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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프리메라리가, 이 정도일 줄이야

[말라가 교환학생 적응분투기⑧] 공포에 가까운 응원열기

등록|2013.06.07 10:44 수정|2013.06.07 11:38
이번 기사에서는 한국의 모든 축구팬이 침을 삼킬 만한 이야기를 해보련다. 스페인 하면 축구. 명문 구단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가 생각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이곳 말라가에 오기 전에도 내게 "말라가를 안다"고 말한 사람의 9할은 2012-13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EFA Champions League)에 처음 발을 내딛은 구단 '말라가CF'를 아는 축구팬들이었다.

나는 FC 바르셀로나(Barça·바르샤)를 좋아한다. 좀 주제를 벗어나 신앙고백을 해보자. 바르샤는 매력적인 구단이다. 보물 같은 선수가 많다. 소인증을 극복한 인간 승리, 현란한 플레이로 숭배를 받는 메시, 빛나는 인간성과 함께 실력을 갖춘 이니에스타를 추천한다. 그 뿐인가. 재벌 구단주 소유가 아닌 시민들의 '협동조합'으로써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초유의 라이벌 경기, 엘 클라시코(El Clásico·FC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CF 간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드리드 편에 선 사람들이 가득한 술집에서 바르싸에게 힘을 실어준다.

▲ 말라가에 연고지를 둔 축구클럽 말라가CF는 이번에 사상 처음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오른 저력을 보여준 팀이다. ⓒ 김정현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다. 이곳에 온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말라가CF 경기가 있는 날 무조건 말라가를 응원하게 됐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듣다보면 한편으로는 매력적인 구단이다. 카타르 왕족 구단주가 투자를 끊는 바람에 선수들 급여와 이적료가 체불된 상황에서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내달렸다. 스페인 1부 리그 프리메라리가(La Liga) 6위를 지켜냈다. 선수와 감독의 노력, 스페인 내에서도 손꼽히는 경제위기에도 열광적인 지원과 지지를 해주는 시민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젠 자신한다. 마음의 느낌을 넘어 확신할 수 있다. 경기를 직접 보면 그럴 수 있다.

[2013년 4월 10일] 말라가의 챔스, 분노와 아쉬움으로 끝나다

말라가 로살레다 경기장에서의 독일 도르트문트와의 경기가 2-3 패배로 끝났다. 말라가가 1차전을 홈에서 0-0으로 비긴 상황이라 4강이 손에 잡힐 듯했다. 원정 다득점 우선 규정이 있어서 무승부 상황에는 원정경기가 남은 팀이 보다 유리하다.

나도 여느 말라게뇨(Málagueño·말라가 사람)들처럼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말라가, 바르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리그 4강을 장악하는 꿈같은 상황을.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와 말라가CF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말라가에서 직접 볼 수 있게 된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날 경기는 보지 않았다. 호날두를 보려고 표를 사겠다는 생각에 돈을 아끼고 있었다. 바르샤가 원정에서 상대구단 파리생제르망에게 비겨 4강 진출이 위태위태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바르샤에게 응원을 보내주려고 힘을 아끼고 있었다. 기대가 실현되고 있었다. 후반 막판까지 2-1로 이기고 있다고 들었다. 거리에서는 경적과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5분 뒤, 갑자기 거리가 정적에 휩싸였다. 뭔가 이상했다. 술집에 경기를 보러간 친구들의 카카오톡 창에 메시지가 떴다.

"졌다. 추가시간에 두골 먹혔어…."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이요. 내가 꿈을 꾸는 건가?

판정논란을 불고 온 마지막 골말라가와 도르트문트의 챔피언스리그 경기 마지막 골, 스페인 언론은 이 골이 오프사이드 오심이라고 주장했다. ⓒ 유튜브 캡쳐


16강 1차전 원정에서 패해 탈락이 점쳐지던 바르샤가 밀란을 4-0으로 '깨고' 올라온 기적이 있었다. 이번엔 내가 기적의 '패배자'에 자리한 것이다. 기분이 참 묘했다. 이 사건은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오심 논란의 대미를 장식했다.

스페인 스포츠 언론들은 일제히 도르트문트의 결승골이 '오프사이드'였다고 주장했다. 캐스터는 '마드레 미아...노 뿌에데 쎄!(젠장, 있을 수 없어! Madre mia... ¡No Puede se!)'를 외쳤다.

