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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으로 가라앉은 마을...믿어집니까?

[2013 전국투어-광주전라⑤] 댐건설로 사라진 장흥군 유치면을 추억하다

등록|2013.06.19 09:48 수정|2013.06.19 10:20
<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6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광주전라입니다. [편집자말]

장흥댐 수몰마을전남 장흥군 유치면 대리마을 이제 물속으로 사라진 마을. ⓒ 마동욱


아, 내 고향(故鄕)이여!
유치면(有治面) 대리(大里) 이구(二區) 마을
망향(望鄕)의 비(碑)(서문(序文))

저기 뒷동산 밑에 덕촌(德村) 방촌(芳忖) 가운데 들 수덕(修德)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천사오백년(千四五百年) 전부터 대리(大里)라는 큰 마을을 이루고 정답게 살았네. 그러나 지금 인적(人跡)은 오간 데 없고 물새들만 쓸쓸히 물에 잠긴 고향(故鄕) 하늘 위를 나는구나. 그리운 고향(故鄕)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중략)

실향민(失鄕民)이 되어 고향(故鄕)을 찾아온 나그네 발길을 무엇으로 달래려는지. 고향(故鄕)을 애타게 그리는 사람들이 한(恨)이 맺혀 이 글을 여기에 새기노라. - 2001.11.30. 대리2구 주민일동 (글: 강영구)

대리2구 마을 망향비장흥군 유치면 대리2구 마을 망향비 고향을 떠나면서 마을주민들은 마을 뒷산에 망향비를 세웠다. ⓒ 마동욱


이 글귀는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대리 2구 마을에 세워진 수몰민의 '망향비'다. 장흥군 유치면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유치면 마지막 이장인 강영구씨가 쓴 이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강 이장은 지금 광양에 있는 아들 집에서 물속에 잠긴 고향을 그리워하며 뒤늦게 배운 컴퓨터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흥댐 수몰마을 오복리 사람들전남 장흥군 유치면 오복리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기전 유치에서 가장 먼저 망향비와 향자비를 세웠다. 향자비는 올림픽 금매달을 딴 문향자선수가 마을회관을 짓게 해주어서 세운 비다. ⓒ 마동욱


장흥군 유치면에 세워진 장흥댐은 2006년 완공된 것으로, 전남 서남부권 목포시를 비롯한 9개 시·군에 물을 공급하는 다목적댐이다. 유치면 주민들은 댐 건설로 수십 년 동안, 아니 조상 대대로 수백 년 동안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 전국으로 흩어졌고 마을은 물에 잠겼다.  고향을 떠난 수몰민 중 상당수 주민들은 이후 3년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유치면 단산리 문진배씨 댁 강제철거 마지막까지 마을에 남았던 문진배씨 집을 강제로 철거하기위해 수공과 도지원사업소가 나섰다. 문진배씨 부인과 문씨가 강하게 막아 철거가 보류되었지만, 얼마후 자진 이주를 했다. 문씨 부부는 장흥읍으로 이사를 왔지만, 문씨는 이산온 지 채 2년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 마동욱


나는 1988년부터 고향인 장흥군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내 카메라가 장흥군 유치면 마을을 향한 건 1991년 이른 봄이었다.

1991년 이른 봄, 나의 카메라는 전남 장흥군 유치면으로

마을 사진을 찍기 위해 유치면에 도착했지만 유치 주민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의심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사진을 찍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낯선 사람이 유치면에 나타난 게 내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로 유치면 일대를 다니며 측량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유치에 댐이 건설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이러한 이유로 사진을 찍는 나를 댐과 관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나는 1992년 4월 장흥문화원에서 '내가 돌아 본 고향 마을' 사진전을 열었다. 그해 7월 경기도 부천시 홍보관에서도 고향마을 사진전을 열었다. 전시회에서 보여준 나의 사진들은 내 고향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으나 사람들은 나의 의도와 달리 유치면의 댐 건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댐 건설은 점점 기정사실화가 되어갔다.

1996년도부터 댐 공사를 하기 위해 수자원공사에서는 주민들을 상대로 댐 건설공청회를 열었지만, 주민의 반대로 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또, 유치면을 가로지르는 국도에서도 댐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나는 그런 모든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기 위해 서울 집에서 장흥으로 수없이 오갔다.

