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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알아왔던 시베리아는 잊어라

[시베리아 이별여행②] 내 눈으로 보는 진짜 시베리아

등록|2013.05.31 13:05 수정|2013.07.02 15:57
<트랜스 시베리아(Transsiberian)>라는 영화가 있다. 한 미국인 부부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서 벌어진 일들을 그린 스릴러 영화인데, 이 영화를 보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얼마나 공포의 요소를 잘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기차라는 밀실, 시베리아라는 오지의 광막함과 추위, 옛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의 폐쇄성과 관료주의…. 기차 여행에 한껏 들떠있는 부부에게 식당 칸에서 만난 승객은 지금 지나고 있는 눈밭 아래에 무수한 시베리아 수용소와 희생자들이 묻혀있을 거라고, 지나간 일만이 아닌 것이 지금도 경찰과 틀어지면 발가락 몇 개쯤 잃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우습지 않은 농담을 한다.

▲ 트랜스 시베리아 | 2008 ⓒ 싸이더스 FNH


비현실적으로 스케일이 커지는 뒷부분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영화 중반 반전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부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듯 말듯 조마조마한 상황이 계속되는데 정작 일을 저지르는 것은 그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부부다. 남편이 기차를 놓치고, 다음 역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가 자신에게 집적거리던 한 남자를 죽이고 만 것이다. 우발적이었다고, 정당방위였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라는 식당 칸 승객의 경고가 떠오른 아내는 진실을 밝히지 않고, 일은 점점 커져만 간다. 결국 진짜 무서운 것은 러시아와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편견이 아닐까.

S는 서방 사람들의 이런 일반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러시아는 너무 춥고 위험해 갈 수 없다던 그가 나의 러시아 여행길에 따라나선 이유도 그 위험천만한 곳에 나를 혼자 보낼 수 없어서였으니 말이다.

시베리아가 외부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6세기말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침략, 점령해 나가면서부터였다. 중앙집권 국가를 이룬 러시아는 대외팽창 정책을 폈고 모험가, 상인, 카자크¹, 도망친 농노 등이 여기에 앞장섰다. 확실한 러시아화와 본격적인 개발은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중앙 정부의 통제와 유럽 사교계에서 멀리 떨어진 이 춥고 척박한 땅에 이주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고안된 것이 시베리아 유형이었다. 골치 아픈 강력범과 정치범들을 격리 시키는 동시에 그들의 노동력을 개발 사업에 이용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다. 이 전통은 소비에트 시절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로 이어졌고, 시베리아에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더했다.²

하지만 시베리아가 러시아에 의해 '발견', '개발'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에는 수십 개의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혹독한 자연환경이나마,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거기에 맞춰 사는 방식을 터득했다.

영국의 러시아사 학자인 안나 레이드(Anna Reid)는 시베리아 지역의 여러 민족들을 방문하고 <샤먼의 코트 - 사라진 시베리아 왕국을 찾아서(The Shaman's Coat: A Native History of Siberia)>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깔보고 유럽 문명을 찬양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향에서 그렇게 뛰어난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면, 당신들은 왜 우리에게 와서 고생을 자초하는 건가요? 당신들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원하는 것 같네요. 반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해요. 우리가 뭘 달라면서 당신들한테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원주민들이 말하는 "우리가 가진 것"은 만물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 믿는 그들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언뜻 척박해 보이는 시베리아에는 처음 러시아인을 끌었던 모피와 삼림 외에도 석유, 천연가스 등 많은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러시아 제국의 개발 사업을 이어 소비에트 정부는 시베리아에 집단 농장과 공장을 세웠고 대개가 유목민인 원주민 민족들을 강제 정착시켰다. 그들이 믿고 있던 샤머니즘을 금지했고 전통문화를 박해했다.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들어선 현 러시아 연방 공화국에서도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기술발전과 수요증가로 개발 사업은 더욱 박차를 더했다.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정체성과 자유를 잃고 갑갑한 도시 생활에 적응을 어려워하는 원주민들에게 게으름뱅이 내지는 야만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르게 살아온 이들에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뒤늦게 나타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식만을 강요하고, 그게 통하지 않자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것이다.

▲ 샤먼의 코트 - 사라진 시베리아 왕국을 찾아서 | 안나 레이드 저, 윤철희 역 | 미다스북스 | 2003 ⓒ 미다스북스


이런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책은 유럽 열강들의 19~20세기 식민지 정책과 닮았다. 그리고 시베리아를 향한 S의 편견에서 나는 S의 한국과 아시아를 향한 편견을 읽을 수 있었다. S와 나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다는 것은 한국에 함께 간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타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러시아 제국이 시베리아와 동아시아로의 패권을 다지기 위해 소수민족과 시베리아 수용소 죄수들의 힘을 빌려 놓은 길이다. 열차가 지나면서 서는 역들은 모두 도시화가 되어 내가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생활을 하고 있는 원주민들은 거의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지어를 모르고 한 달 짜리 여행 비자밖에 받을 수 없는 나로서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무엇보다 외부로부터 만들어진 이미지와 편견에 눈멀어 여행을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내 눈으로 진짜 시베리아와 그곳의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S는 이번 여행으로 시베리아와 한국에 대해 품어왔던 기존의 막연하거나 부정적이었던 생각들을 많이 수정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제껏 왜곡되게 비쳐졌던 시베리아가 아닌 진짜 시베리아로의 여정에 독자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¹ '자유인'이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 변경지역 자치 군사공동체.
² 각각 제정 러시아 시절과 소비에트 시절에 죄수 생활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와 솔제니친은 자전적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에서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을 그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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