고도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강 반대편 언덕위에 있는 총코르 전망대를 오르기로 했습니다. 고도를 올렸다가 내리는 것이 고소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오랜만에 짐에서 해방된 포터들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마르샹디강을 건너 강가푸르나 호수 옆 언덕을 따라 오릅니다. 한 시간 정도 걷자 전망 좋은 총코르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빙하총코르 전망대에서 ⓒ 신한범


어떤 방향을 봐도 눈이 화려합니다. 뒤편에는 피상피크와 안나푸르나Ⅲ가 거대한 빙하를 품고 있으며 아래쪽에는 그림 같은 마낭 마을과 마르샹디강이 보입니다. 강가푸르나 자락에 있는 호수는 살얼음이 수면을 덮고 있지만 푸른 빛은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넘어야할 쏘롱라도 아스라이 보입니다.

강가푸르나 호수총코르 전망대에서 ⓒ 신한범


트레킹을 시작한 후 처음 맛보는 여유입니다. 일주일 이상 함께했기에 가이드와 포터도 이제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짧은 언어로 대화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읽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들의 가장 주된 관심은 경제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포터는 가이드가 되는 것이 꿈이고 가이드는 한국에 가는 것이 희망입니다.

20대 초반의 가이드와 포터는 잠시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틈만 나면 음악과 게임을 즐깁니다. 그들의 수입에 비해 휴대전화의 가격이나 통화료가 큰 부담인데도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히말라야 대부분 지역에서 휴대전화가 개통됐으며 와이파이 사용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들에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이드와 포터동네 친구 사이 ⓒ 신한범


계획을 수정하다

전망대에서 하산 후 로지 식당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진주에서 오신 선생님이 하루만 일정을 추가하면 틸리초 호수를 다녀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두 분 선생님은 오후에 출발하신다고 합니다. 저도 트레킹 준비를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틸리초 호수(4959m)를 염두에 뒀습니다. 그렇지만 혼자라는 두려움과 겨울철에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정보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세상 일을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묘미가 있는 법이겠지요. 마낭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계획은 계획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일행 모두는 이른 점심을 먹고 틸리초 호수를 가기 위해 짐을 꾸려 캉사르(3740m)로 출발했습니다. 캉사르는 틸리초 호수를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을입니다.

마낭을 지나 마르샹디강을 건넜습니다. 수만 년의 풍화로 빚어진 사막 같은 지형에 빙하가 녹아 강물을 만들고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사막과 같은 삭막함 속에서도 생명 있는 것들은 제각기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산 아래 자리 잡은 무채색의 풍경은 삭막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현수교캉사르 가는 길 ⓒ 신한범


트레킹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는 것입니다. 숨이 가프고 몸은 고달프지만 걷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숨이 찰 때는 걸음을 멈추고 걸어온 길을 뒤돌아봅니다. 곡류천이 흐르는 마르샹디강과 마낭 마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눈의 즐거움만으로 피로는 금방 가십니다.

오르고 또 오르고캉사르 가는 길 ⓒ 신한범


두 시간을 걸어 캉사르에 도착했습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는 마을답게 폭설과 바람을 피하기 위해 모든 가옥은 사각형 모습이며 최소한의 공간만 개방돼 있습니다. 대낮에도 빛이 들지 않는 숙소는 정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피상 피크의 모습과 조화를 이룬 룽다가 물결치는 마을 모습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피상 피크와 룽다숙소 창문을 통해 본 세상 ⓒ 신한범


저녁, 가이드와 포터들은 소풍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틸리초 호수를 다녀오기 위해서는 음식과 차를 준비해야 합니다. 소풍 준비는 로지 주인이 아닌 가이드와 포터에 의해 진행됩니다. 내일 먹을 짜파티(빵)를 굽고 감자와 계란 삶으며 즐거워합니다. 그들도 내일은 틸리초 호수를 즐기기 위한 여행자입니다. 소풍은 모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3730m의 고도 때문인지 지난 밤 모두 불면의 밤 보냈다고 합니다. 저도 잠이 오지 않아 몇 시간을 단순한 숫자 계산으로 보냈습니다. 불빛 사라진 침낭 속에서 혼자 문제를 내고 풀어갑니다. 암산으로 하는 계산은 매번 결과가 달랐습니다. 두 자리 수 곱셈은 왜 이리 어려운지요.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 헤드랜턴을 켜고 전경린의 <엄마의 집>을 읽습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어 저마다 자기가 생긴대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구. 그게 인생인걸. 범죄가 아닌 이상 누구도 그걸 억압해서는 안 돼."

'틸리초 호수'가는 길

다음날 아침, 포터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습니다.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면도를 하고 머리를 손질하며 멋을 냅니다. 20대 초반이면 한참 멋을 낼 나이겠지요. 비록 생계를 위해 이곳에 왔지만 오늘은 즐거운 소풍날입니다. 작은 배낭에 지난 밤에 준비한 밀크티와 짜파티 그리고 삶은 계란을 넣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행 모두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쯤 틸리초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야 틸리초 호수에 올랐다가 캉사르로 돌아올 수 있는데 가이드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가이드가 "하루면 다녀 올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틸리초베이스캠프까지 하루가 소요되며 더구나 지금은 비수기라 로지가 닫혀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욕심 때문에 산행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숙소에 가서 침낭과 로지 열쇠를 가져 오기 위해 걸음이 빠른 포터들을 마을로 보냈습니다. 2시간을 더 오르자 상상을 초월하는 급경사와 산사태 지역이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발을 옮길 수가 없습니다.

틸리초 가는 길랜드슬라이드 모습 ⓒ 신한범


랜드슬라이드산사태 지역 ⓒ 신한범


결국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겨울철에 틸리초 호수를 트레킹 하기는 무척 힘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틸리초 피크와 내려올 때 보이는 피상피크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히말라야는 잠시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이며 조그마한 바람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틸리초 피크틸리초 호수 가는 길 ⓒ 신한범


비록, 틸리초 호수에 가지 못했지만 4000m 고도를 한참이나 걸었기에 고소에 대한 적응력은 높아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정해진 틀대로만 산다면 무미건조하겠지요. 세상이든 히말라야든, 세상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각각의 의미 부여하며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내일은 또 새로운 마음으로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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