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정보공개,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할까
[서평] IT블로거 제프 자비스 교수의 <공개하고 공유하라>
▲ <공개하고 공유하라> 책 표지 ⓒ 청림출판
물론 사생활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보호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들의 정보와 창작물 등을 통제할 수 있는 확실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과연 사생활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우리가 사적 영역으로 꼭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유는 무엇인가. 사생활이 침해되면 어떤 피해를 입는가.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자, 이제 생각을 조금 바꿔보자. <공공성과 반공공성>의 저자 마이클 워너는 "대부분의 일들은 어떤 면에서는 사적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공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을 예로 들며, 책은 사적인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렇게 보면 사생활과 공공화가 꼭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상호 의존적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개인적인 정체성을 공개적인 행동으로 옮긴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한 입장을 개인적으로 결정하지만, 그 입장을 공개하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도 있고 그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도 있다. 동시에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적인 생활, 즉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주장 등을 듣고 사적인 결정을 하는 정보의 원천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공적일 것인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회 분위기에 비해 공공화의 이점을 제대로 알리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IT블로거이자 뉴욕대 교수인 제프 자비스가 '사생활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공화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며 펴낸 책이 바로 <공개하고 공유하라>다. 그의 주장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공공화의 혜택을 직시하고, 공개를 결정했다면, 철저하게 공개하라' 정도가 되겠다. 과연 그가 바라보는 공공화란 무엇일까?
'공공화', 그 거부할 수 없는 물결
저자에 따르면, 공공화는 500년 전 인쇄기술이나 100년 전 사진기에 버금가는 변화다. 그것도 매우 획기적인 변화다. 동시에 파괴적이기도 하다. 과거 소수가 독점해오던 '정보의 카르텔'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정보와 정보 사용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누려오던 기득권자들은 이런 변화에 저항한다. 여전히 독재자와 정치가·언론재벌·기업가들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할지를 통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트위터를 사용해 어떤 제품에 대해 불평하든, 페이스북을 이용해 시위를 조직하든, <오마이뉴스>에 정치권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송고해 기사화하든,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물론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공공화돼 가고 있다는 증거다. 특정한 누군가가 이끈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생활양식으로 파고들었다. 소수가 아닌 사회와 대중이 선택한 길인 것이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은 과거 그 어떤 때보다 '공개'와 '공유'를 손쉽게 만들었다. 모든 상황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이는 중대한 변화를 수반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단지 사생활과 공공화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변화, 두려움과 기회, 새 시대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공화는 단지 온라인 유행, 몇몇 근사한 도구들, 새 비즈니스 방법, 정치적 미사여구, 젊은이들의 공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 공공화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만큼 중대하게 사회적·경제적 질서를 새로이 구축하는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본문 34쪽)
인류 역사에서 복수의 문명이 만나 융합을 통해 찬란한 신문명을 꽃피웠던 예를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시장은 촉매제로 작용했다. 시장 덕분에 인류는 도시를 짓고 여행을 떠나고 서로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 과학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는 '교역과 문화의 관계는 섹스와 생명 활동의 관계와 같다'고 말하면서 '교환은 변화에 집단성과 누적성을 부여했으며 이를 통해 이웃에서 일어난 발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발명들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금 시대에서 시장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인터넷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폭증하고 끊임없이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다. 마치 예전에 사람들이 시장에서 만나 떠들었던 것처럼 지금의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시간은 더 짧아졌고, 장소는 제약이 없으며, 대화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공공화는 상호 작용으로 이어지고 상호 작용은 혁신으로 이어진다. 시장과 도시의 상호 작용 덕분에 인류가 발전했다면 인터넷의 폭발적인 상호 작용은 앞으로 세상을 얼마나 발전시킬지 더욱 궁금해진다."(본문 139쪽)
남은 것은 취사선택의 문제
▲ 과잉 공개의 기준은 보는 사람들의 이목에 달린 것이 아니다. '공개하는 사람의 마음과 입'에 달려 있는 것이다. ⓒ sxc
저자 역시 공공화를 지지하지만, 공개의 범위에 관해서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나에게도 사생활이 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공개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이유가 있는 것들만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에서 우리 각각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 대한 가정과 규범에 대해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본문 87쪽)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적정한 공개의 범위인가. 기준은 의외로 간단했다.
"당신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뭔가를 드러내는 정보를 공개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당신의 결정이다. 당신의 자유다. 너무 지나친 건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과잉 공개란 무엇일까? 공개한 것을 후회한다면 과잉 공개이다."(본문 233쪽)
그렇다. 과잉 공개의 기준은 보는 사람들의 이목에 달린 것이 아니다. '공개하는 사람의 마음과 입'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세상에 알리기 싫으면 거기에 대해 함구하면 된다. 이 얼마나 간편한가.
기술의 발전과 시민의식의 성숙도를 고려할 때, 더 공공화된 사회를 향한 진보가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를 원치 않는 세력의 저항도 소용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는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미래로 향하는 열쇠는 공공화를 누리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누리게 될 우리에게 있다. 지혜롭게 기회를 찾아 스스로 원하는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
이 책은 그 판단을 위한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공공화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이 말이 조금 도움이 될까? <옵저버>의 칼럼니스트 존 노턴이 인쇄기가 발명됐던 독일 마인츠의 시민들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인쇄는 사실 모든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472년에 마인츠에 살던 그 누구도 그 영향이 얼마나 막대할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공개하고 공유하라>, 제프 자비스 지음, 위선주 옮김, 청림출판 펴냄, 2013.04,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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