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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국정원-민변 정면충돌

국정원 직원, 민변 상대로 6억 소송... 민변 "보복행위" 반발

등록|2013.06.06 13:08 수정|2013.06.06 13:08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국정원)과 인권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국정원이 '화교 출신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민변을 상대로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실제로 민변을 상대로 6억원의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다만 국가 정보기관이 인권변호사단체를 상대로 한 소송이라는 좋지 않은 모양새에 따른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인 듯, 국정원 직원과 민변 소속 변호사인 변호인 간의 사적인 분쟁의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민변은 5일 이번 소송을 실질적으로 국정원 주도로 보고 '적반하장, 보복소송'이라고 규정하며 공동 변호인단을 구성해 총력 대응한다는 방침이어서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로써 화교 출신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유OO씨 간첩 조작 의혹 사건은 검찰(국정원 포함)과 민변의 치열한 법리공방과 함께 국정원과 민변의 또 다른 게임으로 사건이 더욱 커졌다.

사건 경위

사건은 이렇다. 먼저 서울시 공무원인 유OO(33)씨는 국정원의 내사로 시작해 지난 1월 10일 간첩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는 것은 유씨가 탈북자 출신 1호 서울시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유씨를 구속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상호)는 지난 2월 26일 "국내 탈북자 신원정보를 수집해 간첩활동을 하던 탈북 화교 출신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인 서울시공무원 유OO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으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중국 국적 화교인 유씨는 북한에서 준의사로 근무하면서 화교 신분을 이용해 불법 대북송금 브로커로 활동하다가, 2004년 4월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런데 유씨는 중국을 경유해 5회 밀입북을 하는 과정에서 2006년 5월경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으로 포섭됐고, 탈북자 정보수집 지령을 받고 북한 국적의 탈북자로 위장해 대한민국에 잠입했다는 것이다.

이후 유씨는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를 졸업 후 2011년 6월부터 서울시청에서 탈북자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계약직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탈북자 관련 단체 활동, 서울시공무원 업무 등을 통해 수집한 200여명의 탈북자 신원정보를 3회에 걸쳐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을 통해 북한 보위부에 전달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또 유씨가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아 주거지원금, 정착금 등 합계 2565만 원을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부정 수령하고, 위장신분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부정 발급받아, 중국·독일·태국 등에 출입국하면서 12회에 걸쳐 이 여권을 행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내사를 벌이던 국정원은 검찰과 함께 유씨를 적발해 국가보안법(간첩죄, 특수잠입·탈출죄, 회합·통신죄) 위반, 북한이탈주민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위반, 여권법위반 등을 적용해 지난 2월 26일 구속기소했다.

민변의 등장

이 간첩 사건은 지난 1월 18일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민변에 '구명' 요청이 접수돼 민변 산하 통일위원회에서 공익소송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유씨를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 7명으로 꾸려진 '탈북 화교 남매 간첩사건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했다.

민변 통일위원회는 검찰이 유씨를 구속기소한 다음날(2월27일) '탈북 화교 남매 간첩사건에 대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과 검찰이 '억울한 간첩 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씨가 탈북 화교인 점을 제외한 국가보안법 범죄 혐의는 유씨 여동생의 허위진술에 의한 조작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탈북 화교 남매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변은 그러면서 "탈북자를 잠재적 간첩으로 낙인찍는 공안 여론 조성과 탈북자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목 하에 불법으로 구금하는 행태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억울한 누명을 국민 배심원단이 보는 앞에서 풀어주겠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기도 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민변 통일위원회는 지난 4월 27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국가정보원 탈북 화교 남매 간첩조작 사건 여동생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유OO씨의 간첩혐의에 대한 거의 유일한 증거가 여동생의 진술인데, 여동생은 2012년 10월 30일 제주도로 입국한 이후부터 180일 동안 국정원 산하 합동신문센터에 수용돼 대한민국에 정착할 수 있는지 조사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빠 유씨의 간첩행위를 인정하는 내용의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민변은 "여동생은 국정원 직원들이 납치해 갈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등 국정원에 대한 공포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신뢰관계가 있던 중국 지인을 만나자 통곡을 하면서 그동안 국정원 조사에서 힘들었던 일들과 국정원의 회유, 협박 그리고 폭행 사실을 실토하면서 오빠에 대한 공소사실은 모두 거짓이라고 진술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국정원, 법적조치 예고 12일 만에 6억 민사소송

그러자 국가정보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국정원은 다음날(28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관련 국정원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국정원은 민변이 유씨의 혈연관계인 여동생의 감성을 자극해 진술을 번복케 하고 간첩사건을 '회유나 협박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그러면서 "민변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하지 않을 경우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 및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민변의 사과가 없자 국정원은 지난 5월 10일 국정원 직원 3명을 원고로, 민변 소속 변호사인 유씨 변호인 3명(장경욱, 김용민, 양승봉)에게 각 2억원씩 총 6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사과를 요구한 지 12일 만에 법적 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민변 "국정원 간첩조작 허물어지자 앙갚음으로 보복소송... 적반하장"

민변(회장 장주영)은 5일 논평을 통해 "지난 5월 10일 국가정보원 직원 3명이 민변 소속 변호사들을 상대로 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어제 확인됐다"며 "적반하장"이라고 반발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화교 출신 탈북자로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국정원이 구속한 유OO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관해 변호인들이 기자회견 방법으로, 국정원 직원들이 회유·협박·폭행·감금에 의해 사건을 조작한 것처럼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국정원과 그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민변은 "이러한 국정원 직원들의 민사소송 제기가 대단히 부당하고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조목조목 따졌다.

민변은 "이번 소송은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을 표적으로 진행된 간첩조작 사건이, 여동생의 양심선언으로 전모가 밝혀진데 대한 국가정보원의 보복성 소송"이라고 규정했다.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증거는 사실상 여동생의 증언이 유일하다시피한데, 유씨의 여동생은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진술이 국가정보원에 의해 어떻게 조작·왜곡됐는지 상세하게 밝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변은 "유씨 여동생이 폭로해 국정원의 간첩조작 시도는 그 토대부터 허물어져 버렸다"며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국가정보원이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이니, 한마디로 적반하장격 소송"이라고 개탄했다.

또 이번 소송은 변호사들의 변론권을 위축시키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이번 민사소송 소장에 적시된 국정원의 주장은 그 자체로도 잘못된 것이고, 주장이 타당하다고 믿는다면 국정원은 법원에 증거들을 제출해 재판부의 판단을 받으면 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민변은 "국가정보원의 수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변호인들을 피고로 지목해 손해배상소송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변호인들의 법정 변론을 위축시킬 목적이 아니고서는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국정원은 스스로 수사한 사건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를 명분으로 수사결과를 대대적으로 언론에 알리면서, 수사의 문제점을 기자회견을 통해 지적하는 변호사들의 입장표명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자 편리한 이중잣대"라고 규탄했다.

민변은 이 소송은 형식적으로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변호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지만, 본질적으로 국가정보원이라는 국가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제기한 소송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국민의 기자회견을 통한 입장표명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소제기를 통해 입막음을 시도하려는 것은 이제 출범한 지 100일이 갓 지난 박근혜 정부의 인권친화성이 대단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국정원의 이러한 소송제기를 통해 국민들을 겁주는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정보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민변은 그러면서 "이번 국정원의 민변 회원들에 대한 잘못된 소제기를 규탄하면서 공동변호인단 구성을 통해 총력을 기울여 대응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정원의 적반하장격 소제기를 통한 변론권 침해 시도가 헌법적 가치와 원칙에 비춰 허용되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귀중한 선례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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