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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위 '꼴통짓'은 많이 해도 일관성은 있다"

[인터뷰]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등록|2013.06.03 17:56 수정|2013.06.03 17:56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더 관심을 모았던 이번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동감을 표하고 양 정상은 한미동맹의 미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6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정전체제도 6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들어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개성공단이 잠정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했어야 할 논의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한미관계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한반도 위기를 타개해나기기 위한 해법을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를 만나 들어봤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속된 말로 "골 때리는" 관계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NLL문제 해결이나 북한에 대한 보다 진보적인 정책은 보수정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평화네트워크

- 박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논의됐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선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결과 자체는 상당히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로는 먼저 역사 인식 부분을 들 수 있다. 올해는 한미동맹이 6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두 정상 간 첫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의의와 발전 방향에 대한 합의를 하는 것은 이해할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전체제 60주년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역사성을 간과한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할 수 있다.

역사구조적으로 볼 때 한미동맹과 정전체제는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적 쌍생아라고 할 수 있다, 정전체제의 안정적인 유지 관리는 한미동맹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대체해 나가는 것 역시 한미동맹의 또 하나의 임무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노무현 정부 때만 보더라도 부시 행정부를 설득해서 한미동맹의 평화적인 목표가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고 강조하는 부분들이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여러 차례 명시가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그러한 내용이 사라졌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정상회담인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것은 앞으로의 한미동맹과 한미공조체제가 불안한 정전체제에 계속 의존하겠다는 메시지와 다름이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 한반도의 미래가 상당히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 북한과 미국 간의 계속되는 대립의 원인은 두 나라간의 입장 차이에 있는 것 같다. 두 나라가 처해있는 입장은 각각 어떠하며,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속된 말로 "골 때리는" 관계이다. 한쪽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고 다른 한쪽은 주민들의 의식주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세계 10위안에 들어갈 정도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철저한 반미국가임과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모순적인 국가이다. 반면에 미국은 북한과 같은 인권탄압국이자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여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깡패같은 나라와 수교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 시도가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더 근본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미국은 아랍 국가들과 같은 거대한 산유국도 아닌 북한과 굳이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불편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달리 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은 오히려 북한과 같은 적대국가를 남겨둠으로써 여러 가지 전략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중국을 겨냥한 군비를 증강하고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은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통해 오히려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동맹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중견국가인 한국의 정책을 자국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한국을 무기시장화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현 체제가 불편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반면 북한의 입장은 다르다. 한국은 90년대 소련, 중국 등 구공산권 국가들과 수교에 성공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한국의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고 있다고도 볼 수 없다. 반면 북한은 60년이 넘게 미국과 대립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 들어서는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은 현 정전체제가 매우 불편한 상황이다. 그래서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하고 싶어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의 생각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 때로는 정중하게 이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북한은 이런 제안들이 묵살당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핵의 위력을 믿고 "전쟁이냐 평화냐 양자택일하라"며 위협적인 언행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에 물꼬를 터보려는 생각인 것이다. 어차피 미국이 전쟁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그런 언행을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미국의 대북혐오감은 더욱 강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북미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이유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 동맹과 남북관계 사이에서 균형점 찾아야

- 그렇다면 북한과 미국 사이의 중간자로서 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태도와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북미관계, 한미관계 모두가 선순환을 그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굉장히 많다. 그런 역할을 뒷받침할만한 힘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그러한 역할을 하고자하는 의지와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중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중요한데, 중점을 둘 곳은 어떤 궁극적인 지향점일 수도 있고 국가간의 관계일 수도 있다.

먼저 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한미동맹을 강화해나가는 정책을 펼 수 있다. 이럴 경우에 동맹이란 기본적으로 공동의 적을 상정한 군사관계 개념이기 때문에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공동의 적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을 수반하게 된다. 적국과의 관계 악화는 동맹을 다시 강화시킨다. 한미동맹 강화는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공동의 적은 명시적으로는 북한이고, 암묵적으로는 중국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다시 남북관계가 악화된다. 그리고 이것이 한중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관계의 순환 구조에서 어디에 비중을 두고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동맹을 우선했다. 그런데 군사동맹이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안보, 즉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그 자체를 목적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지향점과 목표에 관련해서도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북한을 붕괴시키거나 북한을 흡수통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과거 김영삼 정부 때 그런 성향이 강했고 이명박 정부는 더 노골적이었다. 현 박근혜 정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을 보면 '비핵화와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로의 통일'과 같은 부분이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에게는 실현불가능한 흡수통일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 아니면 어렵고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점진적인 화해와 협력을 토대로 한 평화적 통일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의 선택지가 놓여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보수정권은 흡수통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책의 기본적인 목표가 흡수통일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남북관계를 풀 것인지, 어떻게 6자회담을 제기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평화체제와 비핵화문제를 연계시켜서 잘 풀어갈 것인지와 같은 구체적이고 당면한 정책과제가 후순위로 밀려버리게 된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관성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지금까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을 불문하고 '한반도 비핵화'는 대북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가장 상위의 규범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대외적으로도 표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가 실현가능성있는 목표라고 보는가?

