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명 신도들이 지은 교회건물, 자부심 대단하네
[김수종 문경을 걷다 2] 등기소, 약국, 탄광주의 집, 문경교회
▲ 문경객사국립호텔이다 ⓒ 김수종
객사는 요즘으로 보자면 지방에 있는 국립호텔 정도로 보면 되는 곳이다. '관산지관(冠山之館)'이라고도 불리는 문경객사는 1987년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9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 건축한 관아의 객사 건물로 현재 문경서중 교정에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 맞배지붕 건물로 중앙 3칸은 고설각(高設閣)을 설치하고, 양쪽 각 2칸은 빈객의 침소로 마련한 것이다. 1648년(인조 26)과 1735년(영조 11)에 각각 중수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청사의 일부로 사용되었다.
2013년 초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내·외부의 출입이 자유로워 안팎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지붕이며 기둥, 창살 등이 고풍스럽고 아름다워 사진을 여러 장 찍어왔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를 다시 배우게 되는 건물이다.
▲ 문경 장자광업소 사장의 집50년은 된 단독주택이다 ⓒ 김수종
객사를 살펴보고 학교도 둘러본 다음, 교문 앞에서 길을 가는 어르신들에게 예전 문경군청터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군청 터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빌라라고 한다. 군청청사가 있다가 다시 우체국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빌라가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흔적도, 표지석도 없고 현재의 건물은 볼품도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빌라 앞에 있는 아주 폼나는 2층 양옥집이 보여서 그곳을 살펴보면서부터다. 내 느낌에는 군수가 머물던 군청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층 건물에 외부가 대단히 잘 꾸며져 있고, 창문도 무척 큰 것이 관공서 건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마당도 무척 넓었다.
다시 길 가는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관사가 아니고 예전 장자광업소 정산탄광 사장의 집으로 주로 모친이 거주하던 곳이라고 했다. 어르신은 "장자광업소 사장이 정말 잘 나갔는데, 내 기억으로는 유신 정권 때 정치자금 문제로 안기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는 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었지"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50~60년 정도 된 단독주택치고는 무척 깔끔하고 잘 지어져서 지금도 사람이 살기에 별로 불편함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도색만 다시 하면 새집이라고 해도 속아 넘어갈 것 같은 멋진 집이다. 집을 둘러보고, 길 건너편에 있는 오래된 일본식 건물에 주목하고 살펴보았다.
▲ 한우 고깃집1920년대 지어진 일본의 등기소 건물 ⓒ 김수종
'정배네 한우'라는 영업집에 들어가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1920년대에 지어진 '문경등기소' 건물로, 이후 개인병원으로 쓰이던 것을 수리하여 식당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특히 우측의 창고건물은 화재나 외부 압력에 절대로 부서질 수 없도록 강철 문과 두꺼운 벽이 특징이라고 했다.
지금은 쓰지 않는 강철 문은 안쪽 창고에 넣어 둔 것을 보여주는데 요즘도 페인트칠만 다시 하여 쓰면 좋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벽 또한 벽돌에 두께만 50cm는 되어 보이게 지어진 것이 당시 등기소 창고로 쓰이기에 유용해 보였다.
창고는 현재 주방으로, 등기소 건물 자체는 식당으로 쓰이고 있는데 내부는 거의 수리를 하여 일본 주택의 특징을 자세하게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외부 벽돌을 쌓은 방식이나 안방의 붙박이 옷장, 지하 창고 등을 봐서 일본 건물의 특색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1920년 대 일본 건물을 발견한 놀라움도 좋았고,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여 쓰고 있는 주인장의 안목에도 감사를 드렸다. 바쁜 주인장은 식사 시간이 끝나는 무렵이라 조금 한가한 틈을 타서 자세하게 건물 내·외부를 소개해 주었다. 참, 감사했다.
오래된 종탑이 좋아서 찾아간 문경교회
▲ 문경교회1920년대에 세워진 교회로 현재 건물은 1959년에 완공 ⓒ 김수종
현재 본당은 1959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하는데,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고, 강에서 주워 온 큰 돌과 시멘트를 혼합하여 지은 것으로 보기에 무척 좋았다. 외부에 드러난 돌들이 어딘지 모를 강고함이 느껴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마침 교회를 지키고 있던 전도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건축 당시의 흑백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면서 수천 명에 달하던 신도들이 돈과 인력으로 직접 지은 교회라 지금도 자긍심이 대단하다고 했다. 광산 도시였던 문경은 당시 초등학교의 학생 수만도 3000명에 달했는데, 지금은 150명 내외로 줄었고, 교회의 신도 수로 지금은 100명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 문경읍의 벽화문경교회 인근에 있다 ⓒ 김수종
마당도 넓고 큰 나무도 있고 사택이며 예배당도 아름답고 큰 교회였지만, 현재는 지역에 인구가 많이 줄어 쇠락한 듯 보이는 것이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교회 주변에는 수 많은 벽화들이 있어 보기엔 참 아름다웠다.
문경교회를 둘러본 나는 교회 주변을 산책했다. 처음엔 단순히 교회 주변에만 몇 개의 벽화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산책하다 보니 온통 벽화 투성이다. 대략 봐도 100개는 되어 보이는 벽화에는 문경을 알리는 사과, 예전의 광산도시의 분위기를 표현한 광부 그림, 쥐와 오리, 농부 등등 골목골목 그림이 상당히 많았다.
문경새재 가는 길에서 만난 영생당 약국
▲ 영생당약국문경읍 ⓒ 김수종
터미널에 가서 시간표를 보니 방금전에 버스가 떠났다. 다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그냥 걸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터미널 앞 모퉁이에 있는 영생당 약국이 눈에 들어와 안으로 들어갔다.
내 눈에는 일본식 건물 같아서 약사에게 물어보니 지은 지 50~6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바로 옆에 있는 행정서사, 인테리어 사무실은 80년 정도 되었는데, 한번 살펴보라고 하여 앞뒤를 살펴보았다.
그곳은 오래된 것 같기는 한데, 별로 볼품이 없었다. 약국에서 빌려 쓰고 있는 사무실이라 그런지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듯했다. 난 주인장의 허락을 받아 마당과 집 안쪽을 더 살펴보았다.
여든이 다 된 약사는 30년 넘게 운영하는 곳이라 카드결제도 안 되고, 약국 내부의 자재도 전부 오래된 목재로 되어 있었다. 마치 드라마 촬영장의 세트처럼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문경을 찾는 외국인이나 사진작가가 방문하면 주로 약국의 내·외부를 전부 보고 가는 경우가 많고, 가끔이지만 신문 잡지나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난 피로회복제 한 병을 사서 마시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입구의 창에 약이라고 쓰인 큰 글씨가 빨간색이 아니라서 좋았다. 가끔 약국을 지날 때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위급한 상황에 약국을 잘 찾으라고 그런지는 몰라도 늘 빨간색으로 무시무시하게 쓰여 약이라는 글씨가 위협적이었다. 빨간색으로 크게 쓰인 약을 먹으면 치료는커녕 먹고 죽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여기는 노란색이라 더 정겨운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여행은 지난 8일(토)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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