친구들은 술집이 욕설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돌 맞을까봐 말라가 유니폼도 옷으로 가리고 집에 왔다"는 말도 들었다. 한국에서도 한 줄 기사가 나갔다. "역전패 말라가 분노" 분노 그 이상이었다. 경기 다음날 이곳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세상을 잃은 듯 참혹했다.

다행히 다음 날 바르샤가 홈에서 파리생제르망과 다시 비겨 원정 다득점 규정에 따라 4강에 올랐다. 그래도 말라가에서 챔피언스리그를 볼 기회가 날아간 아쉬움을 메우지는 못했다. '차라리 그날 경기 보러 갈 걸' 싶었다. 뭔가, 말라가CF에 대한 감정이 애틋해지는 걸 느꼈다.

[2013년 5월 3일] 에스따디오 라 로살레다서 표를 사다

4월 28일, 그날의 아픔을 함께 공유했던 형에게 소식이 왔다. '5월 12일 말라가-세비야(Sevilla) 경기 보러 가실 분 연락주세요.' 세비야FC는 말라가와 같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명문 구단이다. 스페인 국내 컵대회인 국왕컵, '코파 델 레이(Copa del Rey)'를 5회 가져간 전력이 있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는 최종적으로 9위를 기록했지만, 당시에는 6~8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30유로(약 4만3000원)에 표를 구할 수 있다는 게 끌렸다.

▲ 에스따디오 라 로살레다(Estadio La Rosaleda), 말라가의 축구경기장이자 말라가CF의 홈 구장 ⓒ 구글 검색


5월 3일, 그동안 한 번도 구경 못했던 로살레다 경기장을 찾았다. 꽤, 컸다. 하지만 겉 표면은 투박해보여서 그렇게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뭐, 경기장 외관이 중요한가. 축구가 재미있으면 되겠지. 경기가 없는 날이라 사람은 한산했다. 그래서 표도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드레 미아. 여섯 명 붙어있는 자리가 없다. 매표소 직원은 컴퓨터를 보여주면서 가장 싼 맨 윗 좌석에는 1~2명 떨어진 자리밖에 없다고 알려줬다.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이 갑자기 무서웠던 게, 다른 비싼 좌석은 싹 동이 나 있었다. 다들 고민에 빠졌다. 따로따로라도 앉아서 봐야 하나?

매표소 직원이 손을 놓고 우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스페인어를 잘 하는 동생이 다른 좌석도 검색해보라고 말했다. 30유로, 코너 쪽 바로 뒷좌석을 띄워줬다. 앞뒤로 5명, 그 뒷줄에 1명 붙은 좌석이 보였다. '있으면서 왜 없다고 한 거지?' 잠시간의 짧은 의문이 들었지만 상관없다. 주저하지 않고 다 같이 결제했다. 5월 12일 오후 9시 표가 손에 들어왔다.

LigaBBVA, 프리메라리가 입장권더 말이 필요한가? ⓒ 김정현


[2013년 5월 12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가 손에 잡힐 듯

5월 12일, 날이 오전 8시. 로살레다 경기장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두 시간 전부터 자리를 메우고 앉아있는 한국과 달리 8시 반이 돼도 사람들은 경기장 밖에만 서 있었다. 오는 길에 버스에서 관광을 하던 한국인 세 분을 만났다. 표를 끊는 것을 도와주고 다시 친구들에게로 가니 이번에는 남미 쪽 언론에 사진을 송고하는 사진기자가 부탁을 했다. 한국인 남자 둘, 여자 넷 총 6명이 프리메라리가 경기를 보러 왔으니 뉴스 가치가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검표원이 캔의 반입을 막았다. 훌리건으로 악명 높은 유럽의 관중들 때문인 듯 보였다. 캔 음료는 전부 컵에 부어 들어가게 했다. 귀찮긴 했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이러냐는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 경기장 안에서는 캔을 들고 갈 수 없어 음료상인이 컵을 함께 건네주고 있다. ⓒ 김정현


▲ 관중석에서 바라본 경기장. 광활하다. ⓒ 김정현


수건 들고 한장외국인이 흔쾌히 말라가CF 수건을 빌려줬다 ⓒ 박유영


▲ 아버지와 아들들이 축구를 보러 왔다. ⓒ 김정현


경기장 밖이 초라했었다고 말했던가? 계단을 올라서 경기장을 본 순간 내 오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약 2만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활한 경기장은 아직 비어 있었다. 내가 앉은 좌석 바로 위 상대팀 세비야FC의 서포터즈들이 응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괜히 세계 4대 리그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꼽는 게 아닌 듯했다.

