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겐 간식 준다 거짓말 하고 안 준 적 많았다"
달서구 민간어린이집연합회, 교사 블랙리스트 배포... 해당 어린이집 "근거 없다"
▲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30일 오후 달서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육교사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 조정훈
지난해 4월 대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원장의 비상식적인 행위에 모멸감을 느낀 보육교사들이 집단으로 퇴사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신상이 담긴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져 유포된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비리고발센터(이하 고발센터)는 대구시 달서구민간어린이집연합회(이하 연합회)에서 해당지역의 민간어린이집에 '교사 채용 시 주의해 주세요!'란 문건을 메일과 우편으로 보낸 사실을 공개하고 대구시와 달서구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메일은 지난해 7월 26일, 우편발송은 10월경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센터가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달서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던 보육교사 5명은 지난해 4월 평가인증을 앞두고 원장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며 집단으로 퇴사했다. 이후 연합회는 "OO어린이집 교사가 평가인증 앞두고 단체 무단결근 및 퇴사 건으로 인해 법정소송으로 진행 중에 있다"며 '단체로 무단 퇴사할 경우 교사 자격정지 사유'라고 밝히고 "교사 모집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연합회에서 알려드리니 OO에서 근무한 교사 채용 시 연합회로 문의하라"는 내용의 메일을 해당지역 민간어린이집에 보냈다.
연합회가 달성군의 민간어린이집에 우편으로 보낸 문건에도 해당 어린이집에서 근무했던 보육교사 5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신상 등이 담겨져 있으며 "일부 교사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원과 아이들의 피해는 물론 원장의 교육적 자긍심마저 훼손시키는 행위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점심시간, 손톱 만한 깍두기 2~3개만 주라고 지시"
고발센터에 따르면 최아무개(40)씨 등 5명은 OO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근무하던 중 지난해 4월 어린이집 평가인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녁 늦게까지 야근을 강요당했다. 또 원장이 김밥을 싸고 남은 재료를 쓰레기봉투에 넣어놓고 야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센터는 당시 보육교사로 근무했던 최아무개씨의 진술서 내용도 공개했다. 진술내용에 따르면 원장이 조리사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오후 2시에 조리사를 퇴근시키고 보육교사인 최씨에게 간식을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것. 최씨는 5개월 동안 55명 어린이의 간식을 만들었다.
최씨는 "원장이 점심시간에는 손톱 만한 깍두기를 아이들에게 2~3개만 주도록 지시하고 반찬을 많이 주면 화를 냈다"며 "학부모에게는 오후 간식을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실제로는 주지 않은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바나나 한 개를 아이 10명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 보육교사들은 서로 상의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동시에 출근을 하지 않고 퇴사했다. 그러자 연합회에서는 달서구 민간어린이집 원장들이 공유하고 있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보육교사의 인적사항을 상세히 기록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발송하고 이들을 채용하지 않도록 종용했다.
▲ 대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보육교사들에 대해 법적 소송중이라며 다른 어린이집에서 채용할 시 연합회로 알려달라는 내용의 블랙리스트 공문이 발견됐다. ⓒ 조정훈
▲ 대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보육교사들의 신상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돌린 문건이 발견됐다. ⓒ 조정훈
이 어린이집의 원장은 교사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하고 보육정보 사이트에 해당 보육교사들의 명단을 한 달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혐의가 없다는 통보를 하자 연합회 차원에서 변호사를 고용해 항소했다.
결국 이 보육원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5명의 보육교사 중 한 명은 4번이나 면접에서 탈락한 후 다른 어린이집에 재취업할 수 있었지만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것을 안 어린이집 원장이 권고사직을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2명은 OO어린이집에서 근무한 이력을 경력증명서에 기입하지 않고 취업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센터는 이와는 별도로 추가로 2명의 보육교사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것도 확인했다.
이에 대해 김호연 비리고발센터장은 "어린이집에 공공연하게 블랙리스트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대구시와 해당구청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문경자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 보육분회장은 "민간어린이집연합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메일로 보내고 공문으로 발송한 것은 조직적 범죄나 다름없다"며 "해당어린이집 뿐만 아니라 관리감독 관청인 대구시와 달서구청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대구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작성돼 유포된 사실이 밝혀지자 시민단체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 조정훈
우리복지시민연합과 공공운수대경지역본부, 대구여성회 등 15개 노동시민단체도 30일 오후 달서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와 달서구청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행위자와 어린이집에 대해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할 것"과 '대구광역시어린이집연합회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이어 "블랙리스트 존재를 사전에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대구시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나서 종합감사를 실시하고 당사자들을 문책하라"고 요구하고 "보육노동자들이 해고와 재취업 박탈에 대한 걱정 없이 고용을 보장하고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체계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28일 보건복지부 담당자를 면담하고 어린이집연합회의 고소 취하와 달서구청 공무원에 대한 감사, 대구민간어린이집연합회 내부규정 공개 및 감사를 요구했다. 또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유포한 달서구민간어린이집연합회와 대구민간어린이집연합회, OO어린이집 등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대구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한편 문제가 불거지자 OO어린이집 담당자는 "블랙리스트는 전혀 근거없는 것"이라며 "지금 소송중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예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시와 달서구청 담당자는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들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며 "해당어린이집과 민간어린이집연합회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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