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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죽었다"고 한 남자를 살려낸 여자

[인터뷰] 기적적으로 한 생명 살린 이다운씨

등록|2013.06.08 19:56 수정|2013.06.08 19:56
<타이타닉>과 <아바타>로 세계적 명장 반열에 올라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숨은 수작 <어비스>에는 가슴 찌릿한 명장면이 있다. 심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 난파된 잠수정에 고립된 남녀 주인공. 얼음 같은 물은 빠르게 차오르고 멀리 모선은 보일 듯 말 듯하다.

잠수복과 산소통은 각 하나. 부인은 남편에게 '당신이 나보다 수영을 잘하니, 차가운 온도에 내 심장이 멎으면 나를 끌고 모선으로 가서 깨어나게 해달라'고 한다. 미친 짓이라며 도리질을 쳐 보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 남자는 고함을 치며 맥박이 멎는 아내를 바라본다.

결국 심장이 멈춘 아내를 끌고 모선에 도착해 응급구조를 실시하는 남편. 전기충격을 주고 마사지를 해보지만, 아내는 싸늘하게 식어간다. 안타깝게 바라보던 동료들은 '이제 그만하라'며 손을 내젓는다. 하지만 다시 인공호흡을 실시하며 아내의 뺨을 두드리는 남자. 결국 기적적으로 아내는 죽음 직전에서 돌아온다.

부부의 감동적인 사랑에 누구라도 눈물을 닦게 되는 가슴 벅찬 장면이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실제 그런 일이 있을까라고 물으면 대개 고개를 저을 것이다. '영화니까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한 젊은 아가씨가 죽음으로 가던 이를 불러 세워 살려낸 것이다.

호흡과 맥박이 멎은 남자, 모두가 죽었다고 할 때 인공호흡

▲ 모두가 포기한 생명을 살려 낸 이다운씨. ⓒ 나영준


사건은 지난 5월 11일 토요일 12시경 경기도 파주시의 작은 교회에서 일어났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던 교회장로 A(66)씨가 급작스럽게 쓰러지고 만 것. 이미 숨은 멎은 상태, 얼굴이 새파란 색으로 변하며 손발은 얼음장이 되어 버렸다. 후에 병원의 진단으로는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나갔다고 한다. 서로 '119를 부르네, 불렀네' 하고 우왕좌왕 하는 통에 오히려 신고까지 늦어졌다. 평소 가슴압박을 해본 경험이 있는 남성이 달려들었고 주변에서 손발을 주물렀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모두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며 오열이 커지고 있었다.

그때 27살의 젊은 아가씨가 뛰어들었다. 그날 아버지 이원성(56)씨의 집사 임직식을 지켜보려 가족과 함께 교회를 찾았던 이다운씨였다. 혼란한 와중 차분하게 119에 구조전화를 하고, 다른 이들의 심폐소생술을 지켜보다 차도가 없자 바로 달려든 것이다.

그녀는 곧 침과 거품이 흐르는 입에 거침없이 자신의 입을 맞대고 숨을 불어넣었다. 그때만 해도 모두가 반신반의하는 상황. 곱게 차려입은 옷이 구겨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세차게 구강 대 구강으로 호흡을 불어넣기를 수 십 회. 가늘게 숨이 돌아오며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주위의 울음이 환호성으로 바뀌고 있었다.

잠시 후 119 구급차가 도착했고, 다운씨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고 걱정이 된다며 기어이 응급실까지 따라갔다. 이어 병원 측으로부터 "초기 대응 처치가 잘 돼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돌아섰다. 환자 A씨는 며칠 뒤 의식까지 맑아졌다고 한다. 제때 공급된 산소덕분이라고 한다.

"누구라도 해야 할 일 한 것, 환자가 무사해 다행"

▲ 딸이 자랑스럽다는 아버지 이원성씨가 그 날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나영준


숨이 멎었던 사람이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보름이 훌쩍 지나서였다. 신도 대부분이 중장년층인 지역의 한 작은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은 더디게 퍼졌고, 선행의 주인공을 확인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알음알음으로 연락이 닿은 것은 선행의 주인공인 이다운씨의 아버지 이원성씨부터였다. "착한 딸이 한 일이 자랑스럽긴 하지만, 왠지 부끄럽다"는 그에게 딸에 대해 들었다.

"그 날 아빠 좋은 날이라고 옷도 예쁘게 입고 왔는데, 옷 구겨지는 건 둘째 치고 쓰러진 분 입에서 거품과 이물질이 마구 쏟아지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집중하는 아이를 보면서 저도 놀랐죠. 젊은 아가씨 아닙니까. 환자가 여성도 아니고 나이든 분인데… 제 딸이지만 대단하죠. 저보다 나은 아이입니다. 평소 어려운 나라 어린이들도 후원하는 등 심성도 곱습니다."

다시 아버지를 졸라 며칠 뒤 어렵게 만난 이다운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내내 수줍어했다. 중국 대학에서 한의학을 공부한 후 지금은 신촌의 한 대학병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다운씨는 실습할 때 연습을 해본 일은 있지만, 실제 인공호흡을 실시해 본 건 그 날이 처음이라고 한다.

"저도 처음엔 놀랐지요. 다른 분들이 심폐소생술을 하시는데, 차도가 없어서 제가 해보겠다고 했어요. 맥을 짚어보니 뛰지 않고. 손발도 너무 차고 해서 위급한 상황인 걸 알았어요. 한참 하다 보니 트림이 나오면서 숨이 돌아오셔서 너무 기뻤지요. 인공호흡도 한국에서 입사 후 배웠거든요."

다운씨의 침착함은 응급신고를 한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당시 119를 찾는 이들이 많았음에도 놀란 마음에 다들 허둥지둥 하고 있었을 때, 다운씨는 자신의 손에 들린 교회 주보란의 주소를 정확히 불러 주었던 것. 하지만 인공호흡을 할 때는 자신도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주변에서 말씀해 주셔서 알았지. 제가 어떻게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어떻게든 살려야 된다는 생각밖엔 없었거든요."

흔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한다. 좋은 이야기지만 현대사회에선 그저 성경이나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글귀가 돼 버렸다. 선행과 봉사도 하나의 스펙이 된 세상. 각종 SNS의 발전은 이를 부추긴다. 젊은 아가씨가 주변에 자랑 한 번 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을까? 참고로 직장동료들도 우연히 지역신문 기사를 본 누군가의 이야기로 며칠 전에야 알았다고 한다.

"아유… 민망하기도 하고. 그 날 다른 분들도 다 수고하셨잖아요. 환자 분만 건강하시면 되죠. 앞으로 바라는 일은, 지금 하는 일도 너무 좋지만, 중국에서 배운 한의학도 사회를 위해 써보고 싶어요. 남자친구요? 아이고… 몰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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