우리 속담에 "호미를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게 생겼다"라는 말이 있다. 북한의 의도가 애초부터 핵무기 보유에 있었기 때문에 협상은 무의미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20년간의 대북협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말이다. 전지전능한 국가도 아닌 북한이 지난 20년 동안 남한을 포함한 동북아 5개 국가를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은 굉장히 자기비관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도 "핵무기를 머리위에 놓고 살 수 없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런 인식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60년 동안 미국의 핵을 머리위에 놓고 살아왔다. 미국 AP통신이 직접 지적했듯이, 미국은 1950년 이래 지속적이고 계획적으로 북한에 핵 공격 위협을 가해왔다. 북한이 미국의 그런 위협에 노출되어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핵문제 해결은 단 한발짝도 진전될 수 없다. 미국이 핵 전폭기까지 동원해서 군사훈련 하는 것은 문제없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심각한 위협이라는 비대칭적이고 일방적인 위협인식구조로는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 미국의 레이건과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총성 한발 울리지 않고 냉전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전까지는 "네가 불안해져야 내가 안전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네가 안전해야 나도 안전해지는구나"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이렇게 공동안보에 대한 인식이 전환된 것이다.

그런 인식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에 총성 한발 울리지 않고 냉전종식이 가능했던 것처럼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그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북한의 핵에 위협을 느끼듯이 북한도 한미일 삼자관계로부터 심각한 군사적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북한이 느끼는 위협의 수준과 크기는 우리보다 몇 배는 더 크면 더 컸지 절대로 우리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 힘의 관계가 너무나 현저히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량살상무기를 강제로 포기당했던 후세인은 그 무기가 없어지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자발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리비아 카다피 정권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이런 사태들을 보면서 북한 지도부들은 "역시 핵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더  강하게 갖게 되었다. 때문에 그런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군사적 압박이나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북한 지도부의 인식을 바꿔냈느냐 아니면 오히려 더 강화시켰느냐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시도들과 그런 노력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끝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논의를 하는게 무의미할 정도로 지금까지 북한 지도부의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시도들은 앞으로는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제는 비핵화가 아닌 비확산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얘기이다. 개념적으로 볼 때 비핵화와 비확산은 다른 개념이 아니다.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이고 비확산은 북한이 핵을 외부에 이전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개념 정의이다. 비핵화가 비확산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 비핵화는 묵인하고 비확산을 막으려는 것이 너희들의 정책이 아니냐고 얘기하면 그들은 무슨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당연히 비핵화가 비확산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잘못알고 있는 부분이 그런 부분들이다.

현실적으로도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은 계속 영변핵시설을 가동하여 핵물질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것이 양적으로 증가하면 당연히 외부에 유출되고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장을 묵인하고 그것을 외부로 이전하는 것을 막는 다는 것은 현실성없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종합해보면, 핵을 가지고 있는 것과 별개로 그것을 포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런 노력들을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 갖고 있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개념임을 항상 숙지해야 한다.

북한, 소위 '꼴통짓'은 많이 해도 일관성은 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 인터뷰정욱식 대표는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이자 목표는 불안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대체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평화네트워크


- 큰 흐름을 보면 지금까지 북미간 협상, 남북간 협상이 계속 진전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으로 인해 그 어떠한 대북정책도 일관성을 기할 수 없어 남북관계가 발전과 퇴보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기하고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진전을 위한 실현가능한 방안이 있다고 보는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은 소위 '꼴통짓'은 많이 해도 일관성은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중대한 국면마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현 정부와 합의해봐야 정권이 교체되어 약속에 대한 신뢰와 지속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더군다나 양측의 거래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조치들은 물리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나중에 되돌리기가 굉장히 힘들다. 반면 미국의 대 북한 경제 제재를 해제와 같은 조치는 언제든지 다시 바꿀 수가 있다. 북한이 취하는 비핵화조치는 상당히 불가역적인 반면에 미국과 한국이 취하는 조치는 상당히 가역적인 조치라는 점이 이런 비대칭성을 낳는 것이다.