장흥군 유치면 용문리 유치면 용문리 노루목마을도 장흥댐 건설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 마동욱


그 무렵 유치면 일부 주민들은 댐 반대운동을 위해 전라북도에 세워지고 있는 용담댐에 다녀왔다. 좀 더 체계적인 댐 반대운동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용담댐에 다녀온 주민들은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배워왔다. 그것은 벼농사에 비해 특용작물이 보상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용담에서 가져온 국화 종자와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장미와 미나리, 천마 등을 논밭에 심기 시작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국책사업은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유치면에 돌았다. 사람들은 평소 짓지 않았던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주민들의 그런 생각은 큰 좌절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특용작물은 댐 고시 이후에 심어진 작물이라고 하여 보상에서 제외됐으며, 댐 수몰지역 주민들은 그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 물속에 잠긴 늑룡리마을 뒷산에서 장흥댐. ⓒ 마동욱


댐 건설로 먼저 보상을 받았던 농가들까지 다시 특용작물을 논밭에 심자, 수자원공사에서는 보상이 끝난 논과 밭을 포클레인으로 파내어 다시 농사를 짓지 못하게 했다. 나는 평생 동안 살아왔던 유치면 사람들의 삶 터전이 무너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지금은 유치면 마을의 모습을 사진만으로만 볼 수 있다.

장흥군 유치면은 댐이 건설된다는 것을 태초부터 알고 있었을까

나는 1997년 11월 유치면 일대 수몰지역을 사진으로 담아낸 사진집 <아! 물에 잠길 내고향>을 출간했다. 또, 수몰지역의 전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KBS <일요스페셜> 등에서 방송됐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은 한국전쟁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마을이다. 48년 여순사건 때, 지리산을 향하던 빨치산이 유치면에 머물렀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유치면의 90% 집들이 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전소되자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 이웃 부산면과 장흥읍으로 피난을 가야했다.

유치면에 다시 집이 들어선 것은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시작되었던 1953년부터였다. 댐으로 물속에 잠긴 유치면 일대의 집들은 우리의 슬픈 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유치면 수몰지역 사람들 중 한 명은 고향을 떠나면서 "이북 사람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데, 유치 사람들은 고향이 물속에 잠겼으니 돌아갈 고향이 없어졌다"며 슬피 울었다.

나순할머니장흥군 부산면 용반리마을로 돌아온 나순할머니 할머니가 지천리 댐건설지역에 살다가 순천으로 이사를 갈 때까지 나는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의 가족들이 많아 명절 때 많은 식구가 온 집안에 가득찼다. ⓒ 마동욱


90세가 넘은 할머니는 제발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또, 평생 살아왔던 고향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고 싶다며 고향을 떠나면 자식들에게 큰 짐이 되니 당장 죽게 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흥댐이 완공될 때쯤, 아들을 따라 순천 상사 댐 주변으로 이주했던 부산면 지천리 나순 할머니는 몇 년 전 고향마을이 있었던 근처 부산면 용반리 마을로 이사를 왔다. 할머니는 고향에 홀로 남아 마지막까지 마을을 지키려 했지만, 댐 완공을 눈앞에 두고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고향을 떠난 할머니는 평생 살았던 고향을 잊을 수 없어 마음에 향수병이 생겼고, 큰 아들을 졸라서 결국 고향 근처인 부산면 용반리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댐 건설은 수몰지역에 살았던 사람들과 댐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안개일수가 많아지면서 농사가 잘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또, 수온이 낮아져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나고 강물에 넘쳐났던 어패류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으며 어류의 종류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안개낀 장흥댐장흥군 유치면 물속에 잠긴 대리마을 장흥댐. ⓒ 마동욱


장흥댐 건설 이후 이게 우리나라 마지막 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다시 지리산을 비롯한 곳곳에서 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만2천여 개의 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댐이 부족하여 댐 건설을 더 하겠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강을 댐 건설로 반 토막을 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선진국에서는 막은 댐도 튼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더 많은 댐 이 필요하다며 댐 건설에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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