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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L이 드라마를 쓰는 세상

등록|2013.06.08 15:20 수정|2013.06.08 15:20

▲ SBS 아침드라마 <당신의 여자>에서 삼성 스마트 에어컨이 간접광고되고 있다. ⓒ SBS


"공기 청정좀 해놓으라니까. 요즘 황사가 얼마나 심한데!" 배우가 집안에 들어서며 삼성 에어컨을 켠다. 한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이다. 심지어 카메라의 구도마저 마치 홈쇼핑인 양 제품을 클로즈업 해서 잡아준다. 이 정도면 간접광고가 아니라 직접광고라고 의심할 만하다. 배우들은 이제 드라마 속에서 연기를 하며 동시에 광고도 찍어야 하는 두 가지 역할을 부여받았다.

드라마 <백년의 유산>은 마치 '오뚜기'에서 만든 장편 CF처럼 보인다. 주인공이 일하는 회사, 주인공의 집안이 대대로 하던 공장, 배우들이 먹는 라면 및 음식재료 모두 한 브랜드의 간접광고(Product PLacement, PPL)를 위해 만들어진 요소인 양 해당 브랜드의 간접광고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드라마 <더킹 투하츠>는 도넛회사의 과도한 PPL로 '더킹 도너츠', '던킨 투하츠'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는 의류브랜드 '파크랜드'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실제로 '그 겨울'은 특정 인터넷기반 집전화 서비스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줘 '방송심의에 의한 규정' 제46조(광고효과의 제한) 제 2항을 위반했다는 주의를 받았다.

물론 PPL이 적당한 선에서 활용된다면 시청자들은 더 현실감 있게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주인공이 쓰고 있는 모자나 티셔츠에 청테이프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본다면 드라마에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청자가 방송을 보는 도중 'PPL이 의도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우리는 질 좋은 드라마를 볼 권리를 침해받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완성도 높은 스토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드라마를 보는 중간중간 주인공이 PPL을 위해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기업이 드라마에 후원하는지를 보면 대강의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카드사의 지원을 받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여주인공은 카드회사 영업사원으로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소녀가장일지도 모른다. 가구회사의 협찬을 받는다면 주인공은 실외보다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시청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을 방송사가 모를 리 없다. 뿐만 아니라 PPL이 허용되는 기준은 법령으로도 정해져 있다. 방송법 시행령 제59조3항에 따르면 간접광고는 방송프로그램의 내용이나 구성에 영향을 미치거나 방송사업자의 편성의 독립성을 저해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간접광고로 노출되는 상표, 로고 등 상품을 알 수 있는 표시의 크기는 화면의 4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주의를 받거나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 수 있다.

PPL로 인한 수익과 과태료로 인한 손실을 비교한 방송사는 결국 PPL을 드라마 도처에 늘어놓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간접광고로 인한 시청자의 피해뿐만 아니라 수익창출을 최우선에 놓는 방송사의 태도에 대해서도 우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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