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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싫다고 울던 아이 보냈다... 마음 어떻겠나"

환경성 질환, 정부 확인 피해자만 2000명 넘어... "환경피해보상법 제정해야"

등록|2013.06.05 18:27 수정|2013.06.05 18:27

▲ 3대가 충남 홍천군 광천광산에서 일한 정지열(71,오른쪽에서 세번째)씨 집안에선 5명이 석면으로 폐질환을 앓아 사망했다. 는환경보건시민센터는 6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환경성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환경피해보상법 제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할아버지도, 숙부와 당숙도, 형도 광부였다. 1930년대 후반, 정지열(71)씨의 고향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에 들어선 석면광산은 한때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고, 또 아프게 했다.

광부였던 정씨의 숙부와 당숙, 형 등 5명은 모두 폐질환으로 세상을 떴다. 2010년 사망한 6촌은 석면광산에서 일한 적이 없는데도 석면폐(석면섬유가 폐에 쌓여 생긴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5일 오전 정씨는 간간히 가래 섞인 기침을 했다. 1년가량 석면광산에서 일했고, 평생을 주변에서 살아온 그도 2008년 석면폐 진단을 받았다.

이날 서울시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는 정씨처럼 환경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모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은 이들과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은 공해병 다발국가"라며 정부가 2007년부터 환경성 질환을 조사한 내용을 정리,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석면·시멘트공장 환경성질환 피해 사례는 모두 2125건, 사망자의 비율은 26%(556명)이었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특이하게도 시멘트공장 주민 상당수가 폐질환을 앓는 사례는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 시멘트공장이 있지만, 광부들이 주로 걸리는 진폐증이 공장 주변에 사는 주민에게서 발견되는 곳은 없다"며 "도대체 시멘트공장 관리를 어떻게 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시멘트공장·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유독 한국에서..."

▲ 환경보건시민센터는 6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환경성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환경피해보상법 제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부의 2007~2012년 조사 결과, 강원도 영월군·삼척시·강릉시·동해시, 충청북도 제천시·단양군, 전라남도 장성군, 대구광역시 동구 등에 있는 시멘트공장과 석회석 광산 인근 주민 1054명이 진폐증·만성폐쇄성폐질환(COPD)·폐암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 대부분은 정부나 시멘트공장 어느 곳으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일부는 환경부에 중앙환경분쟁조정을 신청, 피해배상을 받는 길이 열렸지만 시멘트기업들이 이에 불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역시 외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형 환경성질환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2011~2013년 5월까지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접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는 401건, 이 가운데 숨진 사람은 121명에 달했다.

사망자의 44%(56명)은 1~3세 영유아였다. 백승목(41)씨의 세 살짜리 딸도 그 중 하나였다. 백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06년 사망 직전)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인형을 붙잡고 있는 아이를 보낸 마음이 어떻겠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는 가습기 살균제로 100명 넘는 사람이 죽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피해자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시멘트공장은 바람 방향 등을 고려해 조사 범위를 넓히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도 가족까지 추가조사하면 피해자는 많아질 것"이라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조사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또 불치병인 석면폐증 환자에게 2년만 생활요양수당을 지급하는 등 부족한 피해구제 내용을 가다듬고, 책임 규명을 명확히 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환경피해보상법' 제정을 촉구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는 6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환경성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환경피해보상법 제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딸을 잃은 백승목(41)씨는 이 자리에서 "국민 100명이 넘게 사망한만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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