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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에서는 '19금'의 냄새가 난다

[포토에세이] 밤꽃

등록|2013.06.09 10:20 수정|2013.06.09 10:20

밤꽃밤꽃이 피어난 줄기 하나엔 수백송이 꽃과 수만의 꽃술이 옹기종기 피어있다. ⓒ 김민수


이맘때 밤나무 아래에 가면 바람에 떨어진 노오란 밤꽃줄기를 볼 수 있다.
수북하게 쌓일 정도로 떨어졌어도 여전히 나무에 남은 밤꽃줄기, 노오란 꽃술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다가 길죽하니 기어다니는 벌레같기도 한 꽃이다.

게다가 냄새는 19금의 냄새다.
19금이라고 하면 나쁜 것이라고들 하지만, 어른들만의 영역이라고 줄을 그은 것 뿐이다. 왜곡된 성문화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붙인 '19금'이라는 빨간 딱지는 20세 넘은 이들에게는 유익한 것이고, 그 이하에게는 유해한 것일까?

밤꽃향기가 그윽한 계절이면 과부들의 마음이 설렌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 말 역시도 왜곡된 성문화의 단면일 뿐이다.

밤꽃밤꽃도 자세히 들여가 보니 예쁜 구석이 있다. ⓒ 김민수


공원을 건다 떨어진 밤꽃송이를 주워 살펴보았다.
얼핏 바라보기만 했는데, 꽃술이 있으니 꽃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수백송이의 꽃이 피어있고, 꽃술은 수만개가 될 듯하다.

밤꽃의 실체를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모든 것을 바라볼 때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가까이 봐야 좋은 것이 있고, 먼발치에서 봐야 좋은 것이 있다. 그리고 가까이와 먼발치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포착하는 것, 그것이 심미안이 아닐까 싶다.

나무와 숲을 다 보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산'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다 본다'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는 말이긴 하다. 밤꽃은 어느 거리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까?

밤꽃수많은 꽃송이가 피었건만 그 줄기에서는 밤 한 송이가 열린다. ⓒ 김민수


그 거리는 그냥 기다란 벌레같이 생긴 밤꽃줄기에 수백송이 어쩌면 수천송이의 꽃이 피어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적당한 거리'라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가?
이것도저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옳고그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적당한 거리라고 할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어스름 어둠이 내리고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내려앉는 시간이면 밤꽃향기는 한껏 내려앉아 사람들의 코높이까지 키를 낮춘다. 이맘때 피어나는 다른 꽃들에 비해 좋은 향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요즘 피어나는 다른 향기 좋은 꽃들이나 화사한 꽃들보다 실한 열매를 주는 꽃이 밤꽃이니 고마운 일이다.

쥐똥나무, 병꽃나무, 으아리, 개망초....그 많은 꽃들 사이에서 그닥 예쁠것도 없는 꽃에서 그닥 향기롭지 않은 꽃향기가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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