이렇게 정권교체의 문제와 더불어 서로간의 조치에 가역성과 불가역성의 비대칭적 상황이  있어서 협상이 더욱 어렵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보수정권이 이런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다른 보수정권들이 그렇듯이 진보정권보다 국내정치적 저항과 논란이라는 부담을 덜 갖고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다. 미국의 예를 보더라고 미국과 중국 간의 데탕트를 이끌어낸 사람은 공화당의 닉슨 행정부였다. 부통령 때 '빨갱이 잡는 닉슨'으로 유명했던 닉슨의 해정부였다는 말이다. 소련과의 냉전해체를 이끈 주역도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던 냉전의 전사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이처럼 한국도 보수정권이 이런 사례들을 바탕으로 대북관계를 잘 풀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참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국민적인 합의, 초당적인 합의이다. 그래서 대북외교의 적지 않을 부분은 우리 내부의 갈등을 푸는 과정이 차지한다. 예를 들면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이해와 협조를 구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정부도 제2차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추진한 것이 국내정치적으로 논란을 야기했고 당시 보수 야당의 이해와 협조를 충분히 얻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다.

이런 부분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보수적인 정부는 좀 더 진보적인 대북정책을 시도해봐야 한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권은 북한과의 외교 협상 못지않게 한국 내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려는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노력들이 필요에 따라선 일종의 초당적인 제도화가 있을 여지는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서해에서는 항상 남북간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남과 북 모두에게 중요한 사안이다. 양측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고 실현가능한 북방한계선(NLL)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북 간의 많은 문제는 해법이 없어서라기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가 없어서 풀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NLL 문제도 마찬가지다. NLL을 엄연한 우리의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NLL을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반면 NLL이 남한과 북한 간에 또는 유엔사와 북한 사이에 합의된 선이 아니라는 문서는 굉장히 많다. 이름이 북방한계선인 이유부터가 한국전쟁 당시 유엔 사령부가 이 선 이상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은 선이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북방정찰한계선이라고도 불렀다. 이와 관련된 문서는 굉장히 많다.

NLL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NLL은 합의된 선이 아니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러나 서해교전과 천안함 사태, 연평도 사건 등으로 인해 국민 정서가 악화되었다. 그리고 정부와 보수언론에서 정서적인 자극을 많이 함으로 인해 NLL이 합의된 선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국민 정서상 수용할 수 없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해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반도 주요 교전사태가 NLL인근지역에서 일어난 건 우연이 아니다. 또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특히 교전상태 재발 시 확전 가능성도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북한의 핵 위력 강화가 북한 지도부 내 강경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강경파가 "지난 수십년간 NLL에서 우리는 계속 패배자로 무시당해왔지만 이제 우리가 핵을 갖게 됐으니 힘을 통해서 NLL을 무력화할 때가 왔다"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남한 내에서도 강경론이 쉽게 득세하는 것처럼 북한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의 핵능력이 강해지면 NLL을 무력화하려하는 군사적 모험주의가 강해질 수 있다. 남한에서도 북한의 도발시 선조치 후보고(현장지휘관이 먼저 공격한 다음에 상부에 보고하며 도발세력 뿐만 아니라 그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응징한다는 조치)체제를 세우는 등 사실상 전쟁불사론과 다름없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남북 모두 군사적 모험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이런 문제 역시 보수정권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혁적인 정부가 시도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다. 기본적인 원칙은 남북기본합의서에 있다. 해상분계선은 서로 합의를 하되 합의가 될 때까지는 현재의 관할 영역을 준수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가 아까 나왔는데 이것을 NLL문제에 도입해본다면 결국 NLL문제는 남북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생긴 잠정적인 문제이고 궁극적인 해결은 통일에 있다는 것에 남북이 협의한다. 다만 그때까지 NLL 문제로 인해서 남북간의 갈등이나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평화적이고 서로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유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유보를 통해서 탈군사화를 이루고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하면서 군사적 민감성을 낮추고 경제적 번영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남북한이 풀어갈 필요가 있다. 이것이 유일한 해법이 아닌가 한다.

- 예전에 비해서 지금 남북문제나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은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는가?

전반적으로 안보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보수화된 것 같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진 부분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나 언론에서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른다고 난리를 쳐도 국민들은 의연하고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런 여러 복합적인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워낙 학업이나 취업 등 당면한 문제들 때문에 남북관계나 평화 같은 큰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에 비해 관심도와 참여도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건 젊은 세대보다 그런 환경을 만든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크다. 예전 사람들은 데모해도 취업에 걱정이 없었다. 젊은 세대들이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남북관계나 통일문제가 나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고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한다. 나라의 문제이고 민족의 문제인 동시에 나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피부에 와닿는 평화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한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 기사는 평화네트워크 인턴들이 정욱식 대표를 인터뷰한 기사로, 지난 5월 21일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에 올라간 글을 수정, 편집한 것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http://peacekorea.org/zbxe/1649289)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장 문흥호 교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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