어느새 스타디움은 가득차고경찰들이 관중들을 감시하고 있다. 반대편 경기장에서는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 김정현


경찰들도 구석구석 메웠다방탄복 경찰이 내 앞 출구에만 배치됐다 ⓒ 김정현


코너 깃발이 내려다보이는 1층 중간 즈음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좌석 바로 옆에 벽이 쳐져 있었다. 축구장을 자주 안 가서 몰랐는데, 여기 말고도 다른 경기장에서도 벽이 쳐져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좌석이 왜 싼 건지 그때 알았다. 아, 다른 이유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 상대팀 응원단들이 바로 윗 좌석에 앉아있다는 점이다. 8시 40분이 돼서야 감을 잡았다.

뇌리에 박히는 "뿌따 세비야"... 무슨 말이지?

"뿌따(puta·직업여성) 세비야! 뿌따 세비야!"

헉. 2만5000명이 내가 앉은 벤치 위쪽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팔을 휘두르며 굉음을 질러댄다. 경기,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단지 선수들이 몸을 풀러 나왔고, 세비야 응원단이 환호성 한 번 지른 것일 뿐이었다. 세비야 응원단도 맞받아치는데 수적으로 밀려서 목소리가 대번에 묻혔다. 재밌었다. 놀이공원 스릴은 저리가라 정도였다.

▲ 말라가 서포터즈의 응원은 빨려드는 듯 했다 ⓒ 김정현

내 좌석 주변에는 방탄복을 입은 경찰이 배치됐다. 위를 올려다보니 세비야 응원단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경기라도 잘 안 풀리면 대번에 칼 날아드는 건 아닌가 걱정까지 됐다. 그러면서도 나도 어느새 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참 중독성 넘치게 착착 감기는 말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군중심리 때문에 그런가.

유럽 리그에서 홈 경기와 원정 경기의 구분을 확실히 짓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2002년 한국의 월드컵 응원에 기가 죽어서 선수들이 맥을 못 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무슨 소리. 이 정도 응원이면 상대 선수가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 말이 세비야가 응원을 할 때마다, 반칙을 했을 때마다 반복됐다.

응원가, 선수들, 그리고 드디어 플레이 볼

오후 9시.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고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건너편 말라가 서포터즈 쪽에서는 플랜카드가 나부꼈다. 감독과 오늘 출격하는 선수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기립박수가 나왔다. 세비야 선수들이 나오자 야유가 쏟아졌다. 위를 올려다봤다. 방송용 카메라가 보였다. TV에서 볼 땐 선수들이 그렇게 작게 보이던데, 오늘은 정말 가까이 큼직하게 보였다. 방송용 카메라보다 아래 자리를 잡은 게 중요했다.

응원가가 울려퍼지고말라가 시민들의 제창 속,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 김정현

골대 뒤편의 응원은 광적이었다. 상대편 골키퍼를 향해 수 백 명이 일제히 손짓을 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전광판이 바뀌면서 시선이 오른 쪽 위로 다시 쏠렸다. 말라가CF의 휘장과 함께 응원가가 연주됐다. 2만여 명이 응원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문화 차이를 느끼려면 음식을 먹고 친구를 사귀고 대화를 하는 게 좋다. 여기에 오늘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축구 같은 운동 경기를 보러 가면 된다. 시민들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열정과 광란의 바닷속에 우리 여섯 명만 떨어진 무인도에 있는 듯 느낌을 받았다.

3분의 찰나, 응원가가 끝나고, 휘슬이 울렸다. 공이 날아다닌다. 바르샤의 팬인 나는 오늘 로살레다에 있었다(결국, 이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선수들은 뛰고발이 안보인다는 게 실감이 난다 ⓒ 김정현


관중들은 속이 탄다